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를 통해서 성공하는 애들은 따로 있었다. 차분히 앉아 있는 걸 잘할 수 있고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있고 두뇌 회전이 빠른 애들이 학교 안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불공평한 건 경제적인 요소만이 아니었다. 특정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들을 우대하는 곳이 학교였고, 학교에서 우리들이 치르는 경쟁은 따지고 보면 공정한 것도 뭣도 아니었다.p154

"그 정도면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 더 독한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더라. 일단 우리는 전쟁은 겪고 있지 않잖아. 지독한 곳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내가 겪은 일로 죽어 버리겠다고 말하기는 나는 좀 그래. 하지만 유리야.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은 각각 다른 것 같더라. 감당해 낼 여건도 다르고. 설령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거야."p206-207
.
.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며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는 열여덟의 유리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학과 동시에 모든걸 훌훌 털어버리고 집을 떠날 계획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택시 운전을 하는 할아버지는 언젠가부터 여행을 간다며 며칠씩 집을 비우지만, 석연찮은 행동들에 할아버지가 투병중인 사실을 알게 되지만 내색하지 않고, 할아버지도 유리도 내색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유리를 입양한 엄마 서정희가 사고로 죽고, 그녀의 아들 연우가 할아버지와 집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유리의 일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유리와 같은 반인 세윤은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반 아이들 몇몇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놀림을 받는다. 그 모습을 본 유리는 자신의 입양 사실을 가장 친한 친구 미희와 주봉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동아리 때문에 함께 어울리기 시작한 세윤은 이이 유리 역시 입양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유리는 자신의 비밀이 알려질까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언제나 큰 감정의 변화 없이 모든 것에 감흥 없고, 무덤덤한 유리는 그저 지긋지긋한 집을 버리고 훌훌 떠나고 싶었고, 할아버지 역시 대학 입학을 기점으로 생활기반을 마련해줄테니 떠나라고 하지만 연우가 집에 오면서부터, 또 세윤에게 들은 자신의 입양 사연에, 할아버지의 병에 혼란스럽고 마음이 어지럽다.

입양된 유리와 엄마 서정희에게 학대 당했던 친 아들 연우, 딸 서정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함께 하는 생활이 시작되고, 늘 함께 해주는 든든한 친구들 덕에 마음을 열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 한 걸음씩 가까워진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곁에 없다고 생각하며, 존재의 이유에 대해 늘 고민하던 입양아 유리와 유일한 가족이기에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으나, 학대 당했던 연우의 삶이 안타깝고 안쓰럽다.

입양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시선, 학대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에 대해 다시금 깊게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혈연에 대한 집착과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하지만, 연일 보도되는 뉴스에서는 혈연관계의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고, 학대하며, 유기한다.
세상엔 다양한 가족들이 존재하고, 혈연보다 더 진한 관계를 맺으며 사랑하고 보듬고 위로하며 아끼고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가족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차별하고 혐오하는 세상은 씁쓸하기만 하다.
동성가족도, 입양가족도, 다문화가족도 모두가 공간을 공유하고, 감정을 나누고, 보듬고, 위안을 주고 받으며, 경제적 공동체를 함께 이루는데 왜 색안경을 끼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걸까.

이야기 속에
살갑지 않지만, 아이들을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담임 선생님이 있어서,
어떤 사정이 있든 마음을 나누고, 같은 편이 되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삶에 생긴 감정의 변화가, 삶의 안정감이 눈물이 날 만큼 뭉클했고, 따뜻해서 아름다웠다.
여운이 오래, 길게 남는 이야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