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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 좀 잘 들어보세요!
키가 작고 보잘 것 없는 견습 웨이터 디테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 왜냐하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디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키가 작고 볼품없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시했던 디테. 그는 견습 웨이터부터 여러 사람들을 겪어가며 세상에 대해 하나 둘 배워나가게 된다.
처음 디테가 웨이터를 시작했을때 사장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하지만 또 명심해라! 넌 모든 걸 봐야 하며 모든 걸 들어야 한다!" 이런 이중적인 잣대가 디테는 이해되지 않지만, 곧 이해하게 된다. 호텔에 근사한 식사를 즐기러 오는 부자들의 이중적인 모습들, 고위 권력층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을 보며 사장의 말을 점차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점잖고 고상한 척 얌전빼는 사람일수록, 숨겨진 뒷모습 속에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 할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디테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지만, 동시에 모든 걸 보면서 모든 걸 듣게 된다. 그리고 결심한다. 저들과 같은 위치에 서기로.
"난 미소를 지었다.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며 사람들이 무엇을 믿는지, 몇 푼 안 되는 동전 몇 개를 위해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곧바로 알게 되었다."
돈이 있으면 키 작은 디테는 세상 그 누구보다 키가 커질 수 있다. 체구가 작은 디테는 그 누구보다 덩치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것을 깨달은 그 순간부터 디테는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내게 불행이 닥쳤을 때, 항상 그 곁에 행운이 함께 있었다!-
그 말은 정말 진리였다! 잘 적응하던 호텔에서 쫓겨나서도 곧 아는 사람을 만나 더 좋은 호텔에 들어가게 된다. 독일군에 협력했다는것 때문에 고향에서 못살 줄 알았는데 누군가의 스파이 혐의를 뒤집어써서 가벼운 옥살이로 끝나고 만다. 그렇게 디테는 자신의 인생 곁에서 함께하는 불행과 행운을 느끼게 된다.
독일군의 침공, 독일 출신 아가씨와의 결혼, 지체아 아들의 탄생까지 인생의 한 부분을 통과해, 드디어 디테는 꿈에 그리던 '백만장자'가 된다. 그 누구도 자신을 깔보지 못하리라 생각한 그 순간, 디테는 역시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그들의 그림자 역할만 하게 된다. 자신의 소유라 생각했던 호텔 역시 결국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을 보게 된 순간 디테는 모든것을 버리고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토록 손에 넣고자 하는것을 손에 넣고도, 결국 모든것이 허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디테가 손에 넣고자 하는것은 뭇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아니였을까? 키가 작고 보잘것 없었던 디테는 사람들과 섞여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부자가 되면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주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디테는 디테였고, 사람들은 사람들이였을뿐이였다.
결국 인생 마지막길에 나와 함께 하는 건, 내 자신뿐일 것이다. 디테는 그것을 생의 마지막 순간, 외로운 산 속에서 깨달았다. 인생속에는 기쁜일도, 슬픈일도 늘 함께한다. 기쁜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불행이 닥쳤을 때는 그 곁에 행운이 자매처럼 붙어있다. 디테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 대해, 내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가 말한 인생속에 우리네 인생사가 모두 섞여 있는건 아닐지. 그렇기 때문에 디테의 이야기에 더욱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