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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그럴 때마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정말로, 피부로 느껴진다. 꿈틀. 그걸 토해 내고 싶기도 하고, 비명이라도 질러 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는 더욱 입을 다문다.p35
어떤 기억은 너무나 강렬해서 결코 그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그때는 그런 줄 전혀 모를 수도 있지만. 아니,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순간들이 이렇게나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어쩌면 그렇게 환하게 웃었지, 너는.p116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눈길만으로 아파지는 것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으면서 사라지지도 않는 것들이 있다. 사라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p131
좋은 것을 잃었을 때는 좋았던 만큼 슬플 수밖에 없다. 슬픔은 다하고서야 비로소 다해질 것이다.345
어떤 일은 절대로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나쁜 일만 그런 건 아니다. 좋은 일도, 사랑한 일도 그저 지나가 버리지 않는다. 눈처럼 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눈 내리던 날의 기억마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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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호정은 2학기에 갑자기 전학온 은기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듯 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묘하게 섞이지 않는 모습에 더더욱 시선을 빼앗기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깊게 지내지 못하는 호정은 은기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조금씩 가까워 진다.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있지만 서로의 비밀에 가까워지려하지 않고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맞잡으며 따뜻한 온기와 위로를 나눈다.
그리고 조금씩 아픈 상처를 치유하며 가까워지는 두 사람에게 갑작스레 은기의 지난 과거가 폭로되며, 또 다시 상처를 입는다.
서로가 서로를 잃지않고 싶어, 마음을 열어가는 아이들은 원치않는 상황에 서로를 잃고 만다.
감정에도, 표현에도 미숙했던 시절, 외롭고 이해 받지 못했던 십대의 흔들리고 흔들리던 시절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잘 담아냈다.
아름답게 그려낸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와 묵직하게 담아낸 감정선들이 먹먹하고 안타깝게 다가온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죄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행복해지라고, 있는 힘껏 행복해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긴 여운이 남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