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 세월호와 기독교 신앙의 과제
박영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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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네팔에서 한 기독교 NGO 단체가 전도지를 나누어 주면서 “이런 재난은 예수가 아니라 큰 거인과 같은 힌두교 신들을 믿어서 벌어진 일이므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즉, 네팔 지진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생긴 징벌적 재난이라는 것이다. 신앙 전통에 있어서 재난 당한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위로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는 욥의 세 친구로부터, 가깝게는 일본 쓰나미와 세월호 사건에 대한 목회자들의 연속적 망언들이 그것이다.


저자는 타인의 고통을 쉽게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는 우리 기독교 전통은 가슴이 아닌 철학자들의 머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을 철학자들이 말한 제1원인자로, 전지전능하셔서 모든 만물에 대한 예정을 가지신 분으로, 그리고 고통과 재난을 통해서라도 그 뜻을 관철하시는 분으로 우리가 보기에 타인의 고통 앞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쉽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신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고통의 제1원인자, 고통의 예정자가 아니시다. 지진이나 쓰나미같은 징벌적 고통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뜻을 관철하시는 하나님도 아니고, 더 유익한 삶과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참혹한 고통을 사용하시는 하나님도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하나님은 고통을 해명하기 보다는 고통당하는 자들로 인해 함께 아파하시고 침묵하시며, 그 참혹한 고통의 현장에서 고통의 당사자들이 ‘다시’시작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고통을 극복하게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욥의 고통을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셔서 극복하도록 도우신 사건이 그렇고, 십자가의 잔인한 고통과 극한 절망의 수렁에서도 당신이 함께하실 때 부활의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그 증거인 것이다.


고통당하는 자들을 향하여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예정이라는 신학적 개념을 미시적으로 사용하여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행위를 숙명론적이고 결정론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섭리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활동을 미래지향적인 창조와 구원의 사역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 고통의 의미는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쟁취해야 할 그 무엇이다.” 함부로 하나님의 뜻 운운하면서 그들의 고통을 강 건너 불 보듯이 말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욥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고통당한 사람들 옆에 “말없이 그 곁에 서 있는 것, 손을 잡고 슬픈 눈을 응시하는 것, 좌절하고 분노하고 절규하는 그 고통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지켜봐 주는 것, 함께 우는 것, 그리고 이 어처구니 없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함께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200페이지에 불과한 책이었지만 하나님과 신학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짜여진 극본대로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전능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시고 스스로 약하게 되셔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 속에 들어와 피조물의 고통과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시는 ‘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이 인상 깊었다.


아울러 신학함이란 이미 세워진 결론을 가지고 현실로 들어가 현실을 거기에 맞추어 내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하는 현실의 문제들을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 그때그때 응답해주시고 말씀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응답을 맛보는 것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노도같이 밀려오는 바벨론 군대 앞에서 “어찌하여 ~”라고 말했던 하박국처럼, 악한 자의 형통에 대해 여호와께 따졌던 예레미다야 선지자처럼,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연속되는 현실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고 그 분의 대답을 찾아가며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하는 것이 신학의 길임을 말이다.


이왕에 나온 <고난과 하나님의 전능>이라는 학술서가 기반이 되어서이겠지만 이 책은 비교적 평이하고 매우 쉽게 읽힌다. 그동안 읽었던 고난에 관한 책들-토마스 롱의 <고통과 씨름하다>, 필립 얀시의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 등-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체계적인 동시에 매우 공감가는 책이었다.

고통의 의미는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쟁취해야 할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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