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강지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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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비정규직이 점심을 거르기 일쑤고 불규칙한 생활을 한다. 누군가는 식사를 챙기고 몸 관리를 하는 것 역시 사소하지만 성실한 자기 관리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식사 메뉴만을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점심을 거르는 건 그 사람이 나약한 의지나 낮은 자존감으로 자기 관리를 놓쳐서가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가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상황의 문제일 때가 많다.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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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소한 주문에도 건마다 별점 매기길 요청하는 플랫폼 앱들이 부담스럽다. 모두를 위해 서비스는 개선되어나가야겠지만, 플랫폼에 전시되는 별점과 평가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가장 큰 자산인 서비스 노동자거나 작은 규모의 자영업자니까. 모두에게 점심이 편안하고 당연한 권리가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점심을 거르게 되고 어쩌다 아프더라도 괜찮다고, 조금 느리거나 완벽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서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p27

-강지희 점심이 없는 날들 中-


평일의 점심은 어쩐지 쓸쓸하다. 아무리 맛있는 메뉴를 선택해도 속도를 내서 먹어야 한다. 속을 터놓고 회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동료는 없어진 지 오래. 내가 좋아하고 신뢰했던 이들은 모두 떠났다. 가끔 찾아와주는 전 동료, 기꺼이 속내를 드러내도 두렵지 않은 몇몇의 사람, 일로 만났지만 친구가 된 선후배들을 만나지 않는 한, 나의 점심은 여전히 외로울 전망이다.p98 -엄지혜 외로우니까 점심이다 中-

사실 회사에서 먹는 점심 식사는 가장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때로는 입안 가득 떠 넣는 한 숟갈이 참으로 버겁게 느껴진다. 어떠한 목적 없이, 저마다의 밥벌이를 위해 좁고도 넓은 대한민국을 돌고 돌아 만난 각양각색의 사람들끼리 취향 따위 고려하지 않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허겁지겁 먹는 식사는 얼마나 애석한가. p178 -원도 다짜고짜 뭐 먹을 거냐니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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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분야별 작가, 시인, 전 기상캐스터, 현직 경찰관이자 작가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이들이 점심을 주제 쓴 산문들을 담았다.
점심에 대한 단상들과 짧은 점심시간이 부여하는 의미, 내가 느끼고 바라보는 감정들을 표현했다.

우리는 촉박한 시간에 때론 식사를 거르기도 하고, '먹는다'기 보다는 '때운다'에 가깝게 허기만 채우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소박한 점심을 먹기도 하고, 때때로 누군가와 함께 화려하고 푸짐한 한끼를 먹기도 한다.

나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자주 달고 살며, 한끼 식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떼운다'가 아니라 '먹는다'와 '즐긴다'가 어울리는 식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나의 전 직장에서 점심을 함께 하던 회사 사람들은 차츰 비싼 밥값이 부담스러워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혼자 먹게 된 나는 매일 어떤 점심을 먹을까 하고 행복한 고민을 하며 먹고 싶은 메뉴를 먹었다.
그런데 내 눈에만 이상한건지 잘 모르겠지만 도시락을 싸오는 회사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같이 먹지 않고 각자 다른 룸으로 들어가 따로 먹고, 대표라는 사람은 김치냄새를 풀풀 풍기며 사무실 안에서 도시락을 먹곤 했는데, 사무실에 들어갈 때마다 음식의 역한 냄새 때문에 불쾌했다.(그 무례를 아직도 본인만 모르고 있으니 문제지만;;)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각자 다른 사회생활을 했으니 개개인의 취향과 성향, 성격이 다른 것은 당연한건데도, 나는 그 모습이 못내 낯설고 불편했다.

10년전만해도 나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식사는 함께 먹으며, 수다하는 즐거운 시간이었기에, 혼자 휴대폰을 보거나 음식이나 TV, 벽을 보며 먹는건 너무나 어색하고 내게는 서툰 일이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누구보다 혼밥을 즐기고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고 먹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직장인에게 부여되는 1시간의 짧고 짧은 휴식시간.
그게 바로 점심시간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시선과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점심에 대한 단상들이 솔직하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산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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