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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식당 - 먹고 마시고 여행할 너를 위해
박정석 지음 / 시공사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여행을 좋아한다고 해도 마음 내키는대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여행기를 읽으면 타인의 눈과 귀를 빌려서나마
간접경험을 통해 아쉬운대로 아쉬움을 요기할 수 있고 장차의 계획에 참고할 사항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기에 가끔씩 여행기를
보곤 한다. 역사나 문화쪽에 대한 관심이 더 커서인지 동남아는 내 여행계획에서 후순위로 밀려있지만 여전히 유효한,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호기심이 이 책을 읽어보게 했다.
가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여행기를 만날 때가 있다.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거나 헛된 환상을 조장하는 것들. 솔직히 요즘 여행의
대부분은 여행보다는 관광에 가깝다. 비행기를 타고 고작 몇 시간만 가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도착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것도 대부분은 익숙한 것들이다. 요즘 웬만한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에선 와이파이가 콸콸 쏟아진다. 과거 목숨을 걸고 산과 강을
넘던 나그네의 길과 오늘날의 여행은 비교 자체가 안 된다. 나는 이런 발전이 좋다. 굳이 고행을 하겠다면 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선택지는
넓어진 것이니까. 그런데, 단기간에 경험의 폭을 넓히는 데는 여행만큼 편리한 수단이 없다는 것도 일정 정도는 사실이지만 여행의 경험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모습은 사실 상업적인 목적이 더 크지 않나 한다.
세계 최고의 IT 기술을 지닌 인도를 영성의 성지로 만드는 게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광고하는 것과 별반 다른 점이 있을까?
이 책의 첫 장은 그런 맥락에서 아쉬웠다. 딱 여행지에서 정줄 놔버리고 헤헤거리는 여자를 떠오르게 하는 정신나간 문장이 정말 거슬렸다.
그래도 한 번 잡은 책은 끝까지 봐야하는 성질머리가 있어서 끝까지 읽었다. 끝까지 본 결과를 보고하자면, 보통 첫인상이 안 좋으면
뒤집기 힘들다는데, 책을 덮을 즈음엔 그래도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내용 자체는 꽤 알차게 들어있었다.
강한 첫인상을 남기려다 힘이 너무 들어갔었던 거라고 생각해본다.
제목에서 그 냄새가 풍겨오듯 이 책은 식생활, 먹는 것에 초점을 맞춘 여행에세이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음식이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거의 멸시하는 나지만 식의 중요성만은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고 입으로 들어간
영양분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면 더이상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니까. 리뷰를 쓰며 다시 보니 고작(!) 4개국 얘기인데 이 정도
분량이 나오다니, 그것도 읽는 동안 양이 상당히 많다고 느꼈는데도 그렇다니 좀 놀라웠다. 점잔 빼며 동남아 4개국의 식생활에 대한
고찰을 적은 기록물은 아니지만 그만큼 내용이 풍부하고 깊이가 있다는 뜻이리라.
마냥 먹는 얘기만 하는 책이라면 내 입맛에 맞지 않았을 텐데 그 먹거리가 일상과 잇닿은, 그 사람들의 삶 자체에 가까운 것이어서인지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대부분 레스토랑이 아닌 노점에서(가끔씩은 최고급 레스토랑에도 들르는데 과하지 않다)
이뤄지고 음식을 만든 사람과 직접 대화하며 만들어진다. 막상 토종 한국인은 잘 알지도 못하는 비싼 한식 집에서 쓸데없이 비싼 비빔밥
비벼먹는 것보다 길거리 포차에서 군것질 한 번 하는 게 더 한국적인 맛을 느껴보는 길이라고 믿는 나에게는 이런 정보가 더 의미있다.
저자의 범상치 않은 글솜씨와 버무려진 음식 이야기, 그리고 음식 얘기가 나오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세상 이야기 등이 괜찮은
마리아쥬를 이룬다. 무작정 편한 것만 찾지 않고 발품 팔고 땀흘려 파고든 얘기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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