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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는 24시
김초엽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삶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었다. 최종회 다음에도 삶은 계속 이어지는 법이다. 3회에 클라이맥스가 나와 버려도 16회까지 드라마는 이어져야 한다. 심지어 드라마가 끝난 다음에도 사람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100회가 될지 1000회가 될지 모르는 긴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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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들은 일을 잘했다. 어마어마하게 많이 만들어 내고 아무 대가도 받아 가지 않았다. 아예 퇴근을 안 했다. 사람들은 점점 할 일이 없어졌다. 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순리대로 모두가 일자리를 잃었다. 지역 랜드마크라고 할 만큼 거대한 공장에도 사람은 대여섯 될까 말까 했다. 인간은 거기에서 나오는 잉여 소득을 잘 나누어 행복하고 여유롭게 즐기기만 하면 됐다. 이론은 그랬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이 곧 취미마저 잃고 만 것이었다.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 활동도 의미가 없어졌다. 기계는 작곡도 잘했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음악을 분당 이천 곡쯤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소설도 시도 그림도 다 그랬다. 창작은 이제 무의미했다. 세상에는 좋은 게 차고 넘쳤다. 누가 엉성한 작품 하나를 더 보탰다는 소식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다.-배명훈 수요곡선의 수호자 中-
사람들은 사정을 털어놓고 이해와 공감을 받아야 하는 줄 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런 결심을 했을지 여러 차례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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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해하고 공감하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런 것 없이도 일한다. 직업이란 그런것이다. 그건 아무리 이해하고 공감한다 해도 돈이 안되면 일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편혜영 우리가 가는 곳 中-
"근데 문제는 논다는 것에는 언제나 파괴적인 충동이 작용한다고 생각해. 카니발 같은 잔혹한 축제가 인류의 풍습인 것도 그렇고, 하물며 세상 무해해 보이는 돌고래도 산 물고기를 던져 가며 노는 거니까..."-김금희 첫눈으로 中-
1.글로버리의 봄- #김초엽
긍정적인 감정으로만 생각하기 쉬운 즐거움의 이면을 파고들어, 즐거움을 주는 일이 타인에겐 괴로움을 느끼는 일로 그려내며 감정의 다면적인 지점을 다룬다.
2.수요 곡선의 수호자- #배명훈
주로 공급 곡선에 관여하는 인공지능 로봇을 소비 곡선으로 위치를 옮겨 소비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로봇 ‘마사로’가 감각하는 유희를 풀어낸다.
3.우리가 가는 곳- #편혜영
사라지는 것을 선택한 두 인물이 낯선 곳에 도착하여 예상치 못한 일을 겪으며 새로운 경험으로써의 소풍을 그려내고 즐거움을 환기한다.
4.일은 놀이처럼, 놀이는…...- #장강명
간절히 바라던 일을 스스로의 힘이 아닌 기계를 통해 손쉽게 이루었을 때 느껴지는 성취가 마냥 즐거울 수만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5.첫눈으로- #김금희
예능국의 노동과 놀이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즐거움을 만들기 위해 매 순간 어떤 선택과 고민을 할지를 그린다.
6.바비의 집- #박상영
즐거움 안에 포함된 다양한 문제들을 놀이로써 승화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7.춤추는 건 잊지 마- #김중혁
난민과 경계, 식물과 숲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거움의 마지노선을 춤추는 것을 잊지 않는 순간으로 구현한다.
유명 소설가 7명이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쓴 단편 소설 #앤솔러지 로 #엔씨소프트 와 함께 기획한 책이다.
'놀이터'는 듣기만 해도 재미와 즐거움이 가득한 공간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책 속에는 우주, 심해도시, 중독성 강한 뇌자극, 방송국 예능국, 뉴욕의 어느 놀이공원, 초록초록이 가득한 숲속까지 다양한 놀이 공간이 담겨있어 멀리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 속에는 노동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회사, 갑질하는 상사, 슬럼프, 세상으로부터 자취를 감추고 싶어하는 사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곳곳에 있어 생각할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놀이공간과 즐거움을 주는 개체들이 다양하게 변하고 발전했지만, 이야기와 책이 주는 즐거움은 시대가 변해도 계속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들의 상상력들이 과거, 현재, 미래로의 다양한 시공간 이동을 가능하게 하여 24시간 문 닫지 않는 특별한 놀이터를 만들어냈다.
역시 앤솔러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