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지금 이 시점에 이 곳에 이 나이로 서 있자니 가끔은 막막하고

지치기도 한다. 21세기 초입의 한국에서 청춘으로 산다는 것은 

잔잔하지 않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저 멀리 육지는 보이는데, 그 곳에만 가면 모든 게 다 잘될 것만 

같은데...뭐가 있을 지도 알 수 없는 발 밑으로 빠져버릴까 두려운데

어떤 놈은 쾌속보트(때로는 요트나 호화유람선도 있다) 타고 

콧노래 부르면서 옆을 스쳐지나가고,

파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이따금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를

떠밀어 잠깐 정신줄 놓은 사이 나를 먼 바다로 밀어낸다.  

맨몸으로 상어떼에게 포위당한 어떤 이의,

열심히 자맥질해도 심연으로 가라앉을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그를 

도울 여력은 없다. 슬픔은 사치일 지도 모른다. 사치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치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씨앗, 사회적 보트피플이다.

 발만 동동 구를 뿐 함부로 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미아다.


책을 읽기 전에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청춘은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이해할 수 없다.

이 시대의 청춘조차도 스스로 이해하기는 굉장히 힘이 든다.

(이것은 현 기성세대를 탓하는 말이 아니다. 현재의 청춘이 특별하다는 말도 아니다.

어느 시대의 어느 누구든 그 자신조차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뭐? 탄탄히 자기 뿌리를 내린 고목이 이런 책을 써?

처음에는 알량한 명성을 팔아서 고양이 쥐 생각하듯 생색 좀 내고

머리 빈 추종자나 좀 만들어내려는 수작인 줄 알았다.

 처음 시계 드립이 나올 때까지도 별로 긍정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나의 인생 시계가 오전 7시 12분이라는 얘기에는 약간 혹했었지만,

조금더 생각을 해보니 인간이 시계처럼 단순한 존재는 아니니까...


 그런데 읽다보니 '모두가 매화가 되려한다'는 구절이 맘에 와 닿았다.

학점이네, 공인외국어점수네, 자격증이네, 스펙이네, 스터디네, 인턴이네... 

그저 남들도 하니까, 안 하면 불안해서 , 빨리빨리 앞서나가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네

삶을 정확하게 집어낸 한 구절이 아닌가.

 소년등과의 불행함과 신인상의 가치를 재고해보는 대목에는 상당히 동의했다.

 일찍 급제한 사람치고 끝이 좋은 경우가 드물다... 어찌 보면 발빠르지 못한 자의

자기 위안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막상 그러고 보니 아무 곡절 없는 큰 성공은 보이지 

않는다. 굳이 신인상을 타지 못해도 롱런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게 더 

가치있고 보람차지 않겠냐는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이후 책은 어떻게 청춘을 보내면 좋을까하는 내용을 다룬다. 

입시라는 마취제에 의해 방황과 고민을 유예'당'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알은 스스로 깨면 생명이 되지만 남이 깨면 식재료가 된다는 말이 핵심이다.

 한 가지 방법으로 나오는 여행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여행은 '사회적 임사'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는데 정말 그렇다. 내가 사라진 동안 내 주변의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은 변화를 겪는다. 여행은 떠나는 자만에게 유익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남겨지는 자에게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는 도서관과 같다'라는 말을 인용해 보다 경험 많은 사람과

사귀어보라는 충고는... 솔직히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깝지 않나 싶다.

 한국 사회에서 젊은 사람이 나이든 사람과 허물 없이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을

경우가 얼마나 될까. 물론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에게 그렇게 와닿지는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어른'을 찾기도 힘이 든다. 그동안 그리 많지는 않아도 나름

성공했다는 인물들을 만나볼 때마다 든 느낌의 8할은 실망이었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안에서 불행을 느끼느냐 행복을 느끼느냐이다라는 

대목에서는 마음 속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는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라 단순히 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만족을 느낄 수 없겠지만

단순히 조금만 마음을 바꿈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세상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주객이 전도된 요즘 세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거리가 되었다.

 이런 얘기들이 떠올랐다. 


1.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꿈에 그리던 전원주택을 장만했지만 여전히 바빠 

그 즐거움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잊은 물건을 가지러 출근 후 잠깐 집에 들렀을 때 

그녀가 본 것은 예쁜 정원의 탁자에 앉아 티타임을 즐기던 가정부. 

2. 낚시꾼이 유유자적하는 것을 본 회사원이 그를 힐난했다. 열심히 일해야지

왜 그렇게 사냐고. 낚시꾼이 그래야 하는 이유를 묻자 회사원은 대답한다.

그래야 돈을 많이 벌고, 돈이 많아야 여유있게 낚시도 다니고 인생을 즐길 수 있지

않냐고.


 왜 행복이 아닌 돈 혹은 명예가 인생의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모든 가치를 

획일화된 기준으로 환산하려고만 하는 걸까. 


 책의 마지막에서는 이러한 비유가 나온다. 

우선 입석칸일지라도 열차에 올라타라. 그리고 1등석으로 조금씩 옮겨가면 된다.

그것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열차의 1등석에 올라타는 것보다는 훨씬 쉬울 것이다... 

핵심을 찌르는 비유라고는 못하겠다. 인생이 겨우 기차 하나 타는 것과는 다른 것이니.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비해서는 조금이나마 진보하게 될 테니 웅크리고 

있는 자에게는 귀중한 충고가 되리라. 어떤 이는 겨우 입석에 만족해 종착역까지 

그리 좋지 않은 한 자리에 머무르게 될 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내용이 모두 귀중하고 옳기만 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이 악어의 눈물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밝히고 싶지 않을 

개인사까지 여과없이 담아낸 이 책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길을 확실하게 제시해주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길을 물었을 때 답해주려 애쓰는

친절한 길도우미 같은 책이다. 젊음이 버겁고 지칠 때 잠시 짬을 내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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