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 정신분석을 통해 본 이슬람, 전쟁, 테러 그리고 여성
오은경 지음 / 시대의창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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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민족을 넘어 가장 약한 자의 눈으로 폭력을 넘어 생명으로

오은경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시대의창, 2015.

 

이슬람이라는 낯설고 이질적인 문명은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강타당한 9.11이라는 사건’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의 관심사 안으로 들어왔다. ‘9.11 테러라고 명명된 사건 이전에 우리 사회는 솔직히 이슬람 문명에 관심이 없었다. ‘이슬람하면 일단테러라는 단어부터 떠올리는현재 우리의 오해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이슬람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저자가 서문에서 서로에 대한 인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우리의 정체성은 타자의 인정recognition이나 불인정non-recognition 혹은 타자의 오인mis-recognition에 의해 만들어지는데불인정이나 오인은 타자를 왜곡하고 축소시켜 억압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그러므로 저자는 타자에 대한 정당한 인정은 예의가 아니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필수요소라고 강조한다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든 문화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슬람 문화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전제가 필수적이다지금까지 우리는 서구와 비서구를 나누고기독교와 이슬람 문명혹은 서구 문명 대 이슬람 문명억압하는 남성과 피해자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이슬람을 이해해왔다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런 오해를 바로잡으려 한다저자는 성찰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지금의 전쟁과 폭력을 만들어냈다고 보고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바른 이해로 바꿔내고자 한다.

이슬람대상이 아니라 관계망 속으로

이슬람은 중세까지 세계사를 주도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지금도 이슬람 문화권의 유적지들은 정치적종교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수많은 여행객들을 매혹시키고 있다그러나 근대화와 과학기술 발전에서 뒤처지면서 이슬람은 서구의 경제대국들과 힘의 불균형이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서구 문명의 혜택을 받고자 고향땅을 떠났던 이슬람 이주민들은 서구 사회의 타자가 되어 냉대와 소외를 겪었다소외와 차별 속에서 이슬람 이주민들이 기댈 수 있었던 것은이슬람의 종교와 문화가 부흥하기를 희망하면서이슬람의 전통을 더욱 지키고자 하는 것이었다저자는 이슬람 문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재의 갈등을이처럼 오래된 힘의 불균형과 뒤틀림에서 찾는다전쟁과 테러라는 문제는 이슬람이라는 문명 자체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주변 국가들과의 권력 관계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이 책 전체를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서구 대 이슬람이라는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허구라는 점이다우리가 편의상 이슬람이라고 통칭하고 있을 뿐 이슬람은 하나가 아니다미국이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의 독재정권을 지원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대로다더구나 이슬람이 하나로 뭉쳐 다시금 세계사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서구 사회를 표적으로 해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표적은 이슬람 사회를 침식하는 자본주의그리고 부패한 아랍의 전통주의 체제이지 결코 서구 사회 자체가 아니라고 강조한다즉 진보적인 서구 문명과 보수적 전통을 주장하는 이슬람 문명’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명 간의 충돌이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 문명 내의 충돌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슬람이 하나의 대상이 아니고이슬람 문명과 서구문명이라는 단순한 대립구도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면우리에게 필요한 올바른 관점은 무엇일까저자는 슬라보예 지젝의 말을 빌어 연대를 말한다우리는 이슬람 문화권의 극단적인 테러와 전쟁에도 반대해야 하지만서구의 패권주의적인 태도에도 반대해야 한다테러에 맞서야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테러리즘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확장해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패권적인 행위 역시 테러에 포함시켜야 한다우리는 모든 형태의 테러에 반대하며모든 희생자들과 연대해야 한다.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라는 대립 구도가 아니라저자는 우리와 그들이라는 새로운 구도로 사유할 것을 주장한다. ‘우리는 모든 테러에 반대하고 모든 희생자들과 연대하는 이들이다반면에 그들은 테러와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서구의 패권주의적 권력자들과 극단적인 이슬람 세력을 가리킨다. ‘이슬람을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새로운 관계망 안에서 이해하는 것여기에서 이 책의 논의는 시작된다.

 

정신분석을 통해 보는 이슬람과 여성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부제는 정신분석을 통해 본 이슬람전쟁테러 그리고 여성이다저자는 이슬람 여성들의 베일 착용과 여성 할례명예 살인 등 예민한 사안들의 의미를 정신분석적인 방식으로 읽어낸다이 책에서 정신분석에 기댄 분석 방식은 매우 유용하다흔히 억압의 상징으로 읽히는 베일 착용이나 여성 할례를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의 의미명예살인 속에 감춰진 남성들의 불안 등 복잡한 의미망을 드러내는 데에 정신분석은 매우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베일 착용을 예로 들어 보자베일은 원래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풍습이었다고 한다당시 사람들은 남녀노소계급에 상관없이 자발적으로실용적인 이유로 베일을 썼다문제는 국가가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하고 가부장제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베일이 여성의 의무가 되면서 점차 제도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또한 베일 착용이 이슬람 전통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면서 여성들의 베일 착용은 서구에 저항하는 민족적인 차원의 의미까지 띠게 되었다.

여성이 민족의 상징으로 작동하는 방식은사실 이슬람 문화권에서뿐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도 유사하다민족의 상징으로서의 여성은 가부장적 혈통을 유지시켜주는탈성화된 어머니와 등치된다이들 여성은 민족의 순수성과 순결성의 상징이 되어 반드시 지키고 보호해야할 존재가 된다마찬가지로 이슬람에서 베일을 쓴 여성은 민족의 순수성을 상징하는 알레고리이다베일이란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구분해주는 표식이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베일을 쓴 여성이란 이슬람 남성들이 만들어낸 민족의 완전성에 대한 환상이고이슬람 남성들이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은 여성이라는 실체적 존재라기보다 자신들의 환상이다.

민족의 순수성과 완전성이란 세계 어느 민족에게나 환상일 뿐이다정신분석은 완전성전체성순수성 등은 주체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와 고통을 적당히 회피하고 살 수 있도록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라고 말한다환상을 가로지를 수 있어야 주체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주체와 환상의 문제는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해당되는개인이나 집단적 주체의 실존의 기본 요건인 셈이다.

베일이 민족으로 대표되는 남성주체의 환상일 뿐이라면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베일을 착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실제로1980년대 이슬람의 페미니스트들은 서구 문명을 모방하고 추종하는 데에 대한 저항 담론으로 베일착용 운동을 벌였다서구의 인권 개념서구 여성주의 운동의 방향이 이슬람 사회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비판적으로 논의하면서이슬람 페미니스트들은 서구 담론에 저항하고자 전통적인 이슬람 여성의 정체성을 베일 착용에서 찾았다저자는 이를 두고,이슬람 페미니즘이 제3세계 여성을 이해하는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틀로서 유용한 장점이 있음에도이슬람 전통이라는 한계를 벗어나는 데는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 볼 때이들의 실패는 단지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베일을 쓴 여성들이 이슬람 전통의 희생자인 것만도 아니다베일을 착용함으로써여성들은 이슬람 사회의 질서 안에서 가능한 협상을 해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앞서 지적한 대로베일이 남성들이 믿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전통의 순수성과 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베일을 착용하는 여성들은 환상의 구도 속에서 또 다른 권력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베일을 씀으로써 여성들은 남성들이 숭상하는 민족의 순수성과 완전성이라는 가치 자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차별과 엄격한 사회적 제약이라는 현실 안에서 여성들은 베일을 씀으로써 얻어낼 수 있는 나름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기존의 질서와 협상함으로써 미약하나마 권력을 확보하는 셈이다그러므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베일을 쓰는 것은이슬람이라는 성차별적인 질서 안에서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하려는 몸짓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분석을 통해 베일 착용이 정치적인 올바름을 획득한다거나 베일 착용에 내포된 여성 억압적인 의미가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베일 착용의 복합적인 의미를 밝힘으로써베일을 착용하는 여성들을 전적으로 무기력하고 수동적이며 희생적인 존재로 위치시키지 않을 수 있다대신 베일을 쓴 여성들의 주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읽어낼 수 있는 것이 가능해진다그래야 베일을 쓴 여성들을 주체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논의의 출발이 이렇게 합의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반복되어온상투적이고 일반적인 논의이슬람의 베일 문화와 베일을 착용하는 여성들을 대상화시키는 기존의 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베일을 쓴 여성들을 수동적인 희생자로 타자화/대상화시키는 것은 그들을 나와는 관계없는 존재로 배제시키기 쉽다.우리 역시 보편적으로 민족과 국가남성과 역사가부장제전쟁과 테러섹슈얼리티 등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이런 보편적인 상황들이 특수한 형태로 드러난 것이 이슬람 여성의 베일 착용 문제일 뿐이다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런 복합적인 의미망을 읽어내야만저자가 나비효과라는 말로 서문을 열면서 연대와 관계망을 언급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저자는 자발성의 의미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간다베일 착용뿐 아니라 여성 할례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분명히 자발적으로’ 이를 수용하는 측면이 있다그러나 어디까지를 자발적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저자는 말한다베일을 착용하고 할례를 받아야만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여성들의 베일 착용이나 할례는 어디까지나 암묵적인 강요일 뿐이라고.

모든 주체는 사회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비로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그렇게 되기 위해서 주체는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포기해야만 한다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적절히 회피하고 포기해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거나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사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정신적 이상이나 분열의 상태로 남든가정신분석학자 지젝은 이를 가리켜 강요된 선택’, ‘나쁘거나 더 나쁘거나의 선택이라고 표현했다.

이슬람 여성들의 자발적인 베일 착용과 할례도 어디까지나 나쁘거나 더 나쁘거나의 강요된 선택에 불과할 수 있다그러나 이슬람 여성들의 자발적인 베일 착용과 할례는 스스로 주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사회질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협상하려는 주체적인 결단이라고 봐야 옳다. ‘나쁘거나 더 나쁘거나’ 선택지가 둘뿐이라고 해도 말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이런 강요된 선택이 이슬람 여성들에게만 주어진 한계가 아니라 남성중심적인 문화와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공통된 조건이라는 점이다그러므로 이슬람 여성들의 베일 착용과 할례의 문제를 근거로 해서서구 사회가 더 진보적이고 문명화되었으며 이슬람 문화권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와 민족을 넘어 가장 약한 자의 시선으로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터키와 유라시아 투르크 전문가로 불리는 저자가터키의 문학작품들과 정신분석을 통해 이슬람과 여성의 문제를 진단하는 책이다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를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을 읽어내야 한다저자는 정신분석과 함께 여성주의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논의하고 있다.

이슬람의 극단주의 무장 세력이 테러를 자행하고 서방의 국가들은 또 다른 테러로 이에 반응하면서 전쟁의 위협과 공포는 이 땅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이슬람 국가들이 서구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내세우고 있는 민족과 전통에 대한 집착은 여성들을 억압하고전쟁과 테러라는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이슬람 공동체의 이상향이라는 환상을 악용하고 있는 IS(이슬람 국가)의 폭력, ‘이슬람과 서구라는 허구적 대립 구도 등은 국가민족남성적 논리로는 해결할 수 없다왜냐하면 이것들은 국가민족남성적 논리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여성주의적인 관점이다국가민족종교권력의 관점이 아니라 이런 상황이 여성들에게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통찰과 사유의 방향을 전환해야만 해법을 찾을 수 있다생명과 평화는 국가와 민족의 눈이 아니라 사회의 가장 약한 자의 눈으로 볼 때 가능성이 열린다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여성의 눈으로폭력을 넘어 생명으로 나아가는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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