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은 이야기다
마이클 고힌 &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지음, 윤종석 옮김 / IVP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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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은 이야기다의 원제는 ‘Living at the Crossroads’이다.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문화 이야기의 교차로에 있다는 의미이다. 저자들은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충돌하는 상황을 선교적 대면’(275)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각자가 속해있는 문화의 비판적 참여자가 되어야”(279)한다고 역설한다.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일은 우리 자신의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문화적 형태를 띠어야”(273)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세계관의 회심’(25)을 요청한다. 세상의 모든 경험이 세계관을 통해 걸러진다는 사실에 각별히 유의하지 않으면 누구나 자신이 세상을 독립적이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보고 있다고 단정하기 쉽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런 오해를 우리 시대의 문화가 종교적으로 중립적이라는 신화’(282)라고 단언한다. 무슨 일에나, 중립이나 객관적인 태도가 올바르다는 착각은 과학기술로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근대적 믿음이나,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영향일 뿐이다. 성경적인 관점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단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세계관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적인 설계와 회복의 계획을 방해하려는 어둠의 세력에 무의식적으로기울게 된다

 

 

성경은 모든 것의 기준이 되며 그 범위가 포괄적이다.”(74) 저자들은 역사적으로 어떤 세계관들이 서구 사회의 중심이 되었는지를 성경의 관점으로 다시 기술하면서 이를 증명한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시대를 복음의 빛이 없는 상태에서 발전되었다는 점에서 이교 시대로 지칭하고, 중세는 포괄적인 세계관이 타협하여 섞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혼합시대라 표현한다. 현대는 중세 이후의 인본주의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의 대척관계가 심화된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대립 시대라 부른다. 이처럼 저자들은, 서구의 철학적 흐름을 성경의 관점에서 다시 정의하고, 소위 학문이라는 영역이 꽤나 객관적이고 중립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오해임을 밝혀준다. 말 그대로 세계관의 회심을 가능하게 한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삶의 영역에서 성경적 세계관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구체적인 적용의 원리를 설명한다. 사업, 정치, 스포츠와 경쟁, 창의력과 예술, 교육, 학문 등의 영역에서 복음은 언제나 문화적 형태를 띠어야 한다”(180)는 사실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안내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 학자들은 서구의 학문 전통을 잘 알아야 하지만 자신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것과 대립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 학자가 정립하는 이론에 성경적 세계관이 중심이 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우상숭배의 문화이야기가 그 공백을 메울 것이기 때문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어떤 글을 읽고 어떤 글을 쓰든지, 그 중심에는 항상 성경적 소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모와 전복을 가르는 경계는 너무 얇으며, 공모할 수 없으면 전복할 수도 없다는 여성학자 엘리자베스 그로츠의 말이 생각난다. 가부장적 질서에 저항하는 여성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이제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가리키는 말로도 읽힌다

 

 

이 책의 저자들이 자꾸 우리의 삶은 교차로에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내가 속한 세상의 모든 영역에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설계와 구조가 반드시 있고, 그것을 왜곡시키고 모호하게 만드는 세력도 있다. 그 둘 사이의 분명한 차이를 예민하게 구분할 수 있는 감수성이 교차로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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