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 시로 읽는 삶의 풍경들
이은정.한수영 지음 / 교양인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공감』의 부제는 ‘시로 읽는 삶의 풍경들’이다. 머리말에서 저자들은 ‘멀어져가는 시를 불러들여 시와 가슴을 맞대고 공감하는 시간을 나누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시 전공자들인 저자들은 시를 한 편씩 소개하면서 그 속에 담긴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태어나 처음 만나게 되는 <집과 가족>에 관한 시들, 우리들의 생과 영원히 뗄 수 없는 존재인 <엄마 혹은 어머니>에 관한 시들, 설렘과 아픔을 동시에 간직한 <청춘과 성장>의 시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사랑과 결별>의 시들, 개인과 밀접하게 연결된 <일상과 역사>에 관한 시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라면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병과 죽음>에 관한 시들.

많은 사람들은 시를 막연히 어렵게만 느낀다. 그러나 저자들의 말처럼 사람들은 ‘마음이 꽉 메이거나 사랑에 빠지면 불현듯 시가 읽고 싶어지고 시 비슷한 글을 끄적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이유를 저자들은 삶과 시의 관계를 들어 이렇게 설명한다.


"이렇게 복잡하고 분주한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이 쓸모없는 시를 열렬히 쓰고 있고, 또 누군가는 어려운 시를 열심히 읽고 있다. 그것은 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삶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삶의 어느 순간 홍수처럼 범람해오는 자신의 감정을 돌이켜 보고, 이기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고 싶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자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는 않다. 세계를 둘러보는 일은 더욱 어렵다. 시는 이런 순간 나와 세상을 이어주고 나를 나의 내면으로 이끄는 길이 되어준다. 물론 시가 고통을 치유하지는 않는다. 시는 결코 약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을 더 깊게 하고 슬픔을 더 깊게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곳에 시의 힘이 있다. "



다들 어렵다고 여기는 시를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려는 저자들의 시도는 ‘시의 힘’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는 고통을 더 고통스럽게 느끼게 하고 슬픔을 더 슬프게 느끼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는 나와 세상을 이어주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만들어 고통과 아픔의 순간에도 사람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시의 힘’이라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머리말에서 말한 대로, 저자들이 시를 읽고 설명해주는 방식은 사람들이 시 한편한편을 통해 시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시의 구절들에 담긴 개별적인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읽은 후의 인상이나 느낌이 자연스럽게 확장되도록 해준다. 시에서 묘사하고 있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그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지, 또는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 봄으로써 시의 상황을 보편적인 우리 모두의 삶의 한 단면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저자들은 유하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Ⅰ>을 소개하면서 ‘청소년기의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시는 7,80년대에 도시 주변에서 자란 아이들의 하위문화 중 하나였던 불법 복제 해적판을 소재로 하고 있다. 불법 복제한 해적판LP를 찾아 세운상가를 어슬렁거리는  일은 7,80년대만의 고유한 풍경이지만 저자들은 여기서 ‘승냥이 울음으로 법석이는 아이의 어두운 내면 자체’를 읽어낸다.  

흠집 많은 중고 제품들의 거리에서
한없이 위안 받았네 나 이미, 그때
돌이킬 수 없이 목이 쉰 야외 전축이었기에
올리비아 하세와 진추하, 그 여름의 킬러 또는 별빛
포르노의 여왕 세카, 그리고 비틀즈 해적판을 찾아서
비틀거리며 그 등록 거부한 세상을 찾아서
내 가슴엔 온통 해적들만이 들끓었네
해적들의 애꾸눈이 내게 보이지 않는 길의 노래를 가르쳐주었네.
(유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Ⅰ> 중에서)


이 시에서 말하는 해적이란 당시에 암암리에 거래되던 불법 복제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들의 지적처럼, ‘정상의 세계에 속할 수 없는 비주류로 떠돌면서, 안온한 세계를 부수려한다’는 점에서는 해적과 해적판은 닮아있다. 그리고 어른들이 정해놓은 길과 질서에서 벗어나고 싶은 청춘의 반항 역시 ‘해골 깃발을 내걸고 푸른 바다로 나아가’는 '멋진 해적들’의 이미지와 닮아있다.

저자들은 ‘십대의 터널을 지나오는 것은 개인적인 체험이면서도 철저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체험’이라고 표현한다. 즉 십대의 반항이나 방황은 매우 개인적인 것 같지만, 실은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언제나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것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그래서 모든 불온한 것들에 매혹당하기 쉬우며, 진짜 해적이 되어보려고도 하지만 결국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가짜 해적 노릇이나 하다가 어른으로 성장하게 마련이다. 그런 성장과 상실을 저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성장은 상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첫사랑, 순수함, 상처받지 않은 영혼과 육체를 떠나보내야 비로소 성장의 긴 터널을 지날 수 있었다. 마음의 지하상가에는 어른이 되기 위해 볼모로 남겨진 구멍 난 영혼과 흠집 가득한 기억의 육체들이 남아있다. "


『공감』의 저자들은 시를 통해 우리네 삶의 풍경들을 읽어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었다고 말하지만, 이 책은 결과적으로 시가 왜, 어떻게, 얼마나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시를 읽어야 하는, 혹은 사람들이 시의 매혹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예를 들어 3장 <청춘과 성장>에서는 서정주의 <자화상>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자화상>에서 ‘시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라는 부분을 인용하면서 시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핏빛 고통에서 맑고 고귀한 시의 이슬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시의 이슬에 언제나 핏방울이 섞여 있다는 말은 특별한 감동을 준다. 시를 아름답고 고귀한 것으로 치장하여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운명이나 현실을 그냥 훌쩍 초월해 버리는 것이 시라면, 시는 애초에 사람의 몫이 아닐 것이다. 시는 질척거리는 삶을 힘껏 껴안고, 때로는 그것에 눈물겹게 길항하면서 현실의 속됨을 경계한다. 시의 맑은 이슬에 핏방울이 섞여 있기에, 스물 세 살의 청년은 운명의 버거움에 맞서 핍진한 노래를 부른다. "


즉, 시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가장 순수하고 고귀한 어떤 것이거나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천상의 감정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시에는 언제나 인간들의 고통과 슬픔에서 떨어져나온 핏방울이 섞여있다면, 시는 우리의 삶 자체일 수 있다.
또 1장 <집과 가족>에서는 유하의 <달의 몰락>을 소개하면서 ‘시의 쓸모 없음’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난 편입의 안락과 즐거움 대신
일탈의 고독을 택했다 난 집 밖으로 나간다
난 집이라는 굴레가, 모든 예절의 진지함이,
그들이 원하는 사람 노릇이, 버겁다
난 그런 나의 쓸모 없음을 사랑한다
그 쓸모 없음에 대한 사랑이 나를 시 쓰게 한다
그러므로 난,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호의보다는
날 전혀 읽어내지 못하는 냉랭한 매혹에게 운명을 걸었다
(유하, <달의 몰락> 중에서)


이 시에서 시인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시를 쓰고자 하는 욕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탈의 욕망’은 특히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가족들이 보기에 시인은 ‘폐인’이자 ‘비정상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그런 ‘쓸모 없음’을 사랑하며 그 ‘쓸모 없음’이 시를 쓰게 한다고 고백한다.

시인에게는 ‘쓸모 없음’이 쓸모를 만들어 시를 쓰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고(故) 김현 교수도 어느 글에서 문학의 쓸모 없음이야말로 문학의 의미이며 기능이라고 했다. 그 쓸모 없음으로 해서 문학은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무언가를 강제로 뺏어올 수도 없다는 것이다. 

『공감』을 천천히 읽다보면, 저자들이 추천해서 들려주는 시를 읽는 것 외에도, 사람들이 왜 끊임없이 돈도 밥 한 그릇도 되지 않는 시를 열심히 쓰고 읽는지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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