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전쟁'이 일어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끔한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둘로 나뉘어있고 휴전상태이기 때문이다. '휴전'이란 말은 전쟁을 쉰다는 뜻이므로,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오늘, 내일?...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삶이 송두리채 뒤바뀔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삶'은 그냥 이어질뿐이다. 삶이란 녀석은 그냥 그렇게 자신의 모습 그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전쟁이 일어난 삶속에서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다만, 겉과 속이 바뀐것처럼 삶 역시 안과 밖이 뒤바뀌어버릴 뿐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것처럼.

'사라예보'안에는 그렇게 삶의 안과 밖이 뒤바뀐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다른 곳으로 탈출하지 못했다. 곧 전쟁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전쟁이란 녀석은 그렇게 쉽게 사라예보를 놓아주지 않았고 삶은 철저히 안과 밖이 바뀌어버렸다. 예고도 없이.

뒤바뀐 삶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사람들이 있다. 이 상황이 바뀔 거라는 희망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 그저 전쟁이 끝난 뒤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만이 가득하다. 저격수 '애로'는 모든 희망을 버려둔 채, 자신의 분노를 상대편 병사를 죽이는데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진짜 이름은 버린지 이미 오래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사용하면 따뜻했던 그 날로 돌아가지 못할까봐 두렵다. '드라간'은 아내와 아들을 나라 밖으로 탈출시킨채 자신은 터전을 지키고 있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티지만, 그가 알던 사람들과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전쟁속을 통과하고 있다. '케난'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며칠에 한 번씩 물을 길러 먼 길을 떠난다. 씩씩하게 집을 떠나지만, 그는 늘 두렵다. 지금 나서는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까봐.

이 책 안에는 어떤 영웅도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을 끝마치게될 극적인 사건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삶'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애로는 첼리스트를 구하기 위해 상대편 저격수를 막아내야 한다. 하지만 상대편 저격수가 첼리스트의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고민한다. 저 사람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에 말이다. 드라간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눈앞에서 저격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친구를 구하러 뛰어나가지 못한다. 두려움이 그의 발목을 잡아챘기 때문이다. 케난은 물을 길러 양조장에 갔다가 폭격을 당하게 된다. 케난은 운좋게 살아남았지만 처참히 죽은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속에서 케난은 묵묵히 물을 챙겨 나오게 된다.

애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당신은 그 상대편 저격수를 죽이면 안된다고. 드라간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당신은 친구를 구하러 당연히 뛰어 나갔어야 한다고. 케난에게는 물보다는 사람들을 먼저 챙기라도 말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나 당신은 그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나부터라도, 그 지옥같은 상황에서 나부터 살고자 했을텐데....전쟁은, 그런 것이다.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 없는것이 바로 전쟁인 것이다.

하지만 결국 세 사람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선택은 '인간다운' 선택이였다. 애로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게 되고, 드라간은 친구의 외투를 찾아오며 케난은 이웃집 여자를 위해 다시 물을 길러 떠난다. 삶을 바꾸어 버리고, 모든 희망을 뿌리채 뽑아버린채 하루하루 그저 숨만 쉬는것 같은 그들에게 전쟁이 바꾸지 못한게 있다면 '인간다움'이 아닐까? 

전쟁과, 희망과, 삶과, 인간다움과...그리고 나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다. 세계 곳곳의 사라예보에서는 지금도 삶에 대한 모든것을 박탈당한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들의 인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달라고...그렇게 해달라고 책을 덮고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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