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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개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월
평점 :
사회적 기금? 인재 육성?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거에 관심 있어요?
국제 대회 나가서 우승 좀 하면 자랑스러운 국민이고 제2 금융권 스폰서 받으면 똥 묻은 자식이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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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조롱은 예선에서 탈락한 불면의 밤을 덜어 주지 않았다.
예선도 뛸 수 없던 어린 선수의 눈물을 닦아 주지 않았다.
도핑을 제외한 모든 승패는 도덕성을 묻지 않고 나이를 묻지 않고 땀의 근수를 묻지 않는다.
잔인하리만치 승자와 패자로 갈릴 뿐이다.
물러터진 활석이 되든가 단단한 금강석이 되든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승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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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는 늘 무언가가 늦게 왔다. 사람보다 마음이 늦었고, 행동보다 후회가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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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길중 하나는 심연이고 다른 하나는 나락이다. 상처를 껴안으면 심연으로 내려가는 거고 발버둥 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지.
빛이 없기는 매한가지나 한쪽은 상처가 벗이 되고 또 다른 한쪽은 어둠이 그 자체로 얼음송곳이 되어 나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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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독선 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옳다가 나쁜 게 아니라 나만 옳다고 상대가 숨 쉴 구멍을 막아 버리는 게 더 나쁜 거더라고.
그 안에 든 독약은 두 개야. 하나는 나만 옳다는 거고 또 하나는 너는 틀렸다는 거지. 그럼 둘 중에서 어떤 게 더 치명적인가.
둘다 회생 불가 악질이지만 굳이 독성을 따지자면 내가 옳다는 쪽이 더 악질이야. 세상에서 저만 옳다는 놈 해독제는 없더라.
그러니까 너나 나나 중증에 빠지기 전에 나는 옳다, 너는 틀렸다가 아니라 너와 나, 우리 모두 싹 다 틀렸다를 인정해 보자고. 아닌 가지를 쳐내고 살릴 가지만 남으면 그걸 붙잡으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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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이 소란스러워져야 내부의 균열을 잠재울 잠시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나같이 보호막이 없는 놈을 짓밟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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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고통을 이기는 처방은 단 하나뿐이다. 더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죽어도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 지옥 같은 현실을 잊는 최고의 진통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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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테니스계 유망주 임석은 스폰서이자 친구 아버지의 초대로 별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이유 없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눈을 뜨니 다친채로 병실에 누워있고, 경찰은 그런 그를 무면허에 약을 하고 동갑인 김유진 사고 가해자로 지목하고 결국 청소년 감별소에 들어가게 된다.
모든 정황이 그를 향하고 있을 무렵 임석의 아버지가 고용한 임지선이라는 변호사가 오게 되고,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간다.
유소년 테니스계를 어른들의 더럽고 추악한 욕망으로 헤집어 놓고 망가뜨리고 결국은 자신들의 돈줄로 이용하려는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 소설이다.
총망받는 테니스 선수 임석은 벗어날 수 없는 검은 덫에 걸려 그간 모른척 해오고, 신경쓰지 않았던 추한 진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을 돈벌이로만 이용했던 엄마, 방임했던 아빠, 믿었던 친구의 배신, 생각지 못한 진실.
모든 것을 받아드리고, 이겨내야했던 꿈 많던 십대들의 이야기는 처절하고 안타깝다.
유소년 선수인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것부터 배우며 승부의 세계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시 여긴다.
사랑과 관심 받아야 마땅한 아이들은 그렇게 코트안에서 투견처럼 서로를 물어뜯으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누르는 방식은 코트 안 뿐 아니라, 임석이 들어간 청소년 감별소에서도 계속 되어 밟고, 밟히고의 삶이 뫼비우스 띠처럼 계속 된다.
세밀하고 정밀한 묘사들과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심지어 감정선도 좋고, 비유들도 좋다.
투견 이야기로 코트안에 갇혀 싸움을 해야만 하는, 청소년 감별소에서 우두머리 경쟁을 하는 아이들과 크로스 오버 된다.
쉴새 없이 몰아치는 이야기들에 지루할 틈없이 49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스릴러와 사회비판과 스포츠 등을 잘 섞어 페이지터너로 손색이 없다.
읽은 뒤에 많은 여운이 남는 책이다.
비열, 처절함, 치열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시니컬한 표현들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표현들이 압권이다.
약육강식, 부익부빈익빈, 승리, 일등지상주의, 사회비판 등이 적절히 버무려져 있는 이 책은 요 근래에 읽은 소설 중 단연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