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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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만적인 앨리스씨』가 황정은과의 첫 만남은 아니다. 대학교를 다닐 때 과방에서 밤새 황정은의 단편 소설「뼈도둑」과 씨름했던 적이 있다. 그때 같이 소설을 읽던 친구들 모두 황정은 예찬론을 펼쳤지만 난 끝내 그러지 못했다. 그녀의 훌륭함을 알기엔 도우지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다. 읽은 곳을 읽고 또 읽고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황정은의 장편 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읽게 되었다. 처음엔 「뼈도둑」을 읽던 내 모습이 떠올라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 않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녀의 문장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는 매우 더뎠는데, 메모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소설 중에는 읽다가 기록하고 싶은 문장이 있어 무심코 펜을 집어들면 책을 덮을 때까지 펜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소설이 있다. 『야만적인 앨리스씨』가 바로 그런 소설이다.

『야만적인 앨리스씨』가 앨리시어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다. 화자인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 그리고 그의 친구 고미는 가정폭력을 당한다. 앨리시어는 폭력이 난무하는 일상 속에서 성장한다. 이 소설을 읽기 바로 전에 읽었던『데미안』에서 싱클레어의 성장은 내적 성장이다. 그가 나이를 먹고 있음을 알고는 있지만 독자는 그 사실을 종종 놓치곤 한다. 반면에 앨리시어의 성장은 신체적인 성장뿐이다. 폭력뿐인 일상 속에서 그의 내면은 자라지 못한 그대로 그의 신체만 성장한다. 자신의 팔다리가 길어진 것을 눈치 챈 그는 강해진 자신의 힘을 느낀다. 앨리시어는 어머니를 때리겠다고 말한다. 자신과 동생이 폭력을 당하는 것을 보고 얽히지 않으려는 이웃, 문 밖에서 귀를 기울이는 이웃, 자식에게 체벌은 괜찮다는 이웃을 때리겠다고 말한다. 황정은은 앨리시어를 통해 불편한 진실을 고발한다. 우리는 앨리시어를 통해 우리 또한 누군가의 이웃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어떤 형태로든 반복된다. 앨리시어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본인에게 폭력을 가한 이들을 폭력으로 제압하려고 했던 것처럼. 이른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다. 『야만적인 앨리스씨』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여러 장치를 통해 보여준다.  앨리시어의 노인을 머슴으로 부리던 식당 사장은 식당 손님이 된 앨리시어의 노인에게 부려지고, 소년은 영역을 만들고 에너지를 생산하고 군대를 먹이고 영역을 넓히고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더 많은 군대를 먹이고 더 넓은 영역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해 더 많은 군대로 영역을 더 넓힐 수 있는 게임을 즐긴다. 앨리시어의 엄마는 호두를 집고 호두를 깨고 호두 속을 꺼내 먹고 따 다른 호두를 집고 호두를 깨고 호두 속을 꺼내 먹는다. 고물상을 하는 아빠가 싫어 고물상이 싫은 고미마저도 고물상이 되려고 한다.

이 소설의 첫 장면에서 우리의 이웃이 된 앨리시어를 만날 수 있다. 앨리시어는 걸을 때마다 정장을 차려입은 굵은 골격이 움찍거리고 숨 막히는 불쾌한 체취를 뿜어낸다. 하지만 앨리시어는 타인의 재미와 안녕, 평안함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지내며 이따금 앨리시어의 냄새를 맡게 된다. 얼굴을 찡그려도, 아무리 불쾌해해도 앨리시어는 갈고리 같은 작은 가시로 진하게 들러붙는다. 누구도 앨리시어를 막을 수 없다. 

이 모든 행위는 고모리 마을 안에서 이루어진다. 앨리시어의  입을 빌리자면 '고모리 지명의 유래는 무덤이다. 옛날 옛적에 마을 사람들이 자고 일어나보니 마을 입구에 영문 모를 무덤이 세 개 솟아 있었다. 사연도 묘비도 없이 갓 파헤친 흙으로 덮여 파슬파슬하게 마르고 있었다. 영문 모를  무덤은 아니고 실은, 하며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에 굶주리던 마을 사람들이 아기 셋을 먹었다. 아기를 삶은 뒤 가슴과 엉덩이와 다리를 잘라 나누어 먹었다. 배를 채워 아사를 면한 주민들은 무덤에 관해서는 영문을 모르는 것으로 해 두었다. 알기 때문에 모르고 싶어한다. 모르고 싶기 때문에 결국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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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모던 컬렉션 시리즈 1
헤르만 헤세 지음, 채민정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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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던 책이었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의 싱클레어의 내적 성장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인간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누구는 싱클레어의 성장 과정이 평범한 인간과 아주 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인생의 이런 시점, 그러니까 자기만의 삶을 찾고자 하는 요구와 주변 세계가 가장 심하게 갈등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쟁취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시점을 지나게 된다.'고 말이다. 이게 바로 소설 『데미안』이다. 그러니까 싱클레어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결국 평범한 인간이며 이 소설 또한 한 인간의 내적 성장을 다루는 소설이다.

싱클레어는 인간의 인생에서 자기만의 삶을 찾고자 하는 요구와 주변 세계가 심하게 갈등하는 시점이 있다고 한다. 그 시절로부터 날아오는 향기는 싱클레어를 안락하게 감싸 안으면서도 내면의 상처를 건드린다. 싱클레어의 두 세계는 인간의 두 세계이다. 그 두 세계는 평화와 질서와 안식이 있는 집 안의 세계와 온갖 소음과 화려하면서도 음산하고 폭력적인 것들이 난무하는 집 밖의 세계이다. 또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선에 대한 동경과 악에 대한 갈망이다.

이 두 세계는 아주 가까운 곳에 나란히 존재한다. 때문에 싱클레어는 이 두 세계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편안하고 선한 세계에 있으면서 사악한 세계를 원하다가도 막상 사악한 세계에 발을 들인 후엔 또 다시 선한 세계를 갈망한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인간은 싱클레어가 그린 베아트리체의 상태에 놓여있다. 항상 두 세계가 공존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도 뒤돌아서면 세상이 되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또 공익 광고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금세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두 세계를 갈등하며 괴로워하던 싱클레어에게 성장의 발판이 되어 준 사람이 바로 데미안이다.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긴 했지만 데미안이 항상 그의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서문에 있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스스로를 해석할 수 있는 건 자기뿐이다.'라는 말을 직접 보여주듯 싱클레어를 고립 상태로 만든다. 고독한 상태에 있던 싱클레어는 꿈을 통해 완전한 성장의 끝은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만약 시중에 널려있는 수많은 성장 소설처럼 『데미안』도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의 경지에 올랐다면, 그의 성장이 완성되었다면 데미안은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읽히지 못했을 것이다. 싱클레어의 성장이 완성되기 직전에 전쟁이 터진다. 그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데미안과 함께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전한다. 소설 『데미안』의 마지막 페이지에서조차 에바 부인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입으로 에바 부인의 말을 전해 듣고 에바 부인의 키스를 받는다. 데미안이 죽은 후 싱클레어의 모습은 완전히 데미안과 같다.

소설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통해 인간의 성장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누구나 싱클레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데미안과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이마에 '카인의 표'가 있다고 말한다. 말인 즉, '카인의 표'가 있는 인간이 싱클레어가 될 수 있다. 예측하건데, '카인의 표'란 본인을 위해 형제를 죽이고 신과 싸운 카인처럼 정해진 그대로 살지 않는, 스스로 생각하며 행동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카인의 표를 가진 싱클레어의 상태에 있는 인간은 타인의 안내 혹은 스스로의 사고를 통해 데미안의 상태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내 에바 부인이 있는 완전한 성장의 경지를 맛볼 수는 있지만 결국 도달하지 못하고 영원히 데미안의 상태에 남아 있게 된다. 그것이 소설『데미안』이 보여주는 인간의 성장이다.



소설 『데미안』은 올해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도 책의 전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종교를 가졌다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한 번 더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까' 하며 아쉬움을 드러낼 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읽은 『데미안』은 KPI출판 그룹의 임프린트인 책 읽는 수요일에서 출간된 책이다. 이 책에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데미안 형'이라고 지칭한다. 이는 원문에서 조금 동떨어져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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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백만장자의 눈
로알드 달 지음, 김세미 옮김 / 담푸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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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작품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에 깔끔하고 안정감 있는 문체가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로알드 달의 백만장자의 눈은 단편집이다백만장자의 눈안에는 동물들과 이야기하는 소년를 시작으로 총 7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7개 소설 모두 남다른 이야기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로알드 달의 소설이 특별한 건 스토리 때문만은 아니다만약 기상천외하기만 한 이야기였다면 지금처럼 널리 읽히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왜냐하면 특별한 이야기는 세상에 수없이 많으니까 말이다.

 

로알드 달 소설의 또 다른 특별함은 그 기상천외한 이야기에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능청스레 섞여있다는 것이다예컨대 백만장자의 눈』 속 히치하이커에서 화자는 교활한 쥐처럼 생긴 히치하이커를 차에 태운다화자의 머릿속엔 그 사람은 소매치기일 뿐이었다그러나 히치하이커가 경찰에게서 본인의 이름과 차번호가 적힌 수첩을 훔친 것을 알게 된 순간 화자는 소리친다. "당신은 정말 멋져요!" 하고 말이다타인의 물건을 훔치는 건 똑같지만 소매치기가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순간 한낱 소매치기에서 손가락 장인이 된다로알드 달은 교묘하게 지극히 인간적인 뻔뻔함을 등장인물 속에 넣었다그리고 그 뻔뻔함이 우리마음을 사로잡는다조금은 부끄러우면서도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백만장자의 눈에서 행운만 제대로 읽어도 된다고 말한다행운은 완전한 픽션이 아니라 로알드 달이 작가가 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고 또 어떤 식으로 작가가 되었는지 이야기 한다백만장자의 눈에는 실제로 로알드 달에게 작가의 문을 열어 준 작품 식은 죽 먹기도 실려 있다이처럼 백만장자의 눈에는 완전한 픽션도 있지만 논픽션이 섞여 있는 이야기도 있다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이야기가 좀 더 특별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로알드 달의 백만장자의 눈은 남녀노소 누가 읽어도 지루하지 않게재미있게 본인만의 사유를 찾으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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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역사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하라, 오늘에 되새기는 임진왜란 통한의 기록 한국고전 기록문학 시리즈 1
류성룡 지음, 오세진 외 역해 / 홍익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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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역사서를 진지하게 읽어본 적은 처음이었다역사 속에 담긴 스토리자체는 매우 흥미롭고 호기심을 끄는 것이 사실이다.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역사서를 읽지 않는다학교를 다니며 교과서에서 읽었던 역사는 받아들이기에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당시 교과서를 읽으며 얼굴을 붉힌 기억이 있다덕분에 역사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지 않다역사에 대해 잘못된 오해를 하지 않기 위해 사극 드라마나 역사 소설은 일부러 읽지 않는 편이다내가 역사에 관한 지식을 받아들이는 창구는 오로지 신문뿐이었다.

 

징비록을 읽게 된 건평소 바빠서 책에 관심을 두지 못하는 엄마가 노트에 메모까지 해 가며 징비록에 관심을 두었던 게 시발점이었다그렇게 엄마에게 선물할 책으로 점찍어뒀었다그리고 바로 그 주에 참여하고 있는 독서 모임에서도 징비록이 선정되었던 것이다징비록은 소설만 읽던 내가 처음으로 내 손으로 구입한 역사서가 되었다.

 

징비록을 읽으면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징비록은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경계하고 대비하고자 기록된 임진왜란 통한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징비록을 기록한 류성룡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군무를 총괄하던 임시 벼슬인 도체찰사였다그는 도체찰사로서 전쟁과 관련된 중요한 임무들을 맡았고여러 중책을 맡은 신하들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이토록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그는 훌륭한 정치가이자 행정가였는데왜란 당시 그의 제안은 전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이순신 장군을 추천한 것도 류성룡이었다.

 

징비록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읽은 단어는 '도망'이 아닐까 생각한다조선은 지금의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관리의 자식이 관리가 되는 세습 시스템이었다따라서 왜란 당시 중요한 임무를 맡은 이들은 대부분 엘리트 코스를 밟고 편하게 그 자리를 꿰찬 자들이 많았다더욱이 당시 조선은 오랫동안 매우 평안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했다그러면서도 일본을 얕잡아 봤다.

 

하지만 막상 일본과 마주하니 일본은 그 수가 매우 많았고조총이라는 좋은 무기까지 가지고 있었다조선의 장수들은 싸워보지도 않고 겁을 집어 먹고는 도망치기 바빴다꼬리가 잘리면 살아남을 수 있지만 머리가 잘리면 살아남지 못한다머리부터 도망치니 조선의 군사들 또한 활 한 번 쏘아보지 못하고 모두 도망치기 바빴다징비록 전반의 내용이 그렇다조선의 군사들은 활 한 번 쏘아 보지 못했다심지어 저항도 없이 일본인의 칼을 받았다.

 

물론 모두가 도망치기만 한 것은 아니다자신의 목숨보다 나라를 생각해 열심히 싸운 이들도 많다하지만 웃기게도 그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에 의해서 그들의 머리가 잘렸다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조선의 벼슬아치들은 조선이라는 나라보다 본인들의 허울좋은 권력과 자존심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왜군이 조선에 쳐들어온 이후 첫 승리를 이끈 신각은 조정에 의해 참수되었다김명원 휘하에 있던 신각은 김명원이 왜군에게 패한 후 김명원을 따르지 않고 이양원을 따라 양주로 갔고왜군을 무찔렀다그 후 김명원은 신각이 마음대로 자신을 떠났다며 보고하였고 조정은 그를 참수하기로 한 것이다징비록 속에는 이러한 예가 셀 수 없이 많다.

당시 임금인 선조부터가 그러했다선조는 한양을 지키고 있지 못하고 결국 피신했는데그리 떳떳하지 못했다본인은 결국 피신을 했는데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운 이들을 못 마땅해했다그 안에는 이순신 장군도 포함되어 있었다이순신 장군은 종3품 종성 부사인 원균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 내막에는원균은 우수영의 배를 버리고 이순신 장군에게로 도망쳐나왔다그리고 이순신 장군에게 경상도 해역의 왜군을 치러 가자고 부탁한다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선조의 명령이 없었기에 그 부탁을 거절하고 출진을 보류했는데그 거절이 원균의 우월감에 상처를 낸 것이다그것이 시발점이 되었다더욱이 이순신 장군은 첫 번째로 출전한 전투인 옥포 해전에서 원균을 누르고 주장이 되었는데이에 원균과 원균의 부하들이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지휘 통제를 무시한다고 고발해 버린 것이다그 이후 계속되는 승전에도 둘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순신 장군이 수군의 전력이 모자라 왜군을 한 번에 몰아내기에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왜군의 함대를 유인해 함포로 궤멸시키는 전략을 세웠다따라서 접근전을 피하고자 했는데이를 본 원균이 이순신 장군이 곧바로 왜군을 토벌하지 않는다고 모함했다이 말을 들은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해임했으며 원균이 그 자리를 꿰찼다그 후원균 또한 지금은 왜군을 피해야 할 시기란 걸 알았으나 곧바로 토벌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순신 장군을 해임시켰기 때문에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군과 싸웠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선조는 전란 와중에도 무책임했던 기득권 인사들의 행동을 미화하며 그들의 공로를 강조했다자신의 무책임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본인이 떳떳하지 못하니 본인과 같이 떳떳하지 않은 이들을 가까이 두고자 했던 것이다이순신 장군 해임 후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완패했음에도 선조는 원균을 일등 공신에 책봉했다그러면서도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낸 곽재우고경명김천일김덕령 같은 의병장들은 외면하며 선무공신으로 선정하지 않았다.

 

징비록을 읽으며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다만약 현재의 우리나라에 큰일이 터져도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나라보다 본인의 권력과 체면만 중시하는 기득권들이 스스로의 행동을 부끄러워한 나머지 진짜 훌륭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본인과 같은 무책임한 사람들을 미화하며 나라를 갉아먹는 역사가 반복될 것 같다이러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한다장난스레 들려오는 '전쟁나면 외국으로 튀어야지', '가장 돈 많은 정치인이 장기간 외국에 있으면 전쟁 나는 거다등의 말을 장난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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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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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인더풀」을 읽으면서도, 「나오미와 가나코」를 읽으면서도 참 별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더풀」이야 주인공인 아라부가 워낙 별났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오미와 가나코」까지 별난 소설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역시 책을 덮고 난 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별나다는 생각이다. 내용은 어두우면서 소설의 분위기 자체는 밝은 것 때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나오미와 가나코」의 나오미는 자신의 꿈을 뒤로한 채 백화점 외판부 일을 하고 있다. 돈이 되는 직업이긴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접고 고객의 개인적인 요구까지 들어줘야하는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지만 쉽사리 그만두지는 못한다. 가나코는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는 전업주부이다. 폭력을 당하면서도 독립할 자신이 없어 그저 폭력을 당하기만 한다. 

이 두 캐릭터의 공통점은 옆으로 뛰쳐나갈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나오미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자존감도 높고 자신의 꿈을 찾고 싶어하는 의지도 있다. 독자는 나오미의 독백에서 그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반면 가나코는 오랜 세월 폭력을 당하면서도 자신이 혼자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캐릭터이다. 언듯보면 자존감이 매우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 역시 피임약을 먹음으로써 자신의 상황에 어느 정도 대항하고 있었다. 

이 두 여자는 자신들이 직접 가나코의 남편인 다쓰로를 심판하기로 결심한다.  처음 스위치를 누른 것은 나오미였다. 폭력가정에서 자란 나오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가나코를 설득한다. 처음 주춤 거리던 가나코도 지속적인 폭력에 자신의 남편을 제거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녀들은 그를 제거하는 것에 성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들은 한 사람의 생명을 끊으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녀들은 늘 타인에게 눌려 살아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나오미가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친구를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해서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현실성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이야 어쨌든 자신의 삶조차 버거워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상상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오미의 독백을 통해서 그녀가 다쓰로를 제거하는 것은 가나코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그녀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현재 삶에 회의를 느끼고 벗어나고 싶어하긴 하지만 그 구실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를 위한 구실로 다쓰로를 제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쓰로는 가나코의 남편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누르는 타인 혹은 삶 그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 증거로 다쓰로라는 악을 제거하고 살아 있음을 느낀다.

가나코는 초반엔 나오미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뿐이었다. 그러나 계획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다쓰로를 제거하고 그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나오미보다 더 적극성을 보인다. 자신이 저버린 생명에 의해 생겨난 또 다른 생명으로부터 그 자존감을 찾는다. 자신은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장면을 보고 피임약에 대해서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가나코가 피임약을 먹고 있는 것은 자신의 상황에 대항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을 억누르는 행위였던 것이다. 

「나오미와 가나코」에는 이 외에도 리아케미 특유의  당당한 분위기나 얕은 분노를 부르는 다쓰로 동생의 언행 등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다. 별 거 없어보이는 데도 묘하고 오싹해지는 다쓰로를 제거하는 장면도 인상 깊다. 이러한 요소들과 잘 읽히는 문장 배열 덕에 하룻 밤이면 후딱 읽을 수 있을 만큼 가독성이 좋다.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나라, 신뢰의 나라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강요받는 듯한 느낌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좀 더 불편할 수 있다. 일본에 반감이 없고 그런 것에 아무런 저항이 없는 사람이라도 머리 한 편에 그런 생각을 두고 이 소설을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나오미와 가나코의 우정을 보면서 우연히 알게된 쇼팽과 리스트의 일화가 생각났다. 사람들의 인정을 못받아 자신의 연주에 자심감을 잃은 쇼팽을 위해 리스트는 연주회에서 불을 끄고 자신의 연주를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몰래 쇼팽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쇼팽을 인정했고, 쇼팽은 자신의 연주에 자심감을 되찾았다는 이야기다. 내가 리스트의 상황에 있었더라면 힘내라는 말 외의 것을 해줄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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