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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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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도서제공

사다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와 배수아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모두 반복적인 서사를 통해 우연에 빠져들게 한다. 유사성을 바탕으로 한, 심지어 완전히 동일하기까지 한 서술들은 내용의 이해보다는 몽환적인 분위기 그 자체에 빠져들게 한다. 꿈은 설계하는 순간 깨어난다, 꿈을 꾸는 사람은 의지가 없지만 꿈을 꾼 사람은 의지가 있기 때문에 해몽에 매달린다. 독자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유사성들을 마주하며 이해를 점점 포기하고, 그렇게 꿈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꿈은 내달리는 현실 세계를 등지고 너무 고립되어 있어서 그런지 너무 쉽게 깨어난다. 시종일관 현실을 방기하고 꿈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방황하는 것은 삶의 무의미보다 무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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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마지막 여름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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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젋지 않았고, 너무 늦었으며, 모든 것이 잘 안됐다. (240)

젊음은 결핍으로 대표되는 시기이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남아 있는 시기이다. 그러나 자신감은 쉽게 객기로 비춰지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궁핍함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기엔 너무 경험이 없는, 마지막이 아니지만 늘 마지막처럼 느껴지는 허무한 날들 속 시시하고 찌질한 청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그린 소설, 어쩌면 수치스러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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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베들의 시대 - ‘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김학준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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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정체성과 생태는 패배자 의식과 능력주의에서 파생된 그들만의 규칙, 갤러리(게시판) 문법, 사상을 만들어 나가며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공격적인 동시에 폐쇄적인, 유아론적 태도를 강건하게 유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래에서는 글의 분량을 고려하여 책에 등장한 여러 예시 중 '여성 혐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했다. 


먼저 추천, 좋아요, '민주화'(일베에서 '비추천'과 동일한 의미)를 통해 사용자 사이의 위계질서를 드러내는 사이버 능력주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력한 표방을 바탕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과정을 통해 인기 게시물(개념글)로 등극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친목'을 금지한다. 이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특정 갤러리의 언어들과 사용자들의 특성을 학습한 유능한 이용자만이 네임드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며, 비슷한 이유로 남초 커뮤니티인 일베에서 여성 이용자 역시 달갑지 않게 여겨진다.


자신을 여성이라고 밝힌 갤러리 이용자가 나타나는 순간 그에게 특별히 친절하게 구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들 간의 '친목'은 기존의 이용자들을 소외시키는 한편 새로운 이용자들이 진입할 수 없는 의사소통의 장막을 드리운다고 여겨진다. 그 힘든 개념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쉽게 오를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시장 질서는 물론이고 커뮤니티의 도덕률까지 훼손하는 것이다. (63)


일베는 이용자들이 스스로를 '찌질이, 루저, 병신(코스프레)'으로 자조해야 하는 세계라는 점에서 여성에게 환심을 사려는 행위 전반은 그들의 규약에 대한 위반이다. 그러나 그들이 평상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철저히 타자화한다는 점에서 현실에서보다 여성(대상)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용이한 온라인을 통해 성적 욕망을 실현해보고자 하는 잠재적 범법자(!)들을 일베 역시 인지하고 있을 것이고, 따라서 여성 이용자 및 그를 추종하는 '보빨러'는 엄격하게 금기시된다. 


또한, 여성 작성자의 글이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념글에 쉽게 등극하는 것은 '여성 젠더 권력'의 실현이자, 남초 커뮤니티에서 남성들의 패배를 의미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경쟁 구도를 훼손하여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역차별'적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글의 내용에 관계없이 일단 가산점을 얻는 것은 일베 유저들에게 '여미새'라는 오명을 씌울 빌미를 제공하며, 일베의 적수인 메갈과 워마드 유저들에게 미러링(남혐)과 함께 '불온한' 페미니즘 사상을 주입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의 터전인 홈페이지의 존립과 사상적 토대인 일베적 남성성을 흔드는 위협이다.


이렇게 그들은 여성 이용자의 유입을 강력히 거부하는 동시에, 오프라인에서 여성과의 친밀성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여성과의 연애에서 좌절을 겪은 자신들의 사연을 담은 '썰'을 업로드하고, 이러한 '썰'들 속 여성들에 대한 모멸적 묘사와 글에 드러난 부정적 특성들은 작성자들의 이상을 실현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여성상과 그렇지 않은 여성상, 그리고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성별 패러다임('여성은 대체로 이렇더라')과 맞물리면서 헌신적인 사랑과 섹스를 제공하여 단란한 가정(133)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선량한 여성'과 그 반대에 놓인 '극단적 페미니스트'라는 이분법적 체계를 형성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화들의 기저에 깔린 남성들의 자기-피해자화는 반대로 여성들의 가해자화와 연결되는데, 이는 여성을 기존의 가부장적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존재로, 나아가 남성을 무고의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능동적으로 희생양을 찾아 다가오는 권력자(289)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공포감을 혐오감으로 바꾼 일종의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통계 결과에 따르면 일베의 악랄한 여성 혐오적 어그로는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으며, 여성 집단과의 대결 상대는 일베에 부정적이었던, 그래서 일베로부터 '씹선비' 소리를 들었던 나머지 남성들(135)로 대체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갈등의 규모 역시 확대되고 있다. 


이것이 문제적인 이유는 난무하는 '한녀특'과 '한남특'이 일베나 루리웹, 디시인사이드의 일부 갤러리 등과 같은 다소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개방적인 SNS에 유머글의 형태로 소비되면서 그 심각성이 가려지고 '드립'처럼 웃음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온라인 문화는 이미지보다 텍스트 중심의 밈의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정연하게 정리되고 발화되며 일련의 조직된 정치적 목소리로(80) B급 게시물들의 표현과 생각들을 취사 선택하여 악용하기가 매우 쉽다.


한편, 앞서 언급했듯이 일베는 '표현의 자유'를 매우 중시하며, 모두가 평등하게 '병신'이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전문성에 기댄 발언을 선동으로 여기며 거부하는 경향이 있어 일반적인 SNS와 달리 자신의 전문성을 드러낸다고 해서 특별히 그 의견을 '일베로' 보내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민주적 분위기를 훼손한 발언이기 때문에 몰매를 맞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일베를 비롯한 많은 정치적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자신의 학력이나 재력을 뽐내는 '인증 대란'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능력주의에 대한 거부감과 경외감의 공존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저자가 직접적으로 자세한 논의를 진행하지는 않으나, 이는 현재 지겹도록 언급되고 있는 '반지성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1) 일베의 유저들은 감정적이고 무비판적이며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좌파좀비(좌좀)의 행태를 반복하지 않겠다(187)는 합리주의적 사고를 따르며, 이 때문에 객관적 '팩트'를 중시하는 과학주의적인 태도를 중시한다. 그러나 미시적인 사실의 단순한 나열에 국한하여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객관적이면서도 거시적인 맥락을 제거하며 자기경영에 실패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편견과 증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2) 인기(핫) 게시물의 존재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생각과 같은 생각이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이것이 반대 정당에 대한 감정적 분노와 결합하는 경우, 이러한 분노의 정념은 그들에 맞서 적폐청산을 수행하는 대통령에 대한 사랑의 정념('팬덤')으로 전도되어, 현 정권에 대한 어떠한 반론도 받아들이지 않는 맹목적인 태도(한상원, 2018)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좌, 우파 모두에게 집단지성이 아닌 집단정념을 정치에 도입할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1)의 팩트의 선택적 활용과 (2)의 정념을 바탕으로 한 여론의 형성은 모두 주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배척함으로써 지성적 논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반지성주의적 태도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지식은 자본주의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면서 이윤의 증대 및 노동력 제공과 무관하거나 이를 반하는 지식은 틀린 것(지식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화폐 가치를 기준으로 지식을 선별하는 행위는 비판 의식을 적대한다는 점에서 이성적 사유능력을 제한하고 무조건적인 체제 순응을 강요하도록 한다. 불안감과 불만, 분노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표출하는 것은 곧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편승하지 못한 소외자라는 낙인을 찍으며 멸시화된다. 결국 개인의 현실적 어려움은 철저히 개인의 것인 바, 책임 역시 본인의 '자기경영(자기계발)'에 달려있으며, 자신의 고통을 내면화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주어진 현실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구조적 문제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성실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에 대한 공격이자, 갈등을 조장하여 사회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는 반동 분자의 외침이다.


그러나 인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인민의 이성 활용 역량이 주체성을 잃고 수동적인 것으로 전락할 때, 무비판적인 순응과 갈등 회피는 곧 전체주의로 귀결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반지성주의적인 주체는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성숙한 시민주체가 될 수 없다. (한상원)


물론, 정보화로 인해 수많은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고, 지식의 기준이 사라지면서 무엇이 과연 '진짜' 지식인가에 대한 대답이 모호(234)해지면서 대중은 권위적인 태도의 지식인에게 회의감을 느낌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지식을 추구하지 못하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유능한 성육신을 원하지만, 인텔리 계층에 속한 인물들의 끊임없는 비리와 논란들은 그들의 위선적 면모와 '유위한 지도자'에 대한 기대감의 허황됨을 증명할 뿐이다. 결국 다수의 대중은 개인적 야망을 좇아 스스로 삶을 안정시키는 '자기계발'과, 경쟁 관계에서 승자를 물신화하는 동시에 패자를 멸시하여 확실하게 고위 계층에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게 된다.


일베는 극우주의 루저 남성들이 모여 그들의 처지를 자위하기 위해 증오에 가득차 음모론과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생산해 낸 단순한 일탈의 공간이 아니라, 그러한 극단적인 혐오 정서를 외부에 서서히 드러내며 그들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능력이 있는, '보통'이 아닌 '보통'의 집단이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으로 혐오 대상 중 가장 빈도가 높았던 '여성'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지역 및 좌파 사상에 대한 혐오 역시 자신들이 현실에서 느낀 위기의식과 피로감을 공격하기 쉬운 상대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형태로 해소했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한 프로세스를 거친다.


일베는 반지성주의적이고, 극단적이고, 선택적 합리화를 일삼고, 혐오감과 자괴감에 빠져 있는 패배자들로 간주되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너 일베야? 난 일베야?




<참고문헌>

한상원. (2018). 아도르노와 반지성주의에 관한 성찰 ‒민주주의와 지성의 상관성 물음‒. 철학, 13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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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인간의 탄생 - 체온의 진화사
한스 이저맨 지음, 이경식 옮김, 박한선 해제 / 머스트리드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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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체온과 인간 심리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제시하며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정면 반박한다. 그는 크게 심리학적 실험 모델과 과학적 실험 모델의 결과를 연관지어 결국 인간의 마음은 몸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인간의 심리 상태에 따라 인간이 추정하는 외부 온도, 인간의 실제 심부 온도에 차이가 있음을 설명하며 과학적인 근거들을 내세우는 한편,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넘어 문화와 인간의 생활과 관련된 요소들(, 광고 등)까지 체온과 연결하여 따뜻함이라는 은유를 과학적 범주에 집어넣는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기본적으로 과학적인 개념에 대한 설명이 조금은 부족하다고 느꼈다. 저자는 시상하부라는 비교적 쉬운 개념부터 온도 수용기, 갈색지방세포(brown fat) 등 다양한 생리학적, 해부학적 개념과 부위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간단한 설명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설명 자체가 너무 단순화되어 있기도 하고 산발적으로 나타나 있다는 느낌도 없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한편, 문장의 흐름이 조금 어색한 부분들도 있었다. ‘정상 수준의 심부 체온은 사람마다 다르긴 해도 통상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의 구강 체온은 37도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심부 체온은 24시간 주기로 0.5도에서 1.0도까지 편차를 보인다.’ 정상 수준의 심부 체온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설명 뒤에 당연히 정상 수준의 심부 체온이 구강 체온과 다르게 어떻게 달라지는지 쓰여있을 줄 알았는데, 심부 체온이 24시간 주기로 바뀐다는 내용이 등장해 문장을 왜 이런 식으로 구성을 했는지 의아하다.


또한, 각주에 설명이 따로 없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내용도 있었다. 예컨대, 1장에서는 다른 온도 조건에서 같은 영상을 본 참가자들의 반응을 분석하는 실험이 등장한다. 기온이 높은 방에서 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은 영상을 묘사할 때 동사를 중심으로 묘사했지만,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방에서 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의 경우 형용사를 선호했다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언어에 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차이를 눈치챌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어와 영어에서 동사와 형용사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정확히는 한국어 문법에서 형용사는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추론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마음을 과학적으로 접근한 이 책은 생리학과 사회학을 연결하는 보다 생소한 학문(체온심리학)을 대중을 상대로 소개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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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 - 어슬렁어슬렁 누비고 다닌 미술 여행기
류동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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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특유의 문체 때문인지, 친절한 설명 때문인지 미술에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글이 매우 잘 읽혔다. 그가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이미지 중심보다는 에세이 형식을 택해 최대한 비전문가들에게 이탈리아 미술사를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중간중간 이동 중에 촬영한 이탈리아의 일상적인 모습이나 길거리가 담긴 사진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입체감과 현장감을 부여했다. 이는 코로나 시대, 해외 여행이 어려운 지금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대리 만족을 시켜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 작품에 대한 설명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여행' 그 자체에 대한 사유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져 아쉬웠다. 미술 여행기라는 점에서, 여행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조금 더 수록되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 예술에 대한 지적 허영을 채울 수 있는 대표적인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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