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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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알란 칼손이라는 한 노인이 자신의 100번 째 생일날 요양원을 탈출해 벌어지는 이야기와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번갈아 가며 들려준다. 알란 특유의 느긋함과 소설 곳곳에 깔려진 유쾌한 유머가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정치이야기에도 끝까지 책장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정치와 종교를 매우 싫어하는 주인공인 알란 칼손은 세 끼의 식사와 조금의 술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아주 낙천적인 노인이다. 하지만 실제 그의 삶은 그런 느긋한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입과 대부분의 행동이 낙천적인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알란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자신의 가치관과는 항상 위험천만한 길을 선택한다. 그의 선택은 정치와 연관되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정치와 종교를 매우 싫어하는 알란 칼손은 그러한 선택의 결과물로 한 나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세 끼의 식사와 술이 무한으로 제공되며 심지어 일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주어졌음에도 그는 결국 정치판, 전쟁판을 선택하곤 한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조차 말이다. 

그런 과정에서 알란 칼손은 폭탄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책을 덮고 나서 그런 장면들이 떠올라 두려웠다. 그것은 그러한 장면들이 잔인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유쾌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철저히 알란 시점으로만 묘사되어 읽는 사람까지도 그런 전쟁통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목숨을 그냥 지나치게 만든다. 심지어 그러한 장면들이 경쾌하게 읽힐 때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물론 안 좋은 역사를 유쾌하게 바라보진 않겠지만 결국 그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게 마련이니 말이다. 

알란 칼손이 그렇게 정치와 또 전쟁과 가까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아주 유능한 원자폭탄 전문가이기 때문인데 놀라운 것은 그의 학력은 고작 3년밖에 되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종이에 쓸 수 있는 학력이나 직위는 없지만 그는 세계의 저명한 학자들보다도 뛰어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베니 또한 마찬가지다. 베니는 대학 졸업장 한 장, 쓸만한 자격증 하나 없지만 전공을 바꿔가며 오랫동안 공부한 덕에 여러 방면으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눈에 보이는 스펙이 없어 아무 곳에도 취업하지 못하고 핫도그 장사나 해야 했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스펙이 모자라 취업하지 못한 베니와 3년이라는 짧은 학력에도 세계를 뒤흔든 알란을 보면서 요즘 젊은 친구들이 떠올랐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실무에 적합하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자격증이나 점수를 위해 힘들게 공부하지만 막상 취업을 하면 자격증을 취득한 과정과 상관없이 1부터 10까지 다시 배우게 된다. 자격증은 실무를 위한 과정이 아닌 그냥 한 줄의 스펙일 뿐이다. 넓은 범위의 의사소통, 직무의 적합성, 풍부한 경험을 위한 것들이 어느새 스펙에 한 줄 이라도 더 추가해 줄 도구로 전략해 버린 것이다. 오랜 기간 노력해 얻은 것들로 인해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성실성' 뿐이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스펙 쌓기'를 그만둘 수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쳐지기 십상이다. 남들과 다른 특출난 재능이나 아이디어를 꽃피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씨앗이 심어져야 꽃피울 수 있다. 아주 어려서부터 획일화된 교육을 받은 지금의 젊은이들은 지금 하고 있는 것 외에는 생각조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조금 전 시대에는 수입을 위한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고민했다면, 지금 시대에는 하고 싶은 일이 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기에 지금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을 쫓을 수는 없겠지만 알란처럼, 또 알란의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며 미약하게나마 어깨의 힘을 빼고 기분을 가벼이 해 보면 거대한 현실의 벽이 조금은 낮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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