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짧은 이야기
책머리에 소개된 글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세가지 소원'에 담긴 이야기들은 책을 내고자 마음먹고 쓴 글들이 아니라 작가로 등단한 70년대부터 최근까지 한꼭지 한꼭지 정성들여 생각하며 쓴 글들이다. 70년대부터 씌여진 글이라고 하지만, 어떤 글이 오래전에 쓰였고 어떤 글이 최근에 쓰였는지 가려내라면 난 하지 못할것 같다. 그만큼 하나하나의 글이 현실성을 담고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투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에 소개된 할머니의 마음처럼, 세상의 비밀과 속성을 잘 알고있는 한 어른이, 아직은 덜 여문 손자에게 해주는 이야기처럼 각각의 이야기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꽤 가볍고 여백이 많아 보이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꼭지 한꼭지 꼭꼭 되새기며 읽게 되었다.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은 아기를 기다리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저 아이가 똑똑하기만을 바라며 태교에 집중하는 요즘 현실을 아는듯, 부모됨의 마음가짐과 아이에게 세상의 이치를 들려주고자 기다리는 할머니의 마음을 눈에 그리듯 담았다.
선생님이 제일 아끼는 이야기라는 <다이아몬드>에서는 사랑하는 소녀를 얻고자 다이아몬드 연마에 온 세월을 마친 젊은이가 등장한다. 결국 젊은이는 세월에 치여 추한 늙은이가 되지만 자신이 평생을 바친일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것을 발견하게 된다.
<산과 나무를 위한 사랑법>은 그저 입에만 '자연을 사랑합시다'라고 달고다니는 세태를 꼬집으며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감이 중요함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쟁이들만 사는 동네>를 읽으면서 사랑하는 부부의 애틋함을 알았고, <굴비 한 번 쳐다보고>는 맛을 보고, 맛을 느끼는 평범한 일들이 평생을 살아가는데 어떤 역할을 하게 해주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읽을때는 너무너무 재미있어 정신없이 읽다가도 책장만 덮으면 마음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공허해지는 책들이 너무나 많다. 요즘 세태에 맞춰 자극적이고, 속도감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인 까닭일거다. 하지만 박완서 선생님의 '세가지 소원'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요즘 책들에 비해 소박하고 모두들 아는 내용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내용들이 오히려 가슴을 찔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니 어찌된 까닭일까.
바로 이것이 박완서 선생님의 마음 아닐까. 갈 수록 빨라지고 가벼워지는 세상이지만, 세상살이에 중요한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고 쉽게 잊혀지지 않는 거라는 것은 할머니의 음성을 통해 잔잔히 일러주는 것-그것이 선생님의 마음일거라 생각해보았다.
늘 바쁘고 바쁘게 사는 지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면 한 박자 천천히 가보라고 이야기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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