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녀 혁명 - 아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메들린 케인 지음, 이한중 옮김 / 북키앙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무자녀 여성,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이 한줄을 읽고 망설임 없이 주문하기를 클릭했다. 내가 엄마가 되지 않기로 한 것은, 어떤 결정적인 계기나 충격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갖게 된 생각이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인 것처럼, 내가 매우 별난 인간 취급을 받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아이 없이 살겠다는 내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겠다는 생각을 말못할 상처나 어릴 적의 어떤 충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간주하고 뭔가 알아내겠다는 듯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다.

둘째, 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 아이 낳기를 네가 뭐나 된다고 선택 운운할 수 있느냐는 식의 감출 수 없는 분노를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셋째, 어떻게 해서든 나를 설득해서 생각을 돌리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발휘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하는 얘기는 대개 이렇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늙어서 외롭다, 부부 사이가 소원해진다 등.

이 책은 무자녀 여성에 대한 이런 오해와 편견들이 얼마나 엉뚱한 것인지를 차근차근 이야기해 준다.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가 무자녀 여성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딸의 엄마로서 엄마가 된 기쁨이란 누가 대신 설명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기적이지도 않고, 일중독자도 아니며 아이 없음을 결핍으로 느끼지도 않는 자신의 친구들이 받게 되는 부당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고 싶어서 연구를 결심했다고 한다.

저자는 무자녀 여성들을, 나처럼 의도적인 선택에 의한 무자녀 여성(childless by choice),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무자녀가 된 여성(childless by chance), 상황에 의해 자연스럽게 무자녀가 된 여성(childless by happenstance)으로 나눈다. 최근의 통계 자료와 개별 인터뷰 사례를 바탕으로 해서, 저자는 우리 사회에 무자녀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여성들의 증가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왜 우리 사회에 무자녀 여성들에 대한 터무니없는 편견과 오해가 만연되어 있는지 등을 조목조목 짚어 나간다.

이 책은 자녀 없는 삶과 자녀를 두고 있는 삶, 어느 한쪽의 입장을 두둔하는 책이 아니다. 출산이야말로 선택이며, 어떤 성찰과 이유, 상황에서 나온 선택이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성은 곧 모성이라는 등식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의사와 어머니들은 환자와 딸들에게 그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완벽한 리스트를 제공해야 한다. 임신을 막는 법, 연령대별 가임률에 대한 통계, 낙태 허용을 막는 법, 먹는 낙태약과 응급 피임약을 구하는 법, 입양 절차, 그리고 무자녀의 이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면 젊은 여성들은 주어진 정보에 입각하여 자기들 삶에 가장 알맞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70쪽)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주위에는 무자녀 여성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유명 인사나, 연예인들이 아니더라도 아는 친구나 선후배들, 친척들만 헤아려보더라도 선택에 의해서든 어쩔 수 없는 이유에 의해서든,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의해서든 무자녀로 지내는 여성들이 많다. 이 책의 저자가 제시하는 98년 통계에는 미국 여성의 42.2%가 무자녀 여성이라고 하고, 우리나라에서 2002년에 나온 2001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성이 일인당 1.3명의 자녀를 출산한다고 되어 있다.

이쯤 되고 보면, 아직도 모든 여성들을 어머니로 간주하는 일이나, 자녀가 없는 여성들을 향한 어처구니 없는 오해와 편견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이런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결혼한 사람들, 자녀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조세 제도, 주거 문제, 의료보장제도, 직장에서의 역차별 등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딸도 엄마로서 느낄 수 있는 무한한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지만, 만약 딸이 무자녀의 삶을 택한다면, 그리고 무자녀가 딸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선택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무자녀의 삶을 선택한다면 오늘날의 무자녀 여성들처럼 세상의 편견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책을 끝맺는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에게 왜 아이를 낳았는지 묻지 않는 것처럼 무자녀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왜 아이를 낳지 않았는지 묻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과 준비를 하고, 아이 양육을 하는 부모들은 정부로부터 정책적, 제도적인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고,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이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차별 받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더 분별 있는 출산에 착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려깊게 양육하고 양심적으로 무자녀가 되는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몇 년 동안 어버이됨을 즐겼던 부부들은 자녀 수가 적정 자녀수 2.5명을 넘기면서 자신을 변호해야 했다. 반대로 아이 없는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비웃음을 받았다. 아이를 원하는 부모는 더 낳도록 하고, 원치 않는 어른은 낳지 않도록 두는 사회는 얼마나 건강한 사회일까!" (192∼19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