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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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간다. 하지만 삶이 결코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죽음에의 과정인 것이라면 그건 나는 죽어간다, 라는 언명言明과 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사는 것이 단지 시간을 들여 죽어간다는 의미인 것이라면 우리에게는 어째서 '살아간다'는 말이 필요한 것일까.
결국 인간에게 진실로 중요한 철학적인 명제는 어떤 사람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가,라는 그 불합리성에 가 닿을 것이다.
삶의 의미, 죽음의 의미, 시간의 의미, 기억의 의미, 자아의 의미, 타자의 의미, 세계의 의미, 의미의 의미.... 어떤 것을 생각해봐도 밑바탕에는 그 모순이 가로놓여 있다. 그렇다, 행복의 의미조차도.p69-70

'죽음의 순간'이란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야. 그때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이 세계에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잖아?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결정할 권리는 절대로 개개인에게 있는 거야.p97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될수록 상대적으로 우리의 삶은 가치를 상실할 것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없어질 이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보자는 마음도. 과연 이 생에 대한 사랑을 상실하지 않은 채, 기쁨과 함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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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 자살인 자유사가 허락된 미래의 일본에서 어머니는 자유사를 원했지만, 아들 사쿠야는 반대한다. 그러다 어머니가 갑작스레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그는 어머니의 유산으로 거금을 들여 그녀를 AI,VR 기술로 재생시킨다.
그가 알지 못했던 자유사에 대한 어머니의 진짜 본심과 숨겨왔던 삶의 진실을 알기 위해 그리고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그는 어머니 주변의 지인들을 한 명씩 만나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어머니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사쿠야의 시선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다.

가상세계 속에서 진짜 자신을 감춘채 살아가는 사람들, 죽음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안락사, 장애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신체활동의 제약, 다양한 차별과 혐오, 윤락여성, 빈부의 격차, 자연재해, 분노 범죄 등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가득하다.
지금의 시대와도 잘 맞물려, 우리가 직면할 다양한 과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관찰자 입장으로 어머니의 삶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만나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자신의 삶과 마음을 돌아보는 사쿠야의 감정선이 세밀하게 담겨 있어 그의 성장과 변화가 뭉클하기까지 하다.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솔직하다. 자신의 삶을 위해, 행복을 위해, 용기있게 자신을 직시한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진솔하게 다가온다.

오랜만에 좋은 일본소설을 만났다.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는데 무척이나 만족해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무거운 주제들을 쉴 새 없이 던져 주면서도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재미있어 아껴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탄탄한 구성, 깊이있는 주제, 지루할 틈 없이 던져주는 철학적 사유들까지 모두가 참 좋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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