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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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날씬해야 한다고, 철이 들 때부터 누구나 사회에 세뇌된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뚱뚱한 채 살아가겠다는 선택은 여성에게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이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동시에 무언가를 갖추기를 요구한다.p31

사실 남이 어떻게 보든 신경 쓸 필요 없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을 좋아할지도 남이 정해준 기준을 따르고 있었던 거야. p543

이 세상은 살아갈, 아니, 탐욕스럽게 맛볼 가치가 있어요.p594

약 6개월 동안 3명의 남성을 연쇄살인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가지이 마나코.
그녀와 교제했던 40대, 50대, 70대 독신 남성 셋은 모두 합쳐 10억원가량을 그녀에게 건넸고, 이후 각각 수면제 과다 복용, 욕조에서 익사, 전철 투신으로 죽는다.
뚱뚱한데다 소위 말하는 못생긴 가지이의 어떤 모습에 그들은 매력을 느꼈던 걸까?
그녀는 죽은 세명의 남자를 요리 솜씨로 사로 잡았고, 지고지순하게 자신들만을 사랑해주고 순종적일거라 생각하고 그녀에게 빠졌다.
그녀를 인터뷰하는 기자 리카는 가지이가 시키는 대로 그녀의 레시피대로 음식을 먹기 시작하며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발견해낸다.

이 책은 일본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추녀라고 불리는 기지마 가나에가 실제 주인공으로, 100kg의 거구로, "결혼하면 평생 헌신하는 것으로 은혜를 갚겠다"는 말로 유혹해 혼인빙자 사기를 저지르고, 또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스릴러인듯 싶지만, 사실 이 책은 맛있는 음식이 가득 담긴 레시피북에 가까우며, 사회에서 억압된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버터는 냉장고에서 막 꺼내서 차가운 채로 넣어요. 정말로 맛있는 버터는 차갑고 단단한 상태에서 식감과 향을 맛보아야 해요. 차가운 버터와 따뜻한 밥. 일단 그 차이를 즐겨요. 그리고 당신 입속에서 두 가지가 녹아서 섞이며 황금색 샘이 될 거예요. 네, 보이지 않아도 황금색이란 걸 아는, 그런 맛이죠. 버터가 엉킨 밥 한 알 한 알이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마치 볶은 듯한 향기로움이 목에서 코로 빠져나가죠.”
p39-40

지친 몸을 부드럽게 안아주는 듯한 향과 깊은 맛, 제철 식재료는 확실히 활력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더 혀끝을 포박하면서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는 듯한, 강하고 악착같은 맛이었다.p43

버터가 들어간 음식 중에 맛이 없는 음식이 세상에 있을까?
특히 책에서 너무나 맛있게 표현되는 버터간장밥은 너무 아는 맛이라 먹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도 돌봐주지 않았던 외로운 가지이가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고, 또 맛있는 음식들을 욕망했던 것은 아닐까.
기자인 리카에게 알려주는 음식과 레시피로 인해 조금씩 체중이 늘고, 예전과 같은 식생활이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과정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지나친 가부장적 문화와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여성들은 사회에서 억압되고 많은 차별을 경험한다. 아름다움을 위해, 타인의 시선 때문에, 여성에게 요구하는 외모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먹고 싶은 음식을 자제하며 끊임없이 아름다움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읽는 내내 허기지는 소설이다.
주인공 가지이가 살아온 세상,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차별과 편견에 맞서는 여성의 삶 이야기가 그러하고, 책에 등장하는 음식들 때문에 그러하다.

그렇게 먹고도 리뷰를 쓰면서 따뜻한 밥에 차가운 버터를 올린 간장밥이 먹고 싶은걸 보면, 난 식욕은 억누르지 못하고, 욕망에, 식욕에 충실한 사람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간장버터밥을 먹지 않을 재간이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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