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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나라, 켈름 -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이작 싱어의 유쾌한 고전 동화
아이작 B. 싱어 지음, 강미경 옮김, 유리 슐레비츠 그림 / 두레아이들 / 2009년 7월
평점 :
어처구니가 없는 바보들, 악마들, 도깨비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쓴 동화 작가 아이작 B. 싱어와
칼데곳 수상 작가의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이 있는 책, [바보들의 나라, 켈름]은 작가와 그린이의 이름을 보는 순간 '아, 읽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책이었다.
켈름에는 최초의 통치자 황소 그로남과 5명의 현자 얼뜨기 레키슈, 얼간이 자인벨, 바보 트라이텔, 빙충이 센더, 멍청이 슈멘드릭이 다스리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현자라는 사람들의 이름 앞에 '얼간이', '멍청이', '빙충이' 이런 말이 붙어있지 않은가? 이름앞에 붙여진 이런 단어들의 뜻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주민들이 처한 '위기 상황(먹을 빵이 부족하고 헐벗고 있으며 감기로 고생하고 있다)'을 구하기 위해 이들이 내 놓은 것은 고작 '위기'라는 단어를 없애기, 단식의 날 정하기 등이다. 과연 이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릴 현자라 할 수 있는것인가? 대충 짐작하셨듯이 이 책에 나타난 '현자'라는 말은 '바보'라는 말과 상충한다. 아이작 싱어는 이들 현자들의 이름과 바보같은 생각들을 통해 어리석은 지도자의 모습과 권력을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현자중의 현자, 바보 중의 바보 그로남이 선택한 켈름의 위기 극복방법은 바로 '전쟁'. 이들이 선택한 나라는 켈름 보다 더 가난한 이웃나라. 전쟁을 하는 이유는 그나라가 켈름을 바보라고 부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보중의 바보 지도자는 그로남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쟁에서 당연하게(?) 패배한 그로남의 정권에 반란하여 뒤를 이은 지도자 '부넴 포크라카', 돈을 폐지하여 시민들에게 혼란을 가져온 '부넴 포크라카', 그리고 시민들의 반란을 동원하여 정권을 잡은 '도둑 파이텔'. 켈름의 지도자는 모두 바보 중의 바보였다.
전쟁에서 진 켈름의 주민들은 오직 '일(노동)'만이 그들을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열심히 일에 매달린다. 가난하고 황폐했던 켈름이 안에서 팔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생산하게 되자 그들은 또 켈름의 바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에 상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대립이 나타나고 항의와 시위가 이어지면서 새로운 위기가 나타난다. 이에 이들은 일년 내내 날밤을 새우며 상정된 문제를 해결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매일 날밤을 새우지만 위원들 사이에서는 주먹다짐, 인신 공격, 잉크 병 투척이 계속 이어졌다. 이를 보다 못한 그로남의 부인 옌테 페사는 '여성당'을 창당하여 남자들에게 집안일을 맡기고 정치에 뛰어든다.
켈름의 지도자와 주민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니 이들은 어찌보면 우리들의 선조들이 걸어온 길 같기도 하고,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지도자, 그리고 실제적인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엉뚱한 생각들과 인신 공격, 주먹다짐으로 당장 눈앞에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인들. 이들의 모습을 모두 켈름에서 볼 수 있었다. 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남은 '우리는 세상을 정복하길 바라지 않는다'고 연설하며 '미래는 밝다'라고 이야기 한다.
지도자, 정치, 돈, 전쟁.. 이런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재미있게 풍자적으로 표현한 책은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작 싱어의 책은 가볍게 넘어가면서도 많은 생각꺼리를 남겨주었다. 또한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켈름과 그의 지도자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와 지도자들, 국회의원들의 모습과 비교해 볼 수도 있었다. 거기다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은 이야기의 풍자를 너무나 적절하게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책을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