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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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알란 칼손이라는 한 노인이 자신의 100번 째 생일날 요양원을 탈출해 벌어지는 이야기와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번갈아 가며 들려준다. 알란 특유의 느긋함과 소설 곳곳에 깔려진 유쾌한 유머가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정치이야기에도 끝까지 책장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정치와 종교를 매우 싫어하는 주인공인 알란 칼손은 세 끼의 식사와 조금의 술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아주 낙천적인 노인이다. 하지만 실제 그의 삶은 그런 느긋한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입과 대부분의 행동이 낙천적인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알란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자신의 가치관과는 항상 위험천만한 길을 선택한다. 그의 선택은 정치와 연관되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정치와 종교를 매우 싫어하는 알란 칼손은 그러한 선택의 결과물로 한 나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세 끼의 식사와 술이 무한으로 제공되며 심지어 일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주어졌음에도 그는 결국 정치판, 전쟁판을 선택하곤 한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조차 말이다. 

그런 과정에서 알란 칼손은 폭탄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책을 덮고 나서 그런 장면들이 떠올라 두려웠다. 그것은 그러한 장면들이 잔인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유쾌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철저히 알란 시점으로만 묘사되어 읽는 사람까지도 그런 전쟁통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목숨을 그냥 지나치게 만든다. 심지어 그러한 장면들이 경쾌하게 읽힐 때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물론 안 좋은 역사를 유쾌하게 바라보진 않겠지만 결국 그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게 마련이니 말이다. 

알란 칼손이 그렇게 정치와 또 전쟁과 가까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아주 유능한 원자폭탄 전문가이기 때문인데 놀라운 것은 그의 학력은 고작 3년밖에 되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종이에 쓸 수 있는 학력이나 직위는 없지만 그는 세계의 저명한 학자들보다도 뛰어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베니 또한 마찬가지다. 베니는 대학 졸업장 한 장, 쓸만한 자격증 하나 없지만 전공을 바꿔가며 오랫동안 공부한 덕에 여러 방면으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눈에 보이는 스펙이 없어 아무 곳에도 취업하지 못하고 핫도그 장사나 해야 했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스펙이 모자라 취업하지 못한 베니와 3년이라는 짧은 학력에도 세계를 뒤흔든 알란을 보면서 요즘 젊은 친구들이 떠올랐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실무에 적합하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자격증이나 점수를 위해 힘들게 공부하지만 막상 취업을 하면 자격증을 취득한 과정과 상관없이 1부터 10까지 다시 배우게 된다. 자격증은 실무를 위한 과정이 아닌 그냥 한 줄의 스펙일 뿐이다. 넓은 범위의 의사소통, 직무의 적합성, 풍부한 경험을 위한 것들이 어느새 스펙에 한 줄 이라도 더 추가해 줄 도구로 전략해 버린 것이다. 오랜 기간 노력해 얻은 것들로 인해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성실성' 뿐이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스펙 쌓기'를 그만둘 수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쳐지기 십상이다. 남들과 다른 특출난 재능이나 아이디어를 꽃피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씨앗이 심어져야 꽃피울 수 있다. 아주 어려서부터 획일화된 교육을 받은 지금의 젊은이들은 지금 하고 있는 것 외에는 생각조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조금 전 시대에는 수입을 위한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고민했다면, 지금 시대에는 하고 싶은 일이 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기에 지금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을 쫓을 수는 없겠지만 알란처럼, 또 알란의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며 미약하게나마 어깨의 힘을 빼고 기분을 가벼이 해 보면 거대한 현실의 벽이 조금은 낮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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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스캔들
장현도 지음 / 새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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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하드커버에 내가 좋아하는 내지 재질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겉표지와 그 안의 하드 커버, 종이 재질, 레이아웃, 폰트 등 다 마음에 들었다. 황금가지에서 출판한 내가 좋아하는 여러 전집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신나는 마음에 책을 받자마자 읽던 책을 제쳐두고 <골드스캔들>부터 펼쳐들었다. 


사실 어려운 단어들이 난무해 첫 장부터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르겠다. 금융에 관해 완전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엔  네이버 사전을 켜놓고 천천히 책을 읽어나갔다. 불편한 반면에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어려운 단어들에 책을 읽는 속도는 느렸지만 그에 비해 내용 자체는 잘 읽혔다. 책이 꽤 재미있었다는 뜻이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가 아닌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경쾌하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조금만 덜 졸렸으면 하루만에 읽을 수 있었을 터였다. 

역사가 들어 있는 소설들은 책을 덮은 후 생각하고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골드 스캔들>또한 그랬다. 골드스캔들에서는 자본주의에 관한 것과 한국의 IMF 당시에 대한 언급이 있다. 우선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 해 보면, 자본주의는 경제체제 중 하나이며,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자본주의체제 아래 경제 생활을 하고있다. 자본주의사회는 노동력을 포함한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지며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제도이다. 결국 사람들은 본인의 사유재산을 늘리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한 경제 활동으로 인해 얻는 것이 바로 사유재산, 즉 돈이다. 사람들은 보다 더 편한 경제 활동을 위해 물건을 교환하는 대신 돈이라는 종이를 만들었다. 최근에 와서는 종이를 쓰는 것도 불편하다며 숫자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편하기 위해 그런 것들을 만들었으나 현재에 와선 오히려 돈이 사람을 조종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뉴스 한 편만 봐도 돈 때문에 온갖 추악한 일을 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이 소설에서는 개인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사유재산에 관해  이야기 한다. 미국의 사유재산인 달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지. 소설 속의 이야기이지만 또 그렇게 먼 이야기만은 아니다. 

<골드 스캔들> 속에는 이 외에도 우리와 멀지 않은 여러 가지 내용들이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특히 시민을 위해 벌려놓은 공공사업 때문에 거꾸로 그 슬로건을 깨야 하는 상황에 처했던 푸리토나, 언론 보도에 의해 갈대처럼 마음이 바뀌는 우리 모습은 현재 한국과 아주 흡사하다. 땅콩항공만해도 그렇지 않은가. 섣부른 언론(인터넷 기사였긴 하지만 말이다)과 SNS로 인해 한 여성이 마녀사냥을 당했다. 결국 시간이 많이 지난 뒤, 그러니까 그 여성이 온갖 모욕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고 그 사건은 그대로 덮였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해 보자면, 사회적 환원이라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길을 지나가다가 직접 혹은 TV 채널을 돌리다가 전화 서비스를 통해 돈을 기부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때마다 누군가를 도왔다는 것에 뿌듯해하긴 했지만 그 돈이 어떤 경로를 통해 누구에게 전해지는 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골드 스캔들>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정말 누군가를 돕는 것에 의의를 뒀다면 한 번 쯤 의심해 보고 내가 낸 돈이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물어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난 그냥 그 순간의 자기 만족으로 끝냈다. 나를 위한 기부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런 것도 믿지 못한다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사람들에게도, 또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미안해지는 일이지만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골드 스캔들>은 이러한 속살들이 스토리 속에 잘 담겨있다. 그럼에도 읽으면서 불편한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한국인으로서 소설 속에 나온 모든 한국인들과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너무 바보처럼 표현된 게 속상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에는 스위치가 있었는데, 스탠필드가 컨퍼런스에서 받는 비난을 보고 '마녀사냥'이라고 표현된 것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서 '마녀사냥'이라는 단어는 스탠필드를 비난하는 한국인들을 괜한 사람 잡는 잔인한 사람들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이라는 단어가 왜 생겨났는지 생각해보면, 무고한 여성들을 마녀 취급하며 화형에 처했다. 죽으면 사람이고 살면 마녀라는 것인데, 무고한 여성들을 마녀 취급하며 죽이는 것을 두고 마녀사냥이라고 불렀다. 스탠필드는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이었고 고로 마녀사냥이라는 단어는 옳지 않은 것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떠올랐다. 그 영화에서는 '사치스러운 생활은 나쁜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고 있긴하지만 그 내면에는 프라다를 입고 다니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호화롭고 멋스럽게 표현되어 명품과 상류층  삶에 대해 세련된 이미지들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다. <골드 스캔들> 또한 선이 주인공이며, 갈등을 풀어나가는 데 톡톡한 역활을 하고 또 마지막까지 도도했지만, 막상 큰 사건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불쌍하고 약해보이기 그지없었다. 오버라고 한다면 인정하겠지만 복잡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에 반해 화폐와 금의 팽팽한 대립이 아닌, 화폐의 일방적인 금죽이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내게 반감을 들게 했다. 이 외에도 오탈자와 틀린 명사, 조사가 내 손가락 갯수를 훨씬 넘는다는 점도 상당히 아쉬웠다. 그렇게 예쁘게 만든 책인데, 편집자들이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결말도 아쉬운 요소 중 하나이다.  '그들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라며 여운을 남기고 있지만, 앞의 내용들이 너무 거대했던 나머지 이러한 결말에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골드 스캔들>이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이 소설은 우리와 가장 밀접하다고 생각하는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반면에 우리와 가장 멀다고 생각되는 세계의 일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가 가장 관심가져야할 세계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그러한 것들을 우리가 관심가질 수 있게끔 긴장감 있는 스토리 속에 잘 녹여냈다. 내 개인적인 바람으로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는 독자님들은 이 소설의 단점들을 머리 한 편에 염두에 둔 다음 소설의 내용을 즐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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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여자 스토리콜렉터 10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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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라는 소설로 유명해진 시리즈입니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란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포함한 모든 타우누스 시리즈가 번역되어 세계로 출간되었어요.

시리즈로 된 추리소설 광인 저는 그 명성만 듣고 읽어보지도 않은 채 사모으기 바빴어요. 그러다가 이번에 시간이 많이 남기도하고, 추리 소설을 읽을 명분도 생겨서 겨우 첫 번째 시리즈인 <사랑받지 못한 여자>를 읽게되었어요.


<사랑받지 못한 여자>의 주 사건은 이자벨이라는 아름다운 금발 미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것입니다. 목표는 이자벨을 살해한 범인이 누군가였지만 어느새 독자는 타우누스의 형사인, 피아 키르히호프 형사와 보덴슈타인 형사가 등장인물들에 얽힌 비밀을 하나씩 밝혀낼 때 마다, 다음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는 추리 소설이라기보단 범죄수사 소설입니다. 사실 저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 차이가 뭔지 인식하지 못했는데, <사랑받지 못한 여자>를 읽고 난 후, 그 구분이 분명하단 걸 알았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유명한 추리 소설인 셜록홈즈나 히가시노 게이고작가의 추리 소설들과 수사미드 CSI를 비교해 보면 금방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세밀하게 짜여진 트릭보다는 사건과 비밀을 밝혀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래의 목표였던 이자벨의 죽음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해서는 약간 힘이 빠져있는 느낌이 있습니다. 더 큰 비밀들이 많아서 독자 자체도 이자벨의 죽음에 관한 것을 놓치고 있을 때가 많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욕심을 내자면 이자벨의 죽음에 관해서도 좀 더 공을 들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덮을 때, 잘 만들어진 범죄 영화 혹은 미드 한 편을 보고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가 첫 시리즈인만큼 그 뒤의 시리즈들이 기대되는 소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소설은 제목을 아주 잘 지은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라는 제목을 상기하시면서 이 책을 읽어나가면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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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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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가 있으면 우리는 자유로워질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조금 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을 것이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삶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 또 살아가야 하며 우리 삶에서 타인이 빠지는 일은 없다.

˝고민을 없애려면 우주 공간에서 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우주 공간은 아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혼자가 되면 정말로 고민이 사라질까? 이미 타인과의 삶을 경험한 우리는 혼자가 되어도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할 것이다. 인간관계가 사라진 것으로부터 오는 상실감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우리가 타자공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과 나의 과제를 분리시키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는 이미 이런 삶을 경험했고, 지금도 이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예로 들면, 내가 친구를 생각하는 만큼 친구도 나를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 같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써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쉽게 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자의 생각처럼 나 또한 인간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미움받을 용기>의 철학자와는 조금 다른 관점이지만 어쨌든 인간은 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변할 수 있다. 책 속의 철학자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노력하는 행동 자체가 변화라고 생각한다. 보통 노력에 의해 변하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너 변했구나˝라고 얘기하다가도 그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변화 전의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의식적이라고 해도 변화된 행동의 비율이 그렇지 않은 행동의 비율보다 더 많다면 그것은 충분히 변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은 사람들 중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아마 이 책 속 내용이 틀린 내용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논리적이지 못하고,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책에서 말하는 이론에 대해 너무 단정하기 때문이다. 예외를 잘 인정하려하지 않는 것이다. 책 속의 철학자는 사례를 이용해 청년을 설득한다. 하지만 그 사례는 철학자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례들 뿐이고 모든 사례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회사에 관련된 이야기는 더더욱 그렇다. 본인과 상사의 과제를 분리한답시고, 미움받아버렸을 때 그로부터 오는 불이익이 생각보다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 책의 단점은 장점이 되기도 한다. 아주 당연한 말로써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 않는다. 독자의 뇌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다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그 생각을 좀처럼 정리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게 문제이기도 하다.

<미움받을 용기>는 여러 측면에서 읽어야 한다. 가볍게 읽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책이고, 무겁게 읽으면 책 속 청년과 같이 철학자의 말에 반박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현실에 맞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잘 분리하고 본인이 조금 더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추가

감정vs목적
만약 목적이 먼저라면 대상이 눈앞에 없을 때 화가 풀려야하는데 여전히 화가난다. 그래서 감정이 먼저가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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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곶의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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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사와 아키오라는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어봤다. 화창한 날, 커피 한 잔과 함께 여유로움을 즐기며 읽기 딱 좋은 소설이다. 표지에 적힌대로 힐링하기 좋은 소설이었다. <무지개 곶의 찻집>은 저마다의 걱정거리를 안고 찻집을 들른 손님들과 에쓰코씨의 따뜻한 이야기다. 


찻집의 주인 에쓰코의 남편은 화가였다. 그는 타계하기 전 그림 한 폭을 남기고 갔는데,  그 그림엔 무지개 곶의 놀과 무지개가 담겨 있다. 에쓰코는 그 무지개를 보기 위해서 무지개 곶에서 찻집을 운영하며 무지개를 기다리고 있다. 에쓰코씨는 저녁만 되면 창밖을 바라보며 무지개를 기다린다. 

에쓰코의 조카 고지는 지금 이대로라면 에쓰코씨가 영원히 무지개를 볼 수 없다는 것과그림과 똑같은 무지개를 볼 수 있는법을 알고 있지만 에쓰코에게 말하지 않는다. 에쓰코가 그 사실을 알게되면 지금처럼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지의 행동을 보며 난 며칠 전에 읽은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의 `목적론`이 떠올렸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단어 자체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며 떠올린 것이다.


에쓰코의 목적은 무지개를 보는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곶에서 살고 있다. 고지는 에쓰코의 목적 자체보다는 그 목적을 위한 과정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 꿈을 꾸는 것과 꿈을 이루는 것, 어느 쪽이 더 달콤할까. 보통은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행을 갈 때는 그를 위해 준비할 때가 가장 즐겁고, 크리스마스도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이 가장 즐겁다.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 중에서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꿈이 이뤄진 상태`를 배제할 순 없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정도 소중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에쓰코에게는 기존의 단골 손님들과 소설 속 화자였던 사람들 그리고 조카인 고지까지 마음 따뜻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모두 본인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고 찻집에는 에쓰코씨만 남겨진다. (고타로의 집은 찻집 밖에 있다.) 밤이되면 외로운 시간을 홀로 견뎌야 하는 것이다. 그런 에쓰코에게 무지개를 보는 것과 무지개를 보기 위한 시간 중 그녀에게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볼 만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문득, 내가 아직 교복을 입고 있었던 시절, 내가 쓰고 싶었던 소설이 이런 소설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전해줄 수 있는 소설 말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전공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는 일반 독자들을 위한 소설보다는 전공자들을 위한 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지개 곶의 찻집>은 클리셰를 깨지 못한 소설이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메타포가 난무한다. 전혀 생각할 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시간들은 소설이 전해주는 그대로 받아들이게끔 되어 있다.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수준 높은 작법들이 가득한 소설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가끔은 이런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소설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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