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단편들을 묶어놓은 엔솔로지라 깊은 내용은 기대하지 않았고 그저 떡씬만 나와도 좋겠다했는데, 이건 그런 얕은 기대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얄팍한 이야기들이였다. 차원이동 환생물이란 대메이저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전형적이고 재미없는 책을 만들다니. 심지어 몇몇 작품은 작화와 연출이 어색하고 기본기 부족이 여실히 느껴짐. 스토리는 바람에 날아갈듯 가볍기 그지없고. 다음부턴 절대 앤솔로지는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흔이 넘도록 제대로 사랑도 못해보고 회사일에 치여 나이만 들어가던 수가 우연히 연애앱에 매칭된 공과 마주쳐 평생의 연인이 되는 이야기다. 표지는 비교적 매끈해보이는데 속알맹이의 공수는 확실히 마흔 넘은 아저씨들다운 외형이라 현실감이 느껴졌다. 얼굴에 주름도 있고 약간 피로에 찌든 샐러리맨의 모습이랄까. 그래선지 정말 어딘가에 있을법한 현실적인 커플처럼 보였음.새로운 만남에 설레고 두근거리는데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아련함이 잘 느껴졌다. 대단한 이벤트라거나 사건사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 따뜻하고 귀여운 이야기였다. 공수 둘다 참 좋은 사람들이라 불편하지 않았고. 감정선이 섬세하고 전개가 자연스러워 성애적인 표현이 없는데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가끔은 이렇게 풋풋한 사랑이야기도 괜찮은 것 같네.
작가의 전작을 재밌게봐서 기대했는데 역시나 정신빠지고 엉망진창인 이야기였다. 초반부터 스토리가 겉잡을수없이 몰아쳐서 적응하기 힘들 정도였다. 뭐가 이렇게 급발진이여; 공이고 수고 제정신이 아닌듯.이웃집 누나에게 당한 트라우마로 섹스를 못하는 이성애자 수, 첫 여친의 말에 상처받아 발기가 안되는 공. 우연히 만난 둘은 비슷한듯 다른 이유로 플라토닉한 연애를 지향하다 의기투합해 사귀기로 한다. 어쩌다 그런 결론이 난건지 아스트랄한데 어찌저찌하다 섹스도 한다. 아니대체 어찌된영문이여... 어리둥절한 와중에 나름 순애로 빠지는 둘의 심리상태가 이해갈듯 이해가 안된다. 근데 또 납득이 가는 희한한 전개.처음은 그렇게 가벼웠는데 가면갈수록 무거운 이야기가 끼어든다. 깊은 관계가 무서워 을을 자처해온 수와, 그저 좋은 사람일 뿐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는 공. 둘이 서로에게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좋았다. 사랑받는게 무서운데 공한테 사랑받고싶은 수도 귀엽고, 수를 사랑하고 싶은데 무섭게 하지 않으려고 참는 공도 웃기다. 키스 피하겠답시고 펠라를 하다니 여태 수가 살아온 방식은 도저히 이해가 안가지만(..) 결론은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고 천생연분의 짝을 찾았으니 잘됐다 잘됐어.근데 공을 자꾸 수소같이 가볍기만 한 사람으로 치부하는게 이해가 안간다. 실속 안차리고 착하기만 해서 그런가? 공이 하는 말에 무게감이 없다는둥 입만 산 가벼운 남자로 생각하는게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공은 그냥 솔직하고 착하고 다정한 것뿐이었는데.
여자보다 예쁜 도련님수와 견공처럼 충직한 보디가드공의 쌍방짝사랑물. 구도며 캐릭터며 너무나도 전형적이라 손발이 오그리토그리. 이건 뭐 세기말도아니고... 아직도 이런 내용으로 벨을 그리다니 용감하달까. 아니 클래식은 영원하단건가. 비엘 아니고 야오이라 해야할것같은 작품이다. 넘나 올드하고 어디서 많이 본것같은 이야기였어. 요샌 하도 남자다운 수가 많아서 그런지 이런 꽃수가 오히려 신선할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아야세과의 천상수 참 오랜만에 보는듯도.(근데왜 공은 카노과가 아닌가<) 키스도 몰라서 숨쉬는것도 못하는 순수함이라니. 그런 와중에 자기한테 억지로 키스하려던 놈은 또 쉽게도 용서해주는 요상한 대담함(?)이 있다. 대체 종잡을수가 없네. 공은 전형적인 집사 캐릭터인데 어릴적부터 돌봐온 도련님에 연심을 품고 있다가 기어이 손을 댄다. 서로 좋아하니 망정이지 아니었음 범죄다 이놈아. 보니까 얘는 수가 자길 좋아하는걸 꿰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수가 워낙 청순해서 참았던것뿐 성애에 눈뜨게되면 냉큼 잡아먹으려고 대기타는 기분이다. 아직 키스까지밖에 안갔지만 끝까지 가는것도 머지않은듯.
수인물의 시초라 할법한 작품이라 완결되니 감회가 남다르다. 알파=수인, 오메가=남성체 인간 이란 구도가 꽤 신선했었는데. 서로 솔직하지 못해 참 많이도 어긋났던 공수가 이젠 제법 마음이 통하고 짝으로서 결속을 깊게 다진다. 윌 관련해 약간의 위기가 있었지만 비교적 싱겁게 마무리된듯. 원인은 알파에 대한 베타의 열등감과 자괴감이었는데, 솔직히 수가 말하는 건 이해가는데 공이 다 이해한단듯이 구는건 어이없었다. 신분제와 형질로 차별받는 피해자가 아닌 수혜자가 그저 네 자격지심이라고 훈계하다니 얼척이 없...(근데 윌이 그 말에 큰 깨달음을 얻은 양 후회하고 개심하는건 더 어이없)아무튼 그렇게 일단락된 뒤 둘은 공네 부모님도 만나고 임신도 하고 행복한 부부가 되어 끝난다. 이미 프티미뇽에서 둘이 애낳고 잘 사는걸 보여줘서 별로 아쉽지 않은 마무리였음. 아, 윌과 훌리오 얘기는 좀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