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건사고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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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마지막에 이런 질문이 서로 오갔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나? 알잖아, 항상 별일없고 평범한거... 너는 특별한일, 재밌는일 없었어? 나?? 너도 알잖아. 별 일 없고 평범하게 오히려 별일이라는거. 아~심심해 죽겠다-라는 대화들. 

<오늘의 사건 사고>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모두, 사건사고와는 멀어보이는 평범한 젊은이들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마사미치의 집들이다. 그의 집들이를 위해 여러 친구들이 모이면서 서로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때로는 오래전의 이야기가, 때로는 현재의 이야기가.

꼭 내 친구의 하루를 듣는 것처럼, 옆을 스쳐가는 평범한 이야기들이였지만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해졌다. 내가 그 시절에, 고민하고 웃고 떠들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울고, 그 사랑에 배신당해서 울고, 무언가의 콤플렉스 때문에 남몰래 고민하고, 내가 시작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막연함 때문에 걱정하고. 나의 이야기를 관찰하고 있다가, 글로 쭉 풀어나간 것처럼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제목이 <오늘의 사건 사고>인 것은, 평범한 오늘도 결국은 특별하고 아름다운 언젠가가 될 수 있다는걸 보여주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오늘이 되돌아보면 의미있고 아름다웠던 날들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매일 잠들 때마다 생각했어. 오늘과 내일의 경계가 언제일까, 아침까지 깨어 있으면 알 수 있을까 하고. 그런데 공작 시간에 옆에 앉은 테츠가 이러잖아. ‘그것도 몰라? 밤 12시부터 내일이지.’나로선 꽤 충격이었어. 내일이란 게 시간으로 정해진다는 사실이."
"오늘과 내일이라는 확실한 경계란 게 있을까. 여기까지 끝! 자, 다음! 이란 것이. 겨울과 봄도 그렇잖아.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문득 봄이구나, 라고들 생각하잖아."

나또한 궁금했다. 시간상 구분된, 오늘 내일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경계선은 어디일까? 사실 그런 경계선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범한듯 쭉 이어지는 나날이라도 오늘과 어제, 그리고 내일은 존재하는 법이다. 그래서 힘든 일은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고, 기쁜 일은 과거속의 추억으로 묻어두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일상속의 평범함을, 평범해서 더욱더 빛나고 풍요로운 일상을 알려준 책 속의 친구들이, 그들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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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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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법'이란 이런 것이다. 너무나 다른, 그리고 언제나 이기적인 사람들이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그것을 지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들어 그 생각에 자꾸만 의심이 간다. 그 선을 울퉁불퉁한 철조망으로 둘러싸서 더 견고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왜냐하면, 지켜야할 선을 넘고도 그들은 너무나 태연하게 용서받고, 반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나가미네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아니, 회사원이였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회사일을 열심히 하고, 착하고 예쁜 딸을 바라보며 사는 중년 남성-세상의 어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그였다. 하지만 그를 한 순간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사건이 일어났으니, 딸 에마의 죽음과, 죽음의 실체를 안 순간이였다. 

아무 잘못없는 에마는 불꽃놀이를 보고 집에 돌아오다가 살해당했다.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 같다고 경찰들은 말한다. 아니라고 부인하던 그는 에마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오열한다. 이제 살아갈 희망이 없는 그에게 범인을 알려주는 한 통의 제보전화를 받게 된다. 그리고 확인한 딸의 죽음, 그 실체...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끔찍한 영상들. 그는, 아버지는 가슴이 갈갈이 찢긴다. 짐승취급 당하며 죽은 딸이, 성노리개로 전락한 딸이 가엾고 가여울 뿐이다.

그래서 그는 범인들을 추격한다. 그는 왜 법에 호소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청소년법은 그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준다는 이유만으로 가벼운 형량을 선고하기 때문이다. 딸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범인에게 가벼운 형량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는 희미한 단서를 향해 범인을 추격한다. 추격하면서 경찰과, 세상과,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한다. 과연 내가 옳은일을 하는 것일까? 딸의 억울함을 갚아야 하지만, 살인이란 방법이 정당한 것일까? 내가 겨누는 이 칼날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소설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는 일어난다. 아니, 더끔찍할지도 모른다. 옆에서 뛰어놀던 예쁜 아이들이 순식간에 참혹하게 죽는 일, 밝게 웃던 여고생이 처참하게 성폭행 당하는 일, 같은 친구끼리 입에도 담을 수 없는 폭력을 가하는 일-이 모든 일이 어찌 가상의 세계에서만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을 뒤집어 놓을 정도의 끔찍한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늘 반문한다. 과연, 법이란 것이 우리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그어놓은 선은 우리를 서로서로 안전하게 지켜내고 있는 것일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에게 아주 어려운 문제를 던져주었다. 당신이라면, 당신의 칼날을 어디에 겨눌것인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등의 상투적인 표현이 아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멈칫했다.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책을 덮고도, 깊은 생각에 잠겼다. 풀 수 없는, 아주 어려운 수학 문제를 받아든 기분이다. 다만, 나의 바램은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둘러주는 '법'이라는 선이 조금더 단단해졌으면 하는거다. 그래서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 가슴아픈 일이 더이상, 더이상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비록 불가능한 소망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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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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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시간이란 녀석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바로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또 한편으로는, 시간이란 녀석을 잘 설득하면 내 편이 되어줄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거스르고자, 또한 뛰어 넘어보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시간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다만 그는, 스스로 조용히 흘러갈뿐.

시간이란 녀석이 '막스 티볼리'에게 유난히 더 잔인했다고 가슴 아파하는 나를, 티볼리씨는 어떻게 생각할까? 조용히 웃음지을까? 조용히 어깨를 두드려줄까? 아니면 내 생각에 동의해줄까? 아니면....

막스 티볼리는 누구나 한번쯤 동경해보았을만한-그러나 그에겐 저주일뿐인-삶을 살았다. 늙고 추한 노인으로 태어나 시간과 함께 흘러가며 점점 젊어진 그. 어렸을땐, 늙고 추한 몸에 갇혀서,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가슴을 가졌을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몸에 갇혀서 그렇게 살아야했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과는 늘 반대로 살아온 그였지만, 그의 가슴은 따뜻했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보다 진실한 사랑을 했다. 마치 바보같다고 여겨질 정도로 한 여자만 사랑한 그. 그리고 잔인한 시간...

책을 읽으며 진심을 담아 소망했다. 티볼리의 가슴에 따뜻한 사랑을 불어넣어준 앨리스가, 그녀가, 그의 겉모습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진실로 사랑해주길, 그러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아니, 사실은 그 누구보다 독립적인-여자였다. 그녀는 늙은-하지만 십대의 순수한 소년인-티볼리의 사랑고백을 경멸했고, 남편이 된 티볼리-그러나 점점 젊어지는-의 열에 들뜬 애원을 거절했다. 그녀는 세상의 그 어떤 시선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두 번이나 앨리스를 잃은 티볼리는 자신을 자꾸만 구석으로 몰아간다. 그런 그를 지켜준 친구 휴이가 아니면 거의 끝을 보았을 정도로. 그런 끝에서 그는 자신의 아들을 알게된다. 그리고 또 한 번 소망한다. 자신의 사랑 앨리스를 그리고 괴물같은 자신을 닮지 않은 아들을 다시 보았으면 좋겠다는 자그마한 소망 말이다.

자신을 쭉 지켜온-그리고 사랑한-휴이를 죽음으로 몰아가면서까지 티볼리는 자신의 선택을 감행한다. 짧은 순간이라도 자신의 옛아내와 아들의 곁에서 그들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때로는 행복한 마음으로, 때로는 불행한 마음으로.

막스는 자신의 아들에게 괴물같은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삶을 한 권에 공책에 고백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비록 시간과 싸우며 투쟁한 그였지만, 나는 감히 그에게 고백할 수 있다. 당신은 앨리스에게, 그리고 당신의 아들에게 소중한 존재일거라고, 소중한 존재였다고 .

그리고 그의 고백은, 나에게도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진실로 돌아보게 해주었다. 그래서 한 남자의 진하고 진한 고백의 여운이 쉽게 잊혀지지 않을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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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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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당신에게 있어 어떤 의미입니까? 우선, 그것부터 알아보기로 하지요.
어떤 사람에겐 고상한 취미, 또 어떤 사람에게 시간을 때우는 수단, 또 어떤 사람에겐 살아가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지요. 저에겐, 그 모든 이유가 소설을 접하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누군가에겐 소설을 내보이며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고도 말하고, 또 어떤 이에겐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를 (침튀기며) 백가지나 말할 정도로 소설사랑을 드러내기도 하지요. 뭐 가끔은,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지루할때 시간을 때우기도 합니다만.

미친듯이 소설을 읽다보니 이런 욕심이 생기더군요. '아,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멋지게 써보고 싶다~' 그래서 소설작법, 소설쓰기 방법, 등등의 책을 남몰래 사다가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것이 말이지요, 그렇게 쉽게 잡히는 것이 아니더군요. 할 수 있을것만 같았던 '소설쓰기'는 다가갈수록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때 다카하시 겐이치로 선생님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라...제목이 참 희한하지요? 하지만 이 희한한 제목이 저에겐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소설이 야속하기만 할 때, 다카하시 겐이치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소설은 흠씬 얻어맞은 개같은 존재라 살금살금 다가가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지 않으면 도망가기 마련이라구요.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런 느낌을 항상 받았거든요. 의욕적으로 다가가면 항상 도망가는 소설. 왜 내 품에 덥석 안기지 않고 항상 도망가는지 궁금했었는데, 소설이란 놈의 정체가, 바로 그런 것이였습니다. 흠씬 얻어맞은 개말이지요.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했습니다. 겐이치로 선생님은 이런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냥 놀아주라구요. 무언가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잘써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즐겁게 놀아보라구요.

그때부터, 이 책에서 소설쓰는 방법을 배우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던 내 마음을 살며시 내려놓았습니다. 흠씬 얻어맞은 개와 놀아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거지요. 그 다음은 공놀이를 하듯,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이야기에 내 몸을 맡겨보는 것이였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이야기든, 글로 씌여져 있는건 소설이 될 수 있지요. 끔찍하다고해서, 더럽다고 해서, 읽기 싫다고 해서 피한다면, 즐기는게 아닌거겠지요. 날아오는 공이 어떻든간에, 신나고 즐겁게 공을 받아보는 겁니다.

그렇게 즐기다보면, 흉내내고 싶은 작가가 생길거고 그럼 그때, 막 말을 배우는 아기처럼 흉내내보는 겁니다. 그렇게 흉내내다보면, 자신만의 언어가 생길겁니다. 엄마아빠의 습성을 가지고 있는 여럿 아이들처럼 말이지요. 아, 이제 소설쓰기에 대한 막연한 자신감이 생깁니다. 자신감이 생겼다면? 그럼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는 겁니다. 물론, 조금의 즐거운 거짓말을 섞어서 말이지요.

소설을 쓴다는건, 즐거운 일인 동시에 괴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보통일인가요? 흔히 창작의 고통이라고도 말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카하시 겐이치로 선생님은 저에게 즐거운 창작 교실을 열어주셨습니다. 흔히 상상하는 딱딱한 교실에서가 아닌, 따뜻한 잔디밭에서 말이지요. 펜대만 잡고 죽도록 머리써서 쓰는 글이 아니라 온 몸을 날리고, 온 마음을 다하여 쓰는 그런 글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글 쓰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던 저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예전에 소설을 사랑하던 그 마음도 되찾았구요.

그래서, 다카하시 겐이치로 선생님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제 품에 날아와 안기기를 기다리고 있는 소설을, 이야기거리를, 기다리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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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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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직업 특성상, 자주 피를 대하고 접한다.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늘 인상을 찌푸리며 못본것을 본듯이 고개를 매몰차게 돌려버린다. ''라는 속성은 그런 것이다. 새빨간 그것은,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여기, 피의 웅덩이 속에서 끌려나온 한 남자가 있다. 전 무호흡 잠수 챔피언 자크 르베르디는 자기 자신을 놓아버릴 정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끌려나온다. 그의 옆에선 방 안 가득 피를 흘린채 죽어있는 알몸의 여자가 있다. 그는, 모든 정황으로 보아 명백한 살인자임에 분명하다.

그런 살인자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범죄사건을 중심으로 다루는 기자-마르크 뒤페라이다. 마르크는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두 번이나 끔찍한 방법으로 잃고 진정한 '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다. 그는 자크 르베르디의 사건을 취재하면서 흥분하게 된다. 그를 파헤치면, 오래전부터 고민해오던 자신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자신만의 의식을 숨기려는 살인자와, 그것을 파헤치려는 기자의 심리전이 시작된다. 숨기려는 자와, 알아내려는 자. 그리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살인자와 점차 드러나는 살인사건의 전모. 그리고 의식이라 불리는 살인의 절차가, 점차 무호흡에 빠져들듯 나를 옥죄여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어떤 ''이 존재한다. 그 선을 넘으면 '시체와 공포가 푯말처럼 이어진 선-검은 선'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르베르디는 어렸을적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선을 넘었다. 그는 검은선에서 자신만의 의식에 몰두하고, 결국은 희생자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검은피에 자신의 광기를 내걸게 된다.

살인자를 쫓아가던 마르크 역시, 르베르디의 흔적에서 구토를 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그를 놓지 못한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을 놓아버리고 르베르디를 따라 선을 넘어 검은선으로 쫓아가게 된다. 그는 자신안의 악을 마주대하고는, 결국 그 악에 삼켜져버렸다. 

산소와 결합하여 우리몸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새빨간 피는 어떤면에서 경이롭다. 하지만 산소를 잃고 시커멓게 변해버린 검은피는 그 의미를 잃어버린채 죽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마르크는 몸속의 피까지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그것을 조용히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대할땐 조심해야 한다. 니체의 말처럼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랑제가 보여주는 악의 심연으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단, 자신안의 악을 마주대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깊은 심연이 당신을 검은선으로 데려가 버릴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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