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말을 죽였을까 - 이시백 연작소설집
이시백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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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내 친구는 이런 말을 한다. 안 되면 다 때려치고 시골로 내려갈거라고. 그러면 내가 이렇게 대꾸한다. 내려가서 뭐할건데? 그러면 친구는 이렇게 받아친다. 농사나 짓고 살지 머. 농사는 아무나 짓냐? 라고 타박을 주면 시골에는 인심 좋은 분들이 많기 때문에 다 도와줄 거라고 큰소리 떵떵친다. 그런 내 친구에게 이시백님의 '누가 말을 죽였을까'를 선물했다. 이 책 다 읽고 나서 다시 얘기해보자는 말과 함께.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시골'에 대한 몇 가지 편견을 책을 읽으면서 타파할 수 있다. 시골 사람들은 무조건 착할거야, 다 퍼주는 넉넉한 인심을 갖고 있을거야, 좋은 공기 맡으며 사니 너그러울거야...라는 생각들. 하지만 시골사람 역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우리와 다를바가 없다. 시골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날려버렸다. 

땅에 모든것을 올인하는 아버지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땅을 팔아버리고 서울로 가려는 자식들의 싸움.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와서 적응하려는 피나는 노력. 골프장 등을 짓기위해 투기하는 도시 사람들과 그에 휘둘리는 시골 사람들의 모습. 외국인 노동자들과 외국인 신부들에 대한 슬픈 자화상까지 현재 농촌의 모습과 더불어 우리네 모습까지 모두 맛깔나게 담겨있다.

FTA로 인해 머리 띠두르며 데모하는 그들을 보면서도 무덤덤했던 나다. 우리것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골에서 온 몸으로 투쟁하는 그들을 보듬어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것을 사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책을 덮고 나서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들은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처럼 짭조름하기도 하고, 달달하기도 하고, 눈물나게 맵기도 하다. 그런 양념들은 하나의 이야기안에 잘 어우러져 많은 걸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한다. 

조금 더 그들에게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땅으로 돌아갈 우리다. 땅과 함께 숨쉬고 땅을 모든 것으로 알고 사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삶을 사는것 아닐까싶다. 무식한 시골 사람들이라고 무시하기 보다, 그들이 처한 현실을 같이 돌아보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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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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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럴드를 만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브래드 피트가 나오는 영화의 원작이 피츠제럴드의 작품이란 걸 알았을때도, 그 작가가 누구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 학생때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라는 걸 알았을때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피츠제럴드가 그려내는 그만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하고.

책의 제목이기도 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과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는 피츠제럴드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늙고 추한 노인으로 태어나 갓난 아이로 죽어가는 설정을 어느 누가 할 수 있을까?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고 갈 수록 젊어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누구나 생각봤음직한 '불사'를 꿈꾸게 한다. 리츠칼튼 호텔만한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자랑하는 친구를 의심하는 주인공에게 친구는 정말 그만한 다이아몬드를 보여준다. 그리고 꿈에서만 생각해볼, 상상을 초월한 부를 경험한다. 도를 넘는 부는 결국 스러지게 되지만,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이 가득한 곳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1920년대 부유하고 화려한 시대를 상징하는 작가가 바로 피츠제럴드다. '재즈시대'라고 불리는 화려한 미국, 낙관주의로 가득찬 그 곳에 피츠제럴드가 있었다. 재즈시대를 대표한 작가라고는 하지만, 그만의 날카로운 시선이 책 곳곳에 표현되어 있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속물인 여성을 꼬집고(낙타엉덩이) 할 일 없이 한량인 젊은이의 모습을 비웃기도 한다.(젤리빈)

그저 허풍만 가득하다면, 가벼운 책이라고 내던질 수도 있겠지만, 피츠제럴드만의 날카로운 시선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인간이란 존재는 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던가. 화려함 속에 숨어있는 비참함, 속물근정, 눈물을 잡아내어 표현한 그의 작품들은 뚝뚝 끊기는 단편의 단점을 보완하고 남음이였다.

고전의 재미는 그 시대의 분위기와 상황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피츠제럴드가 고전의 기분좋은 향기를 온 몸으로 내뿜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고 생각한다. 기분좋은 그의 단편을 뒤로 하고 장편을 읽어 볼 차례다. 피츠제럴드의 진면목이 아직 남아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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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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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개인에게 행하는 폭력과, 살인은 어떤 식으로든 처벌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단위가 커지고, 힘있는 소수가 힘없는 다수에게 행해지는 무자비한 폭력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그런말이 있겠는가.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백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말도 안되는 그런 말.

책의 주인공 역시 기억을 잃고 헤매고 있다. 전쟁에 참여했으나 그때 상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암흑. 그 암흑 속에서 빛을 찾고자 동료들을 찾아 그들을 인터뷰한다. 그러면서 그 당시의 참혹하고 끔찍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비추고 있다. 피해자를 집중 조명한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사람을 죽였던 군인의 기억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인터뷰가 모두 변명같이 들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와닿는것이 있는 것은, 결국 그들 모두 전쟁의 피해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리없는 지지속에 팔레스타인 수천명의 난민들은 죽어갔다. 힘없고 저항조차 하지 못한 그들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갔다, 아무런 명분없이. 비단, 명분없는 학살이 1982년 사브라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것같은 수많은 끔찍한 살인이 지금 현재에도 너무나 사소한 이유로 자행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참가했던 이의 자기고백을 들으면서 이 세상 모든 끔찍한 상황을 그저 모른채 수수방관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런 이유없이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천명의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될 것이다. 자기반성을 하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가지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의 눈물과 한숨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는 그 순간, 이 세상에 전쟁이라는 끔찍한 일은 사라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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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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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끔한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둘로 나뉘어있고 휴전상태이기 때문이다. '휴전'이란 말은 전쟁을 쉰다는 뜻이므로,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오늘, 내일?...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삶이 송두리채 뒤바뀔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삶'은 그냥 이어질뿐이다. 삶이란 녀석은 그냥 그렇게 자신의 모습 그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전쟁이 일어난 삶속에서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다만, 겉과 속이 바뀐것처럼 삶 역시 안과 밖이 뒤바뀌어버릴 뿐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것처럼.

'사라예보'안에는 그렇게 삶의 안과 밖이 뒤바뀐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다른 곳으로 탈출하지 못했다. 곧 전쟁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전쟁이란 녀석은 그렇게 쉽게 사라예보를 놓아주지 않았고 삶은 철저히 안과 밖이 바뀌어버렸다. 예고도 없이.

뒤바뀐 삶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사람들이 있다. 이 상황이 바뀔 거라는 희망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 그저 전쟁이 끝난 뒤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만이 가득하다. 저격수 '애로'는 모든 희망을 버려둔 채, 자신의 분노를 상대편 병사를 죽이는데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진짜 이름은 버린지 이미 오래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사용하면 따뜻했던 그 날로 돌아가지 못할까봐 두렵다. '드라간'은 아내와 아들을 나라 밖으로 탈출시킨채 자신은 터전을 지키고 있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티지만, 그가 알던 사람들과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전쟁속을 통과하고 있다. '케난'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며칠에 한 번씩 물을 길러 먼 길을 떠난다. 씩씩하게 집을 떠나지만, 그는 늘 두렵다. 지금 나서는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까봐.

이 책 안에는 어떤 영웅도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을 끝마치게될 극적인 사건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삶'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애로는 첼리스트를 구하기 위해 상대편 저격수를 막아내야 한다. 하지만 상대편 저격수가 첼리스트의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고민한다. 저 사람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에 말이다. 드라간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눈앞에서 저격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친구를 구하러 뛰어나가지 못한다. 두려움이 그의 발목을 잡아챘기 때문이다. 케난은 물을 길러 양조장에 갔다가 폭격을 당하게 된다. 케난은 운좋게 살아남았지만 처참히 죽은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속에서 케난은 묵묵히 물을 챙겨 나오게 된다.

애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당신은 그 상대편 저격수를 죽이면 안된다고. 드라간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당신은 친구를 구하러 당연히 뛰어 나갔어야 한다고. 케난에게는 물보다는 사람들을 먼저 챙기라도 말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나 당신은 그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나부터라도, 그 지옥같은 상황에서 나부터 살고자 했을텐데....전쟁은, 그런 것이다.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 없는것이 바로 전쟁인 것이다.

하지만 결국 세 사람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선택은 '인간다운' 선택이였다. 애로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게 되고, 드라간은 친구의 외투를 찾아오며 케난은 이웃집 여자를 위해 다시 물을 길러 떠난다. 삶을 바꾸어 버리고, 모든 희망을 뿌리채 뽑아버린채 하루하루 그저 숨만 쉬는것 같은 그들에게 전쟁이 바꾸지 못한게 있다면 '인간다움'이 아닐까? 

전쟁과, 희망과, 삶과, 인간다움과...그리고 나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다. 세계 곳곳의 사라예보에서는 지금도 삶에 대한 모든것을 박탈당한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들의 인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달라고...그렇게 해달라고 책을 덮고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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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호두과자
크리스티나 진 지음, 명수정 옮김 / 예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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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마로에게는 많은 것이 변하게 된다. 웃음과 활력이 없어진 어머니가 첫번째 변화고, 직접 호두과자를 만들고 집안일을 거들게 되는 것이 두번째 변화다. 어린 마로가 감당하기에 꽤 큰 짐이였을텐데도 마로는 씩씩하게 이겨낸다. 열심히 호두과자 반죽을 만들면서.

어린 마로는 호두과자와 함께 성장해 나간다. '성장'-그것이 진정 맞는 표현일 것이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했다가 삼촌을 못알아볼뻔한 마로는 따뜻하고 멋진 삼촌을 위해 '카망베르 호두과자'를 만들게 된다. 아버지가 계실때는 크리스마스마다 늘 선물이 달려있던 호두나무.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호두나무는 텅 비어있기 마련이였다. 하지만 꿈에서도 소원하던 산악 자전거를 어머니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게되고, 잠시나마 나쁜 마음을 품었던 자신을 뉘우치며 '아이스크림 호두과자'를 만들게 된다.

어머니 생일 선물로 핸드크림을 만들고자 찾았던 장미정원에서 만난 소녀. 그 소녀를 보고 예쁜 사랑에 빠진 소년은 소녀를 위해 핸드크림을 선물하지만, 결국 그 사랑은 오해로 끝나게 된다. 그 후로 소녀를 생각하며 '장미 시럽 호두과자'를 만들게 된다. 까다로운 손님의 주문을 받고는 영감을 얻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캠핑하던 장소로 찾아간 마로는 오리온 자리에서 힌트를 얻고 호두과자 '오리온'을 만들어 손님을 만족시킨다. 그리고 어머니와의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기리며 '흑설탕 호두과자 디어맘'을 만들어 영원히 어머니를 기억하게 된다.

각 챕터 마지막에는 마로가 만든 멋진 호두과자가 등장한다. 진짜 그런 호두과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예쁘고 향긋하고 사랑스런 호두과자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런 멋진 호두과자가 만들어지기 까지는 고된 과정이 존재한다. 마로는 그것을 몸소 체험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그 사랑안에 점차 커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각자 가슴속에 자신만의 '호두과자'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짐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어느 한 고비를 넘으면 멋진 작품으로 탄생하는 그런 호두과자 말이다. 결국 마로는 자신만의 호두과자를 가졌고 그것으로 인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읽는 내내 달콤한 호두과자가 입 속에서 계속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나만의 '호두과자'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 호두과자로 어떤 맛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인생의 한 고비를 넘을때마다 내 안의 호두과자가 마로의 호두과자처럼 빛을 내기를...그렇게 소원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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