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10 - 자유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십계명 탐구
숀 글래딩 지음, 임고은 옮김 / 죠이선교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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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에의 초대장, ‘TEN'

(TEN, 숀 글래딩/죠이선교회)

‘TEN'. 표지와 제목에서부터 눈길을 끌었다. 먼저 ‘TEN'이란 제목이다. 한 때 즐겨 마셨던 음료수 이름 같기도 하고, 10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개발의 10가지 항목을 상징하는 숫자 같기도 하고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짙은 회색 표지에 까맣게 씌여진 ‘TEN(10)'이란 책제목은 머리속도 까맣게 하는 듯 했다. ’무슨 책이지??‘ 책을 이모저모 살피다가 표지 상단 구석에 조그맣게 씌여진 ’자유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십계명 탐구'라는 글귀를 발견하고야 이 책이 ‘십계명’을 다루려는 책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표지를 넘겨보니 지은이 숀 글래딩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그 중, ‘영국 노리치 출신으로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 거주하면서 대학생 대상으로 목회활동을 하고~’라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아, 구태의연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청년들을 상대하는 청년 사역자 출신이라 좀 접근이 달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목차도 여느 십계명 책과는 다르다. 완전 거꾸로다. “십계명 - 누가 신경이나 쓰나? , 1 시기에서 만족으로 / 제10계명, 2 기만에서 진실됨으로 / 제9계명, 3 절도에서 관대함으로 / 제8계명, 4 배신에서 신의로 / 제7계명, 5 폭력에서 평화로 / 제6계명, 6 순종에서 존중으로 / 제5계명, 7 분투에서 휴식으로 / 제4계명, 8 신성 모독에서 경외로 / 제3계명, 9 우상 숭배에서 찬미로 / 제2계명, 10 하나님 / 제1계명” 10계명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많을만한 앞부분이 아니라 뒷부분부터 다룬다는 것도 그렇고, 수동적인 금지가 아니라 능동적 실천에 대해 방점을 두고 이야기한다는 것도 그렇다. 책장을 넘겨보니 표지나 목차만 신선한 것이 아니라 내용도 참신하다. 이 책의 장점을 몇 가지 적어본다.


첫째, 마치 욥기처럼 십계명을 10명의 사람들이 대화로 풀어간다. 20년된 할리데이비슨 고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목사 존을 비롯하여 등장하는 인물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며 십계명에 대해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정말로. 아마 이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지 싶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이 가볍거나 부실하지는 않다. 아마도 저자 숀이 불신자가 대다수일 청년들을 대상으로 20년간 사역하면서 깊이 고민하고 생각했던 문제들인까닭에 내용은 쉽지만 깊이가 있어 깨닫게 되는 점이 많다. 어떤 부분에선- 교만에서 비롯된 끝없는 탐욕을 깨닫게 해주는 제10계명이나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된 광범위한 도둑질에 대해 깨닫게 해주는 제8계명 부분 등-  우리 자신의 숨은 마음들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 거리고, 회개의 심령이 생기게 한다.


둘째, 십계명의 의미해석 뿐아니라 구체적인 적용점까지 알려준다. 숀 글래딩의 중요한 관심은 십계명의 실제적 적용이다. 원래 하나님께서 시내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신 목적이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가 아니라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당당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저자도 오늘날 십계명을 받는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의 동반자로서,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어떻게 제사장 백성으로 살 수 있는지를 계속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이렇게 묻는다. “자, 이제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해 볼 때가 됐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어떤 실천방안을 채택할 수 있을까요?”라고. 덕분에 많은 적용 점들을 볼 수 있고, 십계명이 결코 먼데 있거나 혹은 우리를 옭아매는 것이 아닌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장같은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끝으로, 책을 읽다보면 홀로가 아닌 하나님 앞과 이웃들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배우게 된다. 거짓과 비윤리, 불신앙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십계명을 통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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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 세월호와 기독교 신앙의 과제
박영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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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네팔에서 한 기독교 NGO 단체가 전도지를 나누어 주면서 “이런 재난은 예수가 아니라 큰 거인과 같은 힌두교 신들을 믿어서 벌어진 일이므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즉, 네팔 지진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생긴 징벌적 재난이라는 것이다. 신앙 전통에 있어서 재난 당한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위로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는 욥의 세 친구로부터, 가깝게는 일본 쓰나미와 세월호 사건에 대한 목회자들의 연속적 망언들이 그것이다.


저자는 타인의 고통을 쉽게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는 우리 기독교 전통은 가슴이 아닌 철학자들의 머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을 철학자들이 말한 제1원인자로, 전지전능하셔서 모든 만물에 대한 예정을 가지신 분으로, 그리고 고통과 재난을 통해서라도 그 뜻을 관철하시는 분으로 우리가 보기에 타인의 고통 앞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쉽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신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고통의 제1원인자, 고통의 예정자가 아니시다. 지진이나 쓰나미같은 징벌적 고통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뜻을 관철하시는 하나님도 아니고, 더 유익한 삶과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참혹한 고통을 사용하시는 하나님도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하나님은 고통을 해명하기 보다는 고통당하는 자들로 인해 함께 아파하시고 침묵하시며, 그 참혹한 고통의 현장에서 고통의 당사자들이 ‘다시’시작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고통을 극복하게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욥의 고통을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셔서 극복하도록 도우신 사건이 그렇고, 십자가의 잔인한 고통과 극한 절망의 수렁에서도 당신이 함께하실 때 부활의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그 증거인 것이다.


고통당하는 자들을 향하여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예정이라는 신학적 개념을 미시적으로 사용하여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행위를 숙명론적이고 결정론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섭리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활동을 미래지향적인 창조와 구원의 사역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 고통의 의미는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쟁취해야 할 그 무엇이다.” 함부로 하나님의 뜻 운운하면서 그들의 고통을 강 건너 불 보듯이 말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욥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고통당한 사람들 옆에 “말없이 그 곁에 서 있는 것, 손을 잡고 슬픈 눈을 응시하는 것, 좌절하고 분노하고 절규하는 그 고통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지켜봐 주는 것, 함께 우는 것, 그리고 이 어처구니 없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함께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200페이지에 불과한 책이었지만 하나님과 신학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짜여진 극본대로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전능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시고 스스로 약하게 되셔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 속에 들어와 피조물의 고통과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시는 ‘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이 인상 깊었다.


아울러 신학함이란 이미 세워진 결론을 가지고 현실로 들어가 현실을 거기에 맞추어 내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하는 현실의 문제들을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 그때그때 응답해주시고 말씀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응답을 맛보는 것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노도같이 밀려오는 바벨론 군대 앞에서 “어찌하여 ~”라고 말했던 하박국처럼, 악한 자의 형통에 대해 여호와께 따졌던 예레미다야 선지자처럼,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연속되는 현실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고 그 분의 대답을 찾아가며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하는 것이 신학의 길임을 말이다.


이왕에 나온 <고난과 하나님의 전능>이라는 학술서가 기반이 되어서이겠지만 이 책은 비교적 평이하고 매우 쉽게 읽힌다. 그동안 읽었던 고난에 관한 책들-토마스 롱의 <고통과 씨름하다>, 필립 얀시의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 등-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체계적인 동시에 매우 공감가는 책이었다.

고통의 의미는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쟁취해야 할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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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이끄는 삶
마이클 하딘 지음, 이영훈 옮김 / 대장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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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성경은 우리가 너무나 사랑하는 책이다.

 

이 책은 성경을 완전 낯설게 만드는 책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한 번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으시다. 예수님이 언급한 하나님은 보복적이지 않으시고, 죄와 징벌에 앙갚음의 논리를 적용하지 않으신다. 값없이, 무조건적으로 자애롭게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복음서보다 유대 묵시적 상상, 중세 기독교적 가정, 그리고 보복적 정의를 보려하는 우리의 욕망에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 146’


신약에서 예수님이 한 번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으시다고? 그렇다면 그동안 보아왔던 성경은 무엇인가? 다시 책을 들여다 본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셨다(요5:22)”,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서, 그것을 지키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는 것이다(요12:47).”예수님의 메시지에는 분명 심판의 메시지가 없다. 저자는 말한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난 하나의 이름, 즉 예수의 이름으로 가라고 권하고 싶다.”고. 그래서 ‘성서의 빛으로 예수를 읽기 전에, 예수의 빛으로 성서를 읽으라!’(p45)고 도전한다.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그동안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예수에 대해, 성경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속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내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맞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특히, 유대인으로서 예수의 성경 해석과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급진적 삶(산상수훈)을 다루는 1장, 희생원리의 포기와 비폭력적 속죄로서 예수님의 사역의 메시지에 대해 말하는 3장, 모든 성서의 증언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르네 지라르의 ‘모방적 현실주의’를 소개하는 5장, 구약 해석하기를 다루는 6장의 인상은 내게 너무나 새롭고, 흥미로우면서도 강렬했다.


신학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어렵지 않은 책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 책은 ‘어떤 공식적 훈련도 받지 않은, 기독교 신학과 성서에 관심이 있는 일반 사람’이라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상당한 인내심과 집중을 요구하지만. 그리고 그 인내와 집중에 넘치도록 보상을 부어주는. 종교적 현상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예수를 탐구하는 데 관심을 가진 분들이 필독하시길 권해드린다.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수를 따르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리스도를 진실되게 알 수 없다. 아울러 예수를 먼저 알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를 따를 수 없다(p60).”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수를 따르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리스도를 진실되게 알 수 없다. 아울러 예수를 먼저 알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를 따를 수 없다(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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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 기독교란 무엇인가, 전면 개정판
박철수 지음 / 대장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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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가라앉은 것은 국가만이 아니었다. 교회도 가라앉았다.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교회의 민낯들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현실 도피적인 동시에 개인적이며 철저하게 세속적인 교회의 얼굴 말이다. 까닭에 대부분의 교회가 사회로부터 갈수록 심해의 고요를 느끼며 적막하고 고립된 상태가 되어 가고 있다. 가라앉고 또 가라앉아 가는 한국교회를 인양해낼 수 있을까? 한다면 어떻게 인양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을 주는 책이 이 책이었다.

이 책이 절반 넘는 분량을 할애해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 찾기였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딴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회개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메시지로 회개를 말씀하셨다.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예수님께 맞춰 존재의 모든 측면-삶의 양식, 태도, 사고방식 등-을 철저하게 바꾸어, 완전히 딴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이러한 회개는 매우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작업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회개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절실하게 요청되는 선결작업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전환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를 총제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1-5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6-9장에선 이미 시작된 그러나 완성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10-16장에서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실천적인 삶에 대해 가난한 자, 정치, 생태계, 안식일, 교회, 종말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가 내용들을 다루는 방식은 깊이가 있으면서도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초대교회의 회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4장 하나님 나라와 회개(2), 금융자본주의를 폐해를 말하는 10장 하나님 나라와 가난한 자, 정교 분리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루는 11장 하나님 나라와 정치,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종말론에 대해 다루는 16장은 매우 와닿고 유익하고 신선했다. 이 책 덕분에 내가 하나님의 백성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많이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나님 나라는 죽은 다음 가는 천당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Now and Here) 생명과 자유와 해방을 경험하며, 나아가 자유의 나라, 정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어가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나라이다. 이것을 모른다면 이 땅에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p31).” ‘I-my-me-mine’의 자기중심적 세계를 벗어나려는 분투가 필요하다. 그래서 성경 최대의 주제요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 우리에 대한 관심,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가라앉은 채 누리는 심해의 적막함으로부터 우리가 인양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전인적이고 총체적이고 세계적이고 우주적이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개인과 내면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지향이다. 교회는 이 땅에 새로운 세력이요, 세상 나라에 침투하여 갱신하고 변혁하는 세력이요 모임이다(p34).” 한 걸음 물러나서 수동적으로 관망하고만 있는 것은 악이 승리하는 데 일조하는 것일 뿐이다. 갱신된 이 땅 위에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교회는 적극적으로 세상 나라에 침투하여 갱신하고 변혁해야 한다. 어떻게? 먼저, 이 책을 읽는 일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지? 아울러, 신앙은 사적영역에 속한 것이라 여기게 만드는 사단에게 속지말고, 적극적으로 신앙을 공적자리에 끌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윌버포스가 ‘노예제’라는 잘못된 사회체제를 바꾸기 위해 분투하고 승리한 것처럼 잘못된 체제들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과 우리의 부족함 때문에 아프고 신음할 일이 많은 이 시대이다. 하지만 “오직 신음하는 자만이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말처럼 우리의 신음과 고통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본질로 돌아가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고민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의 몫이다.

하나님 나라는 죽은 다음 가는 천당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Now and Here) 생명과 자유와 해방을 경험하며, 나아가 자유의 나라, 정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어가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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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도시
스카이 제서니 지음, 이대은 옮김 / 죠이선교회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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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게 가장 놀라웠던 구절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망가진 세계를 미래 도시로 만들 것이다. 예수와 그의 백성이 그랬듯이, 이 땅 자체가 죄에서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고 영화로워질 것이다… 미래도시는 천상에 속한 하늘도 아니고 다른 것으로 대체된 땅도 아니다. 이는 하늘과 땅이 결합하여 영화롭고 회복된 우주로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거주할 곳이다(pp118-9).”


그 동안 의식 혹은 무의식중에 이 세계는 침몰해가는 타이타닉, 교회는 물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는 구조선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책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성경은 이 세계는 결코 침몰해가는 그래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 타이타닉이기만 한 것은 아니며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물에 빠진 사람들을 건지는 일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병과 악한 것을 고치심으로 창조질서를 회복시키시고,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에게 풍요로움을 선사하신 것이 그 때문이다. 주님께 이 땅은, 결코 불에 타 없어지고 말 그 무엇이 아니라 불로 정화시켜 새롭게 하시고 연속해 나가실 소중한 그 무엇이다(벧후3:12-13).


이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주시는 증거가 예수님의 부활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신령한 몸이었지만, 동시에 제자들이 그 창자국과 못 자국을 보며 주님이심을 알아볼 만큼 이 땅에서 가지셨던 그대로의 몸이기도 하셨다. 장차 임하게 될 하나님의 도시는 결코 이 땅을 없애버리거나 완전 대체해버리는 그 무엇이 아니다. ‘회복된 우주’이다. 그것이 보좌에 앉으신 그 분이 "보아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 고 하셨던 의미이다(계21:5). 그렇다면 과연 ‘이 망가진 세계’ 혹은 ‘이 땅 자체가’가 회복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저자의 말을 다시 한 번 들어보자.


“미래 도시에서 다윗왕은 어느 날 미켈란젤로가 만든 자신의 조각상을 감상할 것이다. 헨델은 메시야를 위해 자신이 작곡한 ‘메시아’를 연주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재능을 발휘하고 참여하고 있는 모든 일은 구속받고 오염되지 않은 형태로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p130).”


생각만 해도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첫째,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세우며 이 땅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모든 일들-예술, 문화, 경제,…-이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시에서 이어진다. 둘째, 영혼을 구원하는 성직(?)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분야의 일들이 하나님의 도시에서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주님과의 교제의 삶을 살며(최고 소명),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순종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감당하는 일은(공통 소명), 그 어떤 일이든지(특별 소명)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도시를 세워나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소명(Vocation)으로서 우리의 직업의 의미를 명쾌하게 이해하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감당하는 노동은 어쩔 수 없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열정을 가지고 추구할만한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말처럼 참으로 믿음의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영역 속에서 유일한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가 ‘그 곳은 내 것이다!’라고 선포하지 않으신 공간은 단 한 치도 없는 것이다.


이 짜릿한 책을 통하여 교회 밖 혹은 안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의 입가의 미소와 삶의 활기가 샘솟게 되길 그래서 이 땅의 교회에도 봄이 오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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