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 로꼬꼬, 고전주의, 낭만주의,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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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1권이 선사시대의 동굴벽화에서부터 시작해서, 하우저가 현대의 예술이라 부르는 영화가 등장하는 4권에서야 끝을 맺는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예술의 역사 전체를 하우저는 사회학적 관점으로 풀어냈다. 1권과 2권을 통해서, 하우저의 사회학적 분석은 사회 양식과 예술 양식 사이의 일대일 대응을 통해 둘 사이의 유사한 점을 단순하게 유추해내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술사조의 흐름이란 직선적인 시간관에 따라 순차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하우저의 이런 관점은 3권과 4권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사회 안에 이미 잠재되어 있던 변화의 요인이 외부적 상황이라 불리는 조건에 의해 발현되면서 문학과 예술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물론 외부적인 상황이나 조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문학과 예술 장르의 변화는 일방적인 조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3권의 예술사는 로꼬꼬와 계몽주의, 낭만주의 시기를 거쳐, 4권에서는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시기를 지나 영화의 시대라고 불리는 현대에까지 이어진다. 3, 4권에서는 우리가 흔히 근대라고 지칭하는 시기의 문학과 예술에 대하여 논의하는 부분이라 좀더 친근한 작가와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시민계급의 등장 - 독자층의 형성, 실용음악의 시작, 미술애호가의 등장

 

영국에서의 문화적 평준화 과정은 새로운 독자층의 형성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바, 이 독자층이란 정기적으로 책을 읽고 사며 그럼으로써 일정 수의 작가들이 개인적 은덕에 힘입지 않고 생계를 꾸려나가도록 보장해준 비교적 광범한 계층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독자층의 성립은 무엇보다도 부유한 시민계급의 등장과 결부된 것으로서, 이들은 귀족계급의 문화적 특권을 깨부수고 문학에 대해 활기차고 점증하는 관심을 표명했다. 이 새로운 문화의 담당자들 가운데 예술의 보호자로 나서기에 충분할 만큼 야심적이고 돈 많은 개인들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작가의 생계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책의 매출을 보장하기에는 충분할 만큼 숫자가 많았다. (364)

 

18세기를 전후로 등장한 시민계급은 문화적 측면에서 여러 변화를 가져왔다.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문학 작품의 광범위한 독자층이 형성되었고, 공적인 의례와 무관한 감상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음악이 등장했으며, 미술애호가라 불릴 수 있는 감상자 층이 만들어졌다. 이전 세기에 예술가들은 귀족이나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했다. 그러나 이제 예술가들은 귀족이나 왕실에 비하면 경제력이 낮지만 시민계급이라 불리는 독자층이 형성됨으로써 후원자 없이도 작품활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17세기 말에만 해도 책을 읽는 것은 그렇게 널리 보급된 소일거리가 아니었지만 18세기 중엽이 되면서 독자들의 수는 눈에 띄게 늘어났고 점점 더 많은 책들이 간행되었고 18세기 초에는 이미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잡지들이 생겨났다. 신문이나 잡지, 출판사를 기반으로 문학 시장이 형성되었던 것과 같이 이 시기에는 음악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18세기의 거의 모든 음악은 귀족이나 궁중의 연회, 예배 등 공식적인 행사에 필요한 실용음악이었다. 따라서 일반 시민들은 교회예배나 무도회 같은 데서가 아니면 음악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고 귀족이나 궁정을 위한 악단의 연주회에 참석하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었다. 18세기 중엽이 되자, 문학에서 독자층이 형성된 것처럼 음악에서는 시민계급의 독자적인 음악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사적인 형태로 음악협회같은 것이 만들어졌다가 공개적인 연주회로 발전되기에 이르렀다. 공식적인 행사에 필요한 음악이 아니라 음악을 음악으로 즐기기 위한 순수한 연주음악은 18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생겨나게 되었다.

시민계급의 독자적인 음악생활이 시작되면서 작곡가들은 이전에 공식적인 행사를 위해 작곡하던 때보다 더욱 까다롭고 조심스럽게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행사에서 연주되던 음악은 1회 연주로 그쳤지만 시민들이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음악은 여러 번 반복되어 연주되고 오래 남는 음악이기 때문이었다. “주문에 의한 객관적인 작곡에서 개인적, 자기 고백적 음악으로의 최종적인 전환은 모차르트와 베토벤 사이에서”(3108) 일어났다고 하니, 지금처럼 여가와 정서를 위한 음악의 탄생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다.

마찬가지의 변화가 미술 쪽에서도 일어났다. 이전의 귀족들처럼 굳이 그림을 주문하거나 소장할 목적 없이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미술감상자층18세기에 와서 형성되었다. 문학시장에서 독자층의 형성이 일으킨 변화처럼, 미술 감상자층이 생겨나면서 미술출판물, 미술잡지, 미술복제품도 급증했다. 그림을 전시하는 쌀롱을 방문하는 것이 당시의 유행이 되기도 했다니, 미술애호가의 층이 두텁게 형성되었던 듯하다.

 

* 영화, 현대 예술의 대표적인 장르

 

새로운 시간 개념의 기본 요소는 동시성이며 그 본질은 시간적 요소의 공간화인데, 이러한 시간 개념은 제일 나이 어린 예술이요 베르그쏭의 철학과 거의 같은 시기에 탄생한 장르인 영화예술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표현되었다. 영화의 수법과 새로운 시간 개념의 특징은 너무나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어서 현대 예술의 시간 범주가 영화의 정신에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지며, 현대 예술에서 영화가 비록 질적으로 가장 풍부한 장르는 못되더라도 스타일 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장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4301)

 

하우저는 마치 영화라는 현대적 장르의 탄생을 이전의 예술 장르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긴 예술사를 기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를 염두에 둔 비유나 설명을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회화적 표현 특성을 설명하면서 뜨라야누스 개선주(凱旋柱)를 나선형으로 감고 올라간 부조의 그림이 마치 두루마리그림책을 연상시키는 데 이것이 당시에 영화의 대용품 역할을 했다고 언급한다(1155).

또 중세에 미술품의 집단적 제작 방식에 대해 언급하면서 영화작업과의 유사성을 설명하고(1328), 중세말기 부르즈와 시기에 겐트(Gent)의 제단에 그려진 순례 행렬의 그림은 감상자가 지나가면서 보게 되어있는데 마치 그림 속 행렬의 장면들이 감상자의 옆을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영화적 표현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1346). 16세기 매너리즘 시기의 특징인 꿈과 같은 세계의 표현은 현대의 초현실주의뿐 아니라 영화가 보여주는 자유자재한 공간처리를 상기시키며(2144),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의 민중극장의 관객들과 현대 영화 관객들의 유사성을 지적하기도 한다(2216).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4영화의 시대라는 장()에서 드러나는데, 위의 인용문은 영화의 여러 특징들 중 동시성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하우저는 두 가지 사건을 동시에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영화형식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 중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하우저는 카메라의 이동을 통해 같은 시간 안에 벌어지는 서로 다른 시점과 공간의 사건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한 영화의 수법이 영화 이외의 예술 장르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하우저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씨즈를 영화기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로 설명한다. 율리씨즈더불린이라는 대도시를 그리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그 도시의 구조를 작품의 구조로 채택하기까지했으며,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성거리고 걸어다니고 언제 어디서든 마음대로 멈춰서기도 하는 거리와 광장들의 얽힌 조직을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4309)고 설명한다. 이런 수법이 영화적 성격을 띠는 것은 영화를 제작할 때 시간 순서에 상관없이 여러 장면을 한꺼번에 촬영하듯이, 조이스도 이 소설의 각 장()을 순서대로 쓰지 않고 여러 장을 한꺼번에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간의 동시성이라는 특성을 하우저는 영화뿐 아니라 현대예술의 모든 장르와 경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회화에서 심리적 상태의 동시성’, 즉 복잡한 심리 상태를 동시에 드러내는 것은 현대 미술의 여러 경향에 공통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딸리아의 미래파에서 샤갈의 표현주의, 삐까쏘의 입체주의에서 지오르지오 데 끼리코(Giorgio de Chirico)와 쌀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움직임에 일관되어 있다.”(4309)

 

* ‘세계문학의 개념, 하우저의 예술사를 비판적으로 읽기

괴테는 말년에 가서 문학에 대한 종래의 순개인적이고 초국가적인 예술관에 가까워져갔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세계문학이라는 명칭과 부분적으로 그 개념까지도 그에게서 처음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세계문학적 상황은 사람들이 미처 의식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계몽주의 문학, 볼떼르와 디드로, 로크와 엘베씨우스, 루쏘와 리처드슨의 작품들도 엄격한 의미에서는 이미 세계문학이었다. 18세기 전반 이래 일종의 유럽적 대화가 진행중이었고, 유럽의 모든 문화민족들이 비록 대부분 수동적이긴 했지만 이 대화에 참여하였다. 당시의 문학은 전유럽적 문학이었고, 또 중세 이후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했던 서구 정신공동체의 표현이었다. (3168)

 

하우저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네 권을 통해서 보여준 예술사적 통찰은 이후의 어떤 연구에도 뒤지지 않는 놀라운 것으로 서구 예술사를 논할 때면 이 책은 제일 먼저 언급된다. 그러나 하우저가 보여주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철저하게 서구 유럽 중심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하우저는 괴테가 표현한 대로 세계문학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세계문학이란, 유럽 개별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유럽 전체의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문학유산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의 문학과 예술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하우저의 성과가 가치를 잃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하우저가 서술하고 있는 예술사의 범위와 대상이 어디까지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비판적인 독자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하우저가 비교적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언급하는 작가나 작품들과,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가는 작가와 작품들은 하우저의 사회학적 관점에서 취사선택된 것임도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단적인 예로, 로빈슨 크루소걸리버 여행기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정치적 선전이며 거의 선전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369)라고 평가하는 것이나 돈 끼호테를 아동들에게 널린 알려진 잔인한 고전(371)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서양문학사에서와는 좀 다른 평가이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관점에 거리를 둘 수 있는 비판적 읽기는 언제든 성숙한 책읽기의 기본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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