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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그의 삶을 흔들어놓는 것이 바로 그 불확실성이라는 것은 자명했다. 그렇다면 거기에 굳이 나의 존재라는 변수 하나를 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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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으로 살날은 이제 다 살았어. 내가 질 짐도 이만하면 다 졌고. 내가 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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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렇게 남들 눈치 보고 거기에 다 맞춰줄 필요도 없다. 너는 워낙에 네 기분보다 남의 속을 먼저 들여다보니까, 순서가 반대로 됐잖니. 그게 걱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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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순간, 할머니의 표정은 편안했다.
'개운하게 가겠다' 라던 결심이 그대로 이루어진 듯 모든 짐을 내려놓고 떠나는 할머니의 입 끝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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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시리즈의 두 번째는 안락사를 주제로 한 소설이다.
무엇보다 이 작은 책에 너무도 묵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먹먹했다.
당뇨와 파킨슨 병에 지칠대로 지친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죽음을, 죽음의 날을 나 스스로 선택하겠노라 선언한다.
안락사를 선택한 책 속 할머니 뿐 아니라, 평생을 힘겨운 삶을 살아왔고, 살아낸 누군가에게 죽음의 선택정도는 할 수 있게 하는 게 당연하단 생각이 들다가도,
삶을,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게 하는...
만감이 교차하게 하는 묵직하고 먹먹한 이야기였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 또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것이 나의 가족이 된다면 나 또한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살아야한다고 울며불며 매달리겠지.
죽음에 대해서, 안락사에 대해서, 연명치료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당사자가 아닌 어떤 누구도 판단할 수도, 결정할 수도 없는 일인 듯 싶다.
본인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살아야하지 않을까 싶은.
내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했던 어려운 주제였다.
책 속 할머니는 자신의 몸이 해지고 찢긴 옷에 비유한다.
그 문장이 어찌나 가슴아프던지.
늙는다는 것. 스스로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 그것이 자신의 죽음에 관한 것이라는 것.
모든게 어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