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서커스
천운영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천운영이 드디어 장편을 썼다. 단편과 장편이 단지 분량상의 차이만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듯 단편과 장편이 위계를 가진 장르 구분도 아니건만, 사람들은 천운영이 장편을 썼다는 데에 과하게 반응을 하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설렘과 흥분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바늘』, 『명랑』을 통해 그의 단편을 읽어온 독자라면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문학동네》에서 연재를 시작했을 때, 난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작가가 연재를 끝내고 나면 나도 그때 작가와 같은 긴 호흡으로 그의 소설을 읽어 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한 탓인지, 『잘 가라, 서커스』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전의 단편들에서처럼, 이 소설도 사전조사와 취재를 꼼꼼하게 한 것은 분명하다. 정말 ‘발로 쓰는 소설’이라는 말을 들을 만하다. 그래서 기발한 소재주의가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허나 그 때문에 여자 작가들의 소설에 인색한 평론가들조차 천운영의 소설에 대해서만큼은 너그러웠는지도 모른다. 팔자 좋은 여자들의 이혼, 불륜타령에서 벗어나, 추하고 못생긴 여자들의 기괴한 욕망을 드러내는 그의 소설은 한국문단의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동시에, 그의 소설에 여성주의나 정신분석적 해석을 가함으로써 ‘무서운 신예’가 등장했다고 상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쁜 여자들 대신 늙고 못생긴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해서 그것이 페미니즘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소재의 신선함이 소설 자체의 새로움을 담보해주는 것도 아님은 분명하다. 게다가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기괴한 주인공들의 욕망이 결국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잘 가라, 서커스』는 천운영의 새로운 도약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천운영의 최대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특이한 소재와 적확한 묘사는 이 소설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두 권의 단편 모음집을 거치면서 아슬아슬하게 숨겨온 작가의 한계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만든다. 이 소설에는 한국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옌지’에서 온 조선족 여인 림해화와 중국을 오가며 밀수품을 들여오는 보따리상들, 따이공이 등장한다. 덕분에 림해화가 쓰는 낯선 조선어들과 밀수품상들이 배를 타고 오가는 생활 모습들, 조선족 거리의 모습 등을 접할 수 있다. 림해화를 형과 결혼시킴으로써 어린 시절 목소리를 잃고 평생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형에 대한 의무를 벗어버리고자 하는 윤호가 이 소설의 또다른 축이다. 작가는 림해화와 윤호의 1인칭 서술을 교차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차 서술은 소설 구성에 입체감을 더하는 데 실패하고 작가의 목소리가 복화술처럼 울려퍼지게 함으로써 각 인물들의 진짜 목소리를 빼앗아 버린다. 윤호의 서술에서도, 림해화의 서술에서도, 윤호의 얼굴을 한, 림해화의 언어를 쓰는 천운영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인물들의 심경변화와 행동에 공감하기가 힘들어진다. 때문에 림해화가 한국으로 시집을 오고 난 후부터 이야기는 지루기해지 시작한다. 윤호가 갑자기 배를 타기로 결심하고 림해화가 홀연 집을 나가게 되기까지의 내용에도 ‘그럴듯함’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스토리를 엮어서 앞으로 끌고 나가는 힘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단편에서보다 장편에서 훨씬 긴요한 이런 능력이 천운영에게는 아직 모자라는 듯하다.




한 가지 더, 천운영이 보여주었으면 하는데 아직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볼 수 있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다. 날 것 그대로의, 육식성의 감각을 동원해서 여자들의 몸을 드러내는 일을 천운영만큼 열심히 한 작가도 없을 것이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들의 ‘뜨거운 내면’을 보여주는 일은 미약하다. 낯선 땅인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결국은 집을 나가게 된 림해화가 느꼈을 법한 불안과 공포, 단속반의 눈을 피해 지하도에서 중국 약을 파는 여자의 심경, 림해화의 시동생 윤호를 만나는 영옥의 감정은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나지 않으며 쉽게 공감하게 되지 않는다.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인물들에 생기를 불어넣는 대신에 그 인물들의 가면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지하도에서 중국 약을 파는 과묵한 여인이, ‘생식력까지 통제당하는 국가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더 이상 작가의 허점을 눈감아 줄 수가 없었다. 개별 인물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대부분 관념적이다. 천운영은 자신의 인물들에게는 생생한 몸을 주었지만, 아직 그들의 생생한 감정과 목소리를 주지는 않았다. 그의 단편들이 새롭게 느껴지면서도 뭔가 아쉽다고 느껴야만 했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운영의 다음 소설을 기다린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신예’, ‘한국 소설의 중요한 자산’, ‘한국 소설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 ‘총체성의 신화에 가려진 사물이나 삶의 생생한 구체성을 여지없이 길어’올린다 등의 화려한 수식에 그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미덕을 소설로 형상화하면서, 부족한 이야기의 힘을 보충하면서, 자신의 인물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나친 칭찬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작가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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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york 2008-05-2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에 공감합니다.
저는 소설을 읽는 내내 자꾸 이 책에 관한 평론가의 글들이 떠오르더군요..
주목받는 작가인 것은 맞지만..
읽는 내내 어두움. 침울함... 그 자체만 느꼈습니다..
소설 전체가 너무 어두침침하고 축축했습니다..
저는 별 두개 반을 주고 싶네요..

니리 2008-05-2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래요...;; 근데 새로 나온 소설은 어떨지 또 궁금해지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