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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젠틀맨
심재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5월
평점 :
날 보호해주고 먹고 살 일감을 주던 사람들은 이제 다 죽고 없다. 세상은 이런 걸 상실감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잘못된 표현 아닌가 싶다. 자유라고 불러야 옳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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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빛무리를 넋 놓고 쳐다보고 있자니 문득 이해가 찾아왔다. 그렇다. 이 빛은 우리가 흔히 '가능성'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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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과 난 다른 인간인가, 잠시 생각해보았다. 만약 다르다면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 저들도 행복이라든가 성공을 간절히 원할텐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남을 때리거나 나이프를 들기도 하는가. 한 인간의 성격과 기질, 소속을 결정하는 건 무엇일까. 저쪽과 나 사이엔 4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가로놓여 있는 양쪽을 구분해주는 건 그것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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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해 승천했다는, 이른바 신의 아들이라는 남자의 탄생일이다. 이왕 내려온 김에 가난이든 질병이든, 전쟁이든 매춘이든 뭐 하나 딱 부러지게 해결하고 갔다면 좋았을 것을. 자기만 날개 달고 하늘로 슥 올라가버렸다.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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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을 무시할 순 없지.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니?
세상에 끝이란 건 없어.누구도 끝이라고 말할 자격은 없어. 안드로메다에선 우리가 외계인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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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90년대가 배경으로 조직폭력배이자 청량리 사창가 포주로 일하던 주인공은 우연찮게 자신과 닮은 사람의 대학교 학생증을 얻게 되고, 조직폭력배 우두머리의 생일파티에서 발생한 잔혹한 살인사건 덕분에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그는 기존의 자신의 삶을 버리고 학생증의 주인이 되어 살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한 대학의 학생으로 평범하고도 평범한 삶을 이어가게 된다.
조직폭력배가 학생이 된다라는 설정에 가볍고 유쾌한 소설이구나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유쾌와는 거리가 멀었달까.
주인공은 시니컬하지만, 순수한 면을 가지고 있고, 누구에게나 함부로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수행해가며,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며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편이랄까.
몹시 재미있는 소재였고,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90년대의 묵직한 현실과 사건들을 중간중간 포함하고 있어 숙연해지는 기분도 들고, 조직폭력배와 서울의 한 사립대 학생의 삶을 극명하게 나누어 놓았으나, 서로의 삶에 녹아들어 만족하며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들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삶을 선택하는 것 역시 인간의 의지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것 같기도 하고.
보여지는 한 단면만을 보고 누군가를 판단하고,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것은 아닐까.
결말부분도 재미있었다.
가벼운 소재라 생각해 킬링타임용이라 생각했는데 결코 가볍지 않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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