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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다이허우잉, 『사람아 아, 사람아』, 신영복 옮김, 다섯수레, 2011.
1980년에 발표된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는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와 90년대까지 꽤 많이 읽힌 소설이었고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소설이기도 했다. 2012년 현재의 젊은 세대에게는 어떨까. 이 소설은 문화혁명 당시 중국 지식인들의 정치와 역사, 사상에 대한 논쟁으로 가득해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의 중요한 배경인 ‘문화대혁명’이라는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말이다.
문화혁명이 중국 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왜 현재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에도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사건인지 이해한다면 이 소설에 대한 이해와 재미는 두 배, 세 배가 될 것이다.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이 소설을 읽는다면 아마도 소설을 절반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혁명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약 10년 동안 중국의 최고 지도자인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끈 사회주의 운동이다. 문화혁명은 상류계급과 가난한 농민들 할 것 없이 중국대륙 전체를 계급투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이끌었고, 그 가운데 정치인들의 권력 다툼 역시 치열했으며, 소위 ‘인민대중’의 삶은 정치와 권력의 변화에 따라 부침(浮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설명하거나 평가하기가 곤란한 만큼 문화혁명은 마오쩌둥의 사망 이후에도 서로 엇갈리는, 매우 복잡한 평가들이 이어졌다.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80년대와 90년대에 이십대의 필독서로 여겨졌던 것은, 당시 우리 사회에도 민주화와 노동자의 해방 등을 인생의 목표로 하는 분위기가 젊은 세대에 팽배했었기 때문이다. 『사람아 아, 사람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끊임없이 역사의 변화와 발전, 인민 개개의 행복에 대해 부단히 고심하고 논쟁한다. 인간이 역사를 이끌어가기도 하고 역사에 끌려다니기도 하고 때로 역사의 보이지 않는 일부가 되기도 하는 한, 이것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화두이다.
* “누구나가 각자의 역사를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역사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인 말이지. 그러나 역사를 만들고 역사를 추진시키는 요인, 특히 인간은 구체적이고 복잡 다양하며 그야말로 신비로운 존재야. 더불어 시대의 무거운 짐을 질 사람을 우리가 기다려서는 왜 안 된다는 거지? 한 민족의 역사, 한 시대의 역사는 수천 수만 명의 역사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야. 그 모이는 과정에서 누구나가 각자의 역사를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자네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자네 혼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짊어질 생각인 거야?” (345쪽)
『사람아 아, 사람아』는 결코 만만치 않은 분량의 장편 소설이다. 이 소설은 모두 27개의 작은 장(章)으로 구성되는데, 주요한 등장인물들이 돌아가며 각 장의 일인칭 서술자가 되어 사건을 이끌어 간다. 문화혁명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이상을 좇으며 패기만만했던 이십대를 지나 마흔을 훌쩍 넘긴 시절까지 각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함께 배웠다 하여 끝까지 같은 길을 가는 것도 아니며 길이 다르다 하여 반드시 다른 목적지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256쪽)라는 어느 인물의 말은 역사의 격동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지나온 이십여 년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해 준다.
주요한 등장인물인 쑨위에, 자오젼후안, 허징후, 쉬허엉종 등은 같은 학교에서 대학생활을 했던 사이였다. 다이허우잉은 문화혁명을 전후로 한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이들의 사랑과 이별, 결혼과 이혼, 우정 등을 이십여 년에 걸쳐 보여주는데, 결국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간략히 끄집어내자면 역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문화혁명을 전후로 해서 당의 사상과 정책에 따라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사랑과 결혼, 우정의 문제에까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자오젼후안과 쑨위에의 결혼과 이별, 쑨위에와 허징후의 사랑, 쑨위에의 딸 한한 등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각자가 겪은 역사, 그리고 각자의 인생에 남겨진 역사의 의미 등을 개인적인 입장에서 다양하게 서술한다.
위의 인용문은 허징후가 역사의 의미를 인간의 개별적인 삶과 관련해서 포괄적으로 서술하는 부분이다. 쑨위에와 더불어 허징후는 작품 전체를 통틀어 작가를 대변하는 듯한 인물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에, 위의 말은 허징후의 말이면서 동시에 역사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목소리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허징후의 말대로 역사는 매우 추상적이지만, 작가는 추상적인 역사를 지극히 구체적인 ‘인간’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허징후는 문화혁명 당시 우파로 몰려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다. 그후로 그는 호적이 없는 ‘어둠 속의 인간’(55쪽)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식용유와 식량배급은커녕 통상적인 사회생활도 할 수 없어서 전국을 떠돌며 살 수밖에 없었다. 긴 유랑의 시절을 통해 허징후는 역사와 인간에 대해 좀더 거시적인 통찰을 얻게 되었다. 역사의 발전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실천을 수반하는 적극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20대의 씨왕에게 마흔이 넘은 허징후는 위의 인용문에서 ‘기다림’을 말하고 있다. 수천 수만 명의 개인이 각자 자신의 역사를 걸어갈 때에, 한 민족의 역사와 한 시대의 역사가 만들어지며 비로소 움직이는 것이므로 역사의 발전은 그런 기다림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역사 인식은 허징후의 것이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에게 역사는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작가는 어느 한 인물의 역사 인식을 옹호하지도 않고, 어느 인물의 역사 인식의 옳고 그름을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각자의 상황에서 얻어낸 개인적인 역사인식과 교훈을 따듯한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쑨위에의 딸 한한에게 역사는 이혼한 후에 엄마가 찢어버린 가족 사진과 같다. 아버지는 찢어진 사진 속의 얼굴로만 기억될 뿐이고, 부모님의 이혼은 자신의 책임이 아님에도 그 짐은 자신에게도 남겨졌기 때문이다. 한한에게 역사는 본 적도 없고 사귀어 본 일도 없는데 갑자기 자신의 어깨에 무거운 짐부터 지우는, 불공평한 존재이다.
쑨위에에게 역사는 자신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어떤 힘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있어서 역사는 과거가 될 수 없어. 역사와 현실이 하나의 배를 공유하고 있어서 어느 누구도 떼어낼 수가 없어. 그리고 그 배는 나의 미래까지도 삼켜 버리고 있는 거야.”(40쪽) 당이 추구하는 사상을 따라 충실하게 살아왔지만, 역사는 옳고 그름에 따라 인간들에게 공평한 보상을 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권력을 쥐고 있으며 작은 잘못 때문에 글을 쓸 자유조차 박탈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당에 대한 충성과 사회주의 사상의 실천 여부와 상관없이 과거의 연애사가 끊임없이 그를 곤란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쉬허엉종이 역사를 설명할 때는 “‘뒤엎고’ ‘뒤엎혀진다’는 단 두 마디가 전부다.”(68쪽) 과거에는 그가 다른 사람을 뒤엎어 자리를 빼앗았고, 현재는 자신이 다른 사람한테 뒤엎혀져 수입도 변변치 못한 채로 글을 쓸 기회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역사의 책임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가 설령 역사에 대해 책임을 진다 하더라도 역사는 자신을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에게 역사는 오직 이긴 자만을 위한 것이다.
만약 다이허우잉이 역사에 대한 단 하나의 의미만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사람아 아, 사람아』의 감동은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별 인물들이 생각하는 역사의 의미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역사와 인간에 대한 좀더 풍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2012년 한국 사회에서 나는 ‘역사’와 어떤 관계인가, 나에게 ‘역사’는 어떤 의미인가. 자오젼후안처럼 역사는 언제나 밤의 어둠을 틈타 습격해오는 만만치 않은 상대(25쪽)인가, 리이닝처럼 역사는 폐품처럼 끈으로 묶어서 구석에 내던져 버리면 그만인 것(206쪽)인가, 씨리우처럼 틀림없이 행복한 만년을 보장해줄 줄 알았는데 불초자식을 들이미는(101쪽) 불공평한 것인가.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바쁜 생활 속에서 역사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존재일 뿐인가.
* “‘인간’이라는 요소가 제1이라고.”
내가 이런 뒷바라지나 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 하지만 그의 부인이 내 동급생이었고 임종 때는 내게 아이를 부탁한다고 했거든. 그런 말을 듣고 모른 척할 수 있겠어? 게다가 나 역시 몇 년 동안 정치 문제로 따돌림을 당해왔었잖아. 친척들도 친구들도 찾아오지 않고 아는 사람을 만나도 상대해주지 않았었어. 정말로 괴로웠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어. 그래 가지고는 적과 분명한 선을 그을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닝, 너는 철학을 하고 있지? 가르쳐 줘.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떤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는 거지? 우리들은 과오를 범한 동지와는 꼭 선을 긋고 자기의 혁명성을 나타내야만 하는 거야? 우리들은 전체 인류를 해방하려 한 게 아니었어?
다이허우잉은 문화혁명이라는 큰 사건이 개별 인물들에게, 그리고 그 인물들이 맺고 있었던 인간관계(가정, 학교, 직장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주고, 동일한 역사적 사건이 개별 인물들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고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놓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이다. 역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도, 역사를 바르게 움직여 나가는 것도 “‘인간’이라는 요소가 제1이라고.”(443쪽) 강조한다.
당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며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인류의 해방을 꿈꾸었던 쑨위에를 갈등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우선순위 때문이다. 쑨위에는, 지도부로부터 글을 발표할 자유를 박탈당하고 요주의(要注意) 인물이 되어 다들 기피하는 쉬허엉종을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쑨위에는 쉬허엉종과 그의 죽은 아내에 대한 인간적인 의리와 애정으로 그들의 어린 아들의 신발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쉬허엉종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아들에게 새 신발을 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은 C시 대학 학부의 총지부 서기인 쑨위에의 정치적 입장을 생각해서 그들과 관계를 끊으라는 리이닝의 염려에 쑨위에가 답하는 말이다. 정치적인 혁명성과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그만 잘못이라도 있는 이들과는 인간적인 어떤 관계도 냉혹하게 끊어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까지 하면서 당의 사상과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쑨위에는 묻고 있다. 당의 노선과 입장도 중요하지만 쑨위에에게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인간이라는 존재자체의 귀함도 의미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허징후가 출간하려는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이라는 책은 쑨위에의 이런 갈등에 대한 이론적인 답을 작가가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은 계급투쟁을 통한 혁명을 강조하고 있지만 “두 위인의 마음속에는 ‘인간’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씌어”(129쪽) 있으며 혁명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향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작품 속에서 당위원회 서기인 씨리우가 이 책의 출간을 막았던 것처럼, 이런 작가의 사상과 내용이 『사람아 아, 사람아』를 한때나마 중국에서 금서로 만들었을 것이다. 사회주의 사상보다도, 마르크스주의 철학보다도 다이허우잉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 그리고 ‘인간다움’이다.
씨리우의 아들 씨왕이 시종일관 아버지를 비판하는 것도 당위원회 서기로서 아버지가 말하는 정책은 그저 조문(條文)일 뿐 인간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을 상대로 하는 것”(109쪽)이어야 한다는 씨왕의 말에서도 ‘인간’이 제1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은 강조된다. 이처럼 『사람아 아, 사람아』가 ‘인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의 감동은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며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문화혁명 이후에 사상적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도 희망적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