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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슈바이크는 평생 귀족으로 살기 원했다. 아마도 17세기 정도의 삶의 형태를 꿈꾸지 않았을까? 돈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고 그는 기꺼이 그의 상상을 현실에 구현했다. 대단한 거부였던 그는 거금을 들여 자신이 기거할 성을 짓고 많은 하인과 관리인을 두었다. 그들은 고용된 인간들이 아니었다. 오로지 그의 목적을 위해 태어난 로봇들이었다.
옛 스위스 땅에 터를 잡은 그는 수 백 년 전 그의 선조의 영위했던 삶을 재현해냈다. 그는 거기에서 각종 예술 활동을 장려하고 예술가를 초청해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려했다.
그가 초청한 인간들 중엔 30대의 젊은 기타리스트였던 나도 포함되어있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의 성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나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는 연주회가 끝나면 늘 연주자들 위해 파티를 열었다. 그것도 오랜 전 시대의 방식으로.
혹시 여러분 중에 로봇은 없으시죠?
그가 매우 정중하면서도 뼈있는 농담을 던졌고 모두가 유쾌하게 웃었다. 그 당시만 해도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로봇과 인간을 구별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폰 슈바이크는 그런 완벽에 가까운 로봇들을 두고 있었지만 신념은 확신했다. 창조와 아름다움의 분야엔 결코 로봇은 들어올 수 없는 것을.
그는 그와 함께하는 로봇들을 소개했다. 그의 하인들이었고 집사였고 또한 20대의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은 바로 스무 살 무렵의 제 아내를 재현한 작품이죠.
물론 제 부인을 대신할 수 없겠죠.
하지만 늘 그녀를 곁에 두면서 그녀를 추억하지요.
폰 슈바이크는 감회에 젖어 콧수염 만지작거렸고 왼손을 뻗어 여인에게 자기를 소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인은 고개를 숙여 간단히 목례를 했고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전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폰 슈바이크의 부인은 결혼하기 전에 본 적이 있었다. 예술에 대단한 식견을 가진 대부호의 딸이었다. 나의 연주를 듣고 깊은 상념에 빠졌던 그녀에게 나는 나도 모르게 연정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때가 그녀가 서른을 갓 넘긴 나이였다. 나도 폰 슈바이크도 30살 이전의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기술이 있길래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를 대하면서도 그 존재를 이미 대했던 것 같은 강렬한 확신을 갖게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폰 슈바이크의 낭만성에 감동한 듯 보였다. 마흔 살에 그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었던 서른 살의 부인을 만났고 그녀는 10년 뒤 세상을 떠났다. 폰 슈바이크는 부인의 유전정보를 그대로 최신 로봇 기술에 적용하여 그가 만나기도 전의 여인을 완벽하게 재생한 것이다. 당연히 보통 사람들은 상상한 할 수 없는 거금을 들였을 것이다. 나를 비롯한 몇몇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로봇은 인간과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정교해졌다. 하지만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경우는 예상외로 드물었다. 20세기에서 21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영화에선 로봇과 인간이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그건 이미 로봇과 인간은 동등 할 수 없는 클래스라는 자각 때문일 것이다. 수백 년 전 피부색과 출생에 따라 인간이 차별되었던 것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인간이 계급체제에서 평등체제로 돌아선지 수 백 년이 지났다. 몇몇 지식인들은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이 시대를 이렇게 평가했다. 로봇은 결국 정당화된 계급체제로의 전환을 이룬 쾌거였다. 왜 쾌거냐고? 인간의 밑바닥엔 계급을 이루고 싶은 욕구, 부리고 싶은 욕구가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평등을 사랑하고 지향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다만 윤리 의식이 강제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 로봇을 통해 인간은 그 밑바닥 욕구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
돌이켜 보건데, 로봇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가 있었다. 육안으로 인간과 로봇을 구별하기 힘들었고 실제로 함께 오래도록 산다 해도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고서는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그 시대 상류층엔 이런 것들이 유행했다. 비싼 로봇을 구입하고선 그것들을 함부로 폭행하고 파괴하는 것, 더 나아가 자신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지 확인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학대를 가하는 것. 그런 비이성적인 행위들이 꽤 오랫동안 유행을 하기도 했다.
그건 사랑의 재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인에 관한 명백한 모독입니다.
나는 폰 슈바이크의 젊은 부인을 보며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그것은 부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로봇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그건 전혀 다른 어떤 존재였다. 그런 생각과 감정이 어쩌면 비극의 첫 단추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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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이른 아침이었지만 그녀는 숄을 두른 채 대리석 상 앞에 서있었다. 나도 한동안 그녀의 뒤에 서있었고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사실은 둘 다 로봇이었지. 당시 기술은 지금처럼 자유로운 감각과 정신을 로봇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지. 겉은 대단히 정교했지만 속은 일일이 프로그램 모듈이 들어가야 했던 시절이야. 지금이야 어린이 로봇이 자라서 성인 로봇이 되는 것도 놀라운 일만은 아니지. 자신이 로봇인지도 모르게 키워진다고도 하잖아.
그 아이의 엄마는 폰 슈바이크가 만든 하녀 로봇이었지. 로봇 아이도 하나 딸려서 말이야. 그때 어미는 아이를 성 안에서 잃어버렸었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정도의 유아였어. 미로처럼 얽힌 성 안에서 사소한 실수로 길을 잃는 경우가 많았어. 항간엔 폰 슈바이크가 일부러 그런 일을 꾸민다는 소문이 있었지. 로봇의 디테일한 반응을 보기 위해서라나. 우여곡절 끝에 엄마는 아이를 찾았어. 아이를 찾은 엄마는 아이를 꼭 껴안은 채 엄청난 환희에 젖어있었어. 폰 슈바이크는 그녀에게 가서 물었지.
지금 이 아이를 언제까지 안을 수 있겠나.
백 년이라도 가능해요.
주인님. 아무렴요.
백 년 동안이라도 이 아이를 안고 있을 수 있답니다.
폰 슈바이크는 그렇다면 진짜 너의 감정을 보여 달라고 했어. 그러자 그녀는 다시 환희에 차서 아이를 안았지. 정말 그렇게 몇 일을 안고 있었어. 둘에겐 배고픔도 아픔도 졸림도 느끼지 못했지. 명백한 프로그램 실수였어. 아무리 커다란 환희라 해도, 아이와 엄마의 유대관계라곤 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 수 있겠어? 그런데 실제로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수근 대기 시작했지.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그것은 수 백년 전에 만들어진 피에타 상에 버금갈 만큼의 생생한 감동이 있다고.
폰 슈바이크는 그 소식을 듣고 기분이 나빠졌을 거야. 어떻게 로봇의 환희 따위가 인류의 위대한 작품이 빚어낸 거룩한 슬픔과 비교될 수 있겠냐면서 펄펄 뛰었겠지. 그는 당장 두 로봇의 전원을 제거해버렸지. 나는 그때 다른 음악가와 미술가들과 더불어 그의 성에서 머무르고 있었어. 나는 막 전원이 제거된, 폐기 직전의 두 로봇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지. 그것은 순수하기 이를 때 없는 모성의 상징이었어. 나와 몇몇은 폐기직전의 로봇 두 기를 몰래 빼돌려 그것을 대리석 상으로 만들었어. 그것이 바로 지금 보고 있는 저 상이야.
그 사실을 들은 폰 슈바이크가 대노했지. 그는 나와 친구들에게 다가와 콧수염을 뽑을 듯이 잡아당기며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하더군.
로봇에게 신성을 느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럴까요?
존재하고 있는 아름다움을 다만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지요.
당신이야 말로 로봇이 아닌가요?
나는 그때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을 보았지. 폰 슈바이크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나는 곧바로 상을 외부로 옮겼고 그의 성을 나왔어. 지금의 저 대리석 상은 그 후 몇 년 간 이곳에 보관되었고 새로운 작품을 찾던 사람들의 눈에 띄어 세상에 공개되었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지. 각종 전시회에 초대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이슈가 되었지. 동시에 몇몇 인사들은 폰 슈바이크를 맹렬히 비난했어.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아왔던 인류 예술의 수호자였던 그를.
폰 슈바이크의 성을 나온 이후로 그와 연락이 닿은 적은 없었어. 하지만 그는 줄곧 복수를 생각했을 거야. 그리고 기어이 복수를 하고야 만 거군.
너를 만들어 나에게 보낸 것으로.
인간을 우습게 만든 벌을 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