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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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상의 불행은 결코 쉽게 극복되지 않으며, 아주 길게, 어쩌면 평생 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되기도 한다.p308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밤 동안 지금과 같은 순간을 견뎌내야만 하는 거라. 얼마나 많은 날이 지나야 지금의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될까. 손가락도 까딱할 수 없는 고립 속에서 나는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p350

너는 안다. 너를 향해 기울어 있는 내 마음을 안다. 내가 너에게 더 캐묻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니까 너는 기꺼이 비겁해져도 된다. 그러니까 나는 너에게 더이상 무엇을 물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냐고 추궁해서도, 감정이 동요되어서도 안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 자신의 마음을 꽉 묶어놓은 채 조용히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결말을 내는 것이다.p359

누군가를 밀치고 짓밟고 간신히 도망쳐온 이곳에서도 나는 고작 이렇게 살고 있구나. 그 시절의 내가 너무나도 간절히 바랐던 삶이 이렇다는 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도착한 곳이 여기라는 사실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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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메시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스릴러인듯 싶지만, 사실은 어설프고, 솔직하지 못했던 10대 퀴어 성장 로맨스 소설이다.

읽는 동안 지금은 흐릿한 옛 추억을 소환해 몽글몽글한 기분과 애틋한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시절 상처받기 두렵고, 소외되고 고립되는게 무서워 되려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소외시킬 수 밖에 없었던 정리되지 않은 투박한 감정들이 섬세하게 담겨 있다.
주인공 나, 윤도, 무늬, 태리, 희영, 나미에, 태란의 감정들이 뒤엉켜 방어하고, 숨기기 급급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너무나 잘 담아냈다.

옛추억을 끄집어 내는 박상영 특유의 문체들과 내용들이 흡인력과 몰입도를 높인다.

2002년 월드컵, 호텔아프리카, 나나, Let다이, 별빛 속으로, 노말시티, X, 성전 해리포터, 중경삼림,해피투게더, 박효신, 넬, 자우림, 푸른새벽, 아무로나미에, 에이브릴 라빈, 콜드플레이, 파르페, KTF비기알, MSN메신저 CD플레이어, 만화 대여점, 싸이월드, 캔모아까지...
그 시절 유행했던 음악과 만화책, 체벌과 폭력이 일상이었던 학교가, 나의 옛 추억과 조우하게 하기도 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어지는 퀴어 서사가 성 정체성에 고민하는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 같지만, 실은 누구나 겪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솔직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이룰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사랑이야기가, 안타까워 진한 여운을 남긴다.
책장이 줄어드는게 아깝고, 읽은 후에도 긴 여운이 남아 앞 이야기들을 다시 뒤적이게 만드는 책.
박상영 작가의 매력에 너무 깊이 빠지게 한 책이었다.

연작소설이었던 대도시의사랑법도 참 재미있게 읽어 좋아했었는데 이 책은 정말 진심으로 좋다.
스릴러와 퀴어, 로맨스와 성장이 적절히 섞여 지루할 틈 없이 재미있는데다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따뜻하고 감성적으로 그려내 추억여행까지 할 수 있으니 더 없이 좋을 수 밖에..

아.... 정말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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