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일베들의 시대 - ‘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김학준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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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정체성과 생태는 패배자 의식과 능력주의에서 파생된 그들만의 규칙, 갤러리(게시판) 문법, 사상을 만들어 나가며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공격적인 동시에 폐쇄적인, 유아론적 태도를 강건하게 유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래에서는 글의 분량을 고려하여 책에 등장한 여러 예시 중 '여성 혐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했다. 


먼저 추천, 좋아요, '민주화'(일베에서 '비추천'과 동일한 의미)를 통해 사용자 사이의 위계질서를 드러내는 사이버 능력주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력한 표방을 바탕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과정을 통해 인기 게시물(개념글)로 등극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친목'을 금지한다. 이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특정 갤러리의 언어들과 사용자들의 특성을 학습한 유능한 이용자만이 네임드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며, 비슷한 이유로 남초 커뮤니티인 일베에서 여성 이용자 역시 달갑지 않게 여겨진다.


자신을 여성이라고 밝힌 갤러리 이용자가 나타나는 순간 그에게 특별히 친절하게 구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들 간의 '친목'은 기존의 이용자들을 소외시키는 한편 새로운 이용자들이 진입할 수 없는 의사소통의 장막을 드리운다고 여겨진다. 그 힘든 개념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쉽게 오를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시장 질서는 물론이고 커뮤니티의 도덕률까지 훼손하는 것이다. (63)


일베는 이용자들이 스스로를 '찌질이, 루저, 병신(코스프레)'으로 자조해야 하는 세계라는 점에서 여성에게 환심을 사려는 행위 전반은 그들의 규약에 대한 위반이다. 그러나 그들이 평상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철저히 타자화한다는 점에서 현실에서보다 여성(대상)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용이한 온라인을 통해 성적 욕망을 실현해보고자 하는 잠재적 범법자(!)들을 일베 역시 인지하고 있을 것이고, 따라서 여성 이용자 및 그를 추종하는 '보빨러'는 엄격하게 금기시된다. 


또한, 여성 작성자의 글이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념글에 쉽게 등극하는 것은 '여성 젠더 권력'의 실현이자, 남초 커뮤니티에서 남성들의 패배를 의미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경쟁 구도를 훼손하여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역차별'적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글의 내용에 관계없이 일단 가산점을 얻는 것은 일베 유저들에게 '여미새'라는 오명을 씌울 빌미를 제공하며, 일베의 적수인 메갈과 워마드 유저들에게 미러링(남혐)과 함께 '불온한' 페미니즘 사상을 주입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의 터전인 홈페이지의 존립과 사상적 토대인 일베적 남성성을 흔드는 위협이다.


이렇게 그들은 여성 이용자의 유입을 강력히 거부하는 동시에, 오프라인에서 여성과의 친밀성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여성과의 연애에서 좌절을 겪은 자신들의 사연을 담은 '썰'을 업로드하고, 이러한 '썰'들 속 여성들에 대한 모멸적 묘사와 글에 드러난 부정적 특성들은 작성자들의 이상을 실현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여성상과 그렇지 않은 여성상, 그리고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성별 패러다임('여성은 대체로 이렇더라')과 맞물리면서 헌신적인 사랑과 섹스를 제공하여 단란한 가정(133)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선량한 여성'과 그 반대에 놓인 '극단적 페미니스트'라는 이분법적 체계를 형성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화들의 기저에 깔린 남성들의 자기-피해자화는 반대로 여성들의 가해자화와 연결되는데, 이는 여성을 기존의 가부장적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존재로, 나아가 남성을 무고의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능동적으로 희생양을 찾아 다가오는 권력자(289)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공포감을 혐오감으로 바꾼 일종의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통계 결과에 따르면 일베의 악랄한 여성 혐오적 어그로는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으며, 여성 집단과의 대결 상대는 일베에 부정적이었던, 그래서 일베로부터 '씹선비' 소리를 들었던 나머지 남성들(135)로 대체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갈등의 규모 역시 확대되고 있다. 


이것이 문제적인 이유는 난무하는 '한녀특'과 '한남특'이 일베나 루리웹, 디시인사이드의 일부 갤러리 등과 같은 다소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개방적인 SNS에 유머글의 형태로 소비되면서 그 심각성이 가려지고 '드립'처럼 웃음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온라인 문화는 이미지보다 텍스트 중심의 밈의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정연하게 정리되고 발화되며 일련의 조직된 정치적 목소리로(80) B급 게시물들의 표현과 생각들을 취사 선택하여 악용하기가 매우 쉽다.


한편, 앞서 언급했듯이 일베는 '표현의 자유'를 매우 중시하며, 모두가 평등하게 '병신'이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전문성에 기댄 발언을 선동으로 여기며 거부하는 경향이 있어 일반적인 SNS와 달리 자신의 전문성을 드러낸다고 해서 특별히 그 의견을 '일베로' 보내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민주적 분위기를 훼손한 발언이기 때문에 몰매를 맞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일베를 비롯한 많은 정치적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자신의 학력이나 재력을 뽐내는 '인증 대란'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능력주의에 대한 거부감과 경외감의 공존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저자가 직접적으로 자세한 논의를 진행하지는 않으나, 이는 현재 지겹도록 언급되고 있는 '반지성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1) 일베의 유저들은 감정적이고 무비판적이며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좌파좀비(좌좀)의 행태를 반복하지 않겠다(187)는 합리주의적 사고를 따르며, 이 때문에 객관적 '팩트'를 중시하는 과학주의적인 태도를 중시한다. 그러나 미시적인 사실의 단순한 나열에 국한하여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객관적이면서도 거시적인 맥락을 제거하며 자기경영에 실패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편견과 증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2) 인기(핫) 게시물의 존재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생각과 같은 생각이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이것이 반대 정당에 대한 감정적 분노와 결합하는 경우, 이러한 분노의 정념은 그들에 맞서 적폐청산을 수행하는 대통령에 대한 사랑의 정념('팬덤')으로 전도되어, 현 정권에 대한 어떠한 반론도 받아들이지 않는 맹목적인 태도(한상원, 2018)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좌, 우파 모두에게 집단지성이 아닌 집단정념을 정치에 도입할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1)의 팩트의 선택적 활용과 (2)의 정념을 바탕으로 한 여론의 형성은 모두 주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배척함으로써 지성적 논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반지성주의적 태도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지식은 자본주의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면서 이윤의 증대 및 노동력 제공과 무관하거나 이를 반하는 지식은 틀린 것(지식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화폐 가치를 기준으로 지식을 선별하는 행위는 비판 의식을 적대한다는 점에서 이성적 사유능력을 제한하고 무조건적인 체제 순응을 강요하도록 한다. 불안감과 불만, 분노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표출하는 것은 곧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편승하지 못한 소외자라는 낙인을 찍으며 멸시화된다. 결국 개인의 현실적 어려움은 철저히 개인의 것인 바, 책임 역시 본인의 '자기경영(자기계발)'에 달려있으며, 자신의 고통을 내면화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주어진 현실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구조적 문제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성실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에 대한 공격이자, 갈등을 조장하여 사회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는 반동 분자의 외침이다.


그러나 인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인민의 이성 활용 역량이 주체성을 잃고 수동적인 것으로 전락할 때, 무비판적인 순응과 갈등 회피는 곧 전체주의로 귀결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반지성주의적인 주체는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성숙한 시민주체가 될 수 없다. (한상원)


물론, 정보화로 인해 수많은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고, 지식의 기준이 사라지면서 무엇이 과연 '진짜' 지식인가에 대한 대답이 모호(234)해지면서 대중은 권위적인 태도의 지식인에게 회의감을 느낌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지식을 추구하지 못하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유능한 성육신을 원하지만, 인텔리 계층에 속한 인물들의 끊임없는 비리와 논란들은 그들의 위선적 면모와 '유위한 지도자'에 대한 기대감의 허황됨을 증명할 뿐이다. 결국 다수의 대중은 개인적 야망을 좇아 스스로 삶을 안정시키는 '자기계발'과, 경쟁 관계에서 승자를 물신화하는 동시에 패자를 멸시하여 확실하게 고위 계층에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게 된다.


일베는 극우주의 루저 남성들이 모여 그들의 처지를 자위하기 위해 증오에 가득차 음모론과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생산해 낸 단순한 일탈의 공간이 아니라, 그러한 극단적인 혐오 정서를 외부에 서서히 드러내며 그들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능력이 있는, '보통'이 아닌 '보통'의 집단이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으로 혐오 대상 중 가장 빈도가 높았던 '여성'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지역 및 좌파 사상에 대한 혐오 역시 자신들이 현실에서 느낀 위기의식과 피로감을 공격하기 쉬운 상대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형태로 해소했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한 프로세스를 거친다.


일베는 반지성주의적이고, 극단적이고, 선택적 합리화를 일삼고, 혐오감과 자괴감에 빠져 있는 패배자들로 간주되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너 일베야? 난 일베야?




<참고문헌>

한상원. (2018). 아도르노와 반지성주의에 관한 성찰 ‒민주주의와 지성의 상관성 물음‒. 철학, 13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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