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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죽었습니다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42
범유진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23년 3월
평점 :
"자주 겪는다고, 그게 익숙해지는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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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잖아. 엄마는 열심히 일해. 술집에서 일하는 게 뭐 어때서? 우리 엄마, 술집 주방에서 음식 만들어.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엄마는 여자 혼자 몸으로 날 엄청 열심히 키웠어. 엄마를 욕할 거면, 여자 혼자 애 기르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 준 나라를 먼저 욕해야 하는 거 아냐?"p36
"엄마는 나한테 만날 그러거든. 공부를 하는 건 다 너를 위한 거라고. 하지만 좋은 성적을 받아 오면,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아 오면, 그러면 네가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할 때마다 회의감이 들어. 나는 정말로 나를 위해 공부하고 있는 걸까? 아빠와 엄마가 원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p84
"이상하지 않냐? 무사히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모른 척해야 한다는 거."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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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프인 보름이와 설아는 여름 방학에 강릉으로 여행을 가자며 약속을 한다. 하지만 방학식이 끝난 날, 설레여하는 보름이에게 설아가 죽었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이 들려오고, 사인은 자살.
슬픔 속에 지내는 보름이에게 설아가 죽기 전 보냈던 예약 메일이 도착하고,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 마음이 힘들어 지면, 강릉에 영혼을 수놓는 가게'에 가라는 수수께끼 같은 내용이 쓰여져 있다.
설아가 절대 자살할리 없다 믿는 보름이는 설아가 남긴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 죽음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찾기 위해 강릉의 수놓는 가게 다닝으로 가고, 그 곳에서 보름이와 같은 이유로 온 설아의 같은 학교 친구 이재를 만나게 된다.
귀신을 본다고 소문 난 유명한 영매이자 다닝의 주인인 원하리는 자수 한 점씩을 완성하면 설아가 남긴 물건을 주겠다고 이야기 하고, 둘은 설아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과 설아가 남긴 메지와 물건을 찾기 위해 협력하며 조금씩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
보름이와 이재의 이야기로 교차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는 폭력이 난무한 학교, 영어권 나라가 아닌 베트남 혼혈이라 받는 차별, 학교 폭력을 저질렀음에도 부모의 경제력과 능력 덕에 쉽게 무마되고, 되려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는 이야기들이 묵직하게 담겨 있다.
가해자는 그에 걸맞는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가해를 저지르며 누군가를 괴롭히고, 목숨을 잃게 하는 지금의 사회가 담겨 있다. 죄책감은 커녕 당연한 듯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며 더 큰 악을 저지르게 하는 것은 비단 아이들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무마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추악한 짓도 불사하는 어른이 배후에 있기 때문이겠지.(최근 정순신의 아들 학폭 무마 사건도 생각나고, 학교폭력에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고 박주원양의 재판에 불출마한 욕도 아까운 권경애도 생각났다. 아! 특히 권경애는 정말 !#%$%*^&*%&*%()!!!!)
학교 폭력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에 자칫하면 어두질 수 있는 분위기를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가미해 재미를 선사한다.
준비했다고 해서 상실감이 적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아이들은 특히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겪는 상실에 더 크고 오랜 트라우마가 남을 것이다.
이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에 바르는 약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범유진 작가의 말처럼 폭력에 노출되어 고통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혹은 겁이 나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에게 약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문득, 어느 정도 수준으로 글을 써야 아이들의 눈높이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를 쓰는데도 이렇게 쓰면 공감할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할까 라는 고민이 들지 않을까?
작가들의 필력에 늘 감탄하지만 특히나, 어린이나 청소년 문학을 쓰는 작가들이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범유진 작가의 아홉수 가위도 곧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