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들은 아이를 손으로 기르는 줄 안다. 그러나 아이는 손으로 기르는 것이 아니다. 손이 무슨 재주가 있어서 아이를 기르겠는가?
어머니는 아이를 마음으로 기른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음은 따뜻해야 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나름대로의 멋이 있어야 하고 먹고 또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이 있어야 한다.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는 아름다워야 하지만 겉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겉모습도 아름답고 속모습도 아름답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다. 금상첨화격(錦上添花格)이 될 것이니까...
그러나 겉모습과 속 모습 중 어느 것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속 모습을 택하게 될 것이다.
겉모습이야 어떻게 생겼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아이를 상대하는 어머니가 어머니의 마음으로 아이를 상대하고 어머니를 대하는 아이 역시 어머니의 겉모습과 거래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어머니의 속마음과 거래를 할 뿐이기에 어머니의 속 모습인 마음만 아름다우면 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속 모습이 아름다울 때 아이의 마음이 아름답고 어머니의 마음이 깨끗할 때 아이의 모습이 깨끗해진다. 아이는 오직 어머니의 속 모습인 마음만을 얻어먹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정신을 아름답게 살찌게 하려면 어머니는 아름답고 맛있는 마음을 조건 없이 먹여 주는 아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번 어머니는 영원한 어머니다. 한번 어머니는 영원한 어머니라는 천륜(天倫)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머니와 아이간의 인연이 천륜이라는 뜻은 영원히 남이 될 수 없다는 끈질긴 인연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뜻을 새기는 사람이 별로 없다. 다만 막연하게 그러한 것이 있는가 하고 느끼며 살뿐이다.
어머니는 함께 살아도 어머니요, 떨어져 살아도 어머니요, 헤어져 살아도 어머니요, 이 세상을 떠나고 없어도 어머니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없다고 하더라도 그 어머니와 함께 살던 자녀의 마음속에는 자기를 길러 준 어머니에 대한 수많은 느낌들이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으로혹은 괴로운 기억으로 영원히 가슴속에 살아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느낌이자녀의 마음 특히 무의식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다른 마음속에서 자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명령하고 비난하고 저지하면서, 혹은 믿어 주고 인정해 주고 애정을 공급해 주는 일을 계속하는 어머니로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아이였던 사람이 그의 세상을 다 살고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어머니는 그 자녀의 마음속에서 함께 산다.
그래서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없어도 어머니가 길러 준 자녀들의 마음속에 그들이 그들의 세상을 다 살고 떠날 때까지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 남아 계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자리는 이렇게 막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해서 어머니의 자리에 앉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자리는 존귀하고 위대하고 거창한 것이다.
한번 어머니는 영원한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이어야 한다.어머니가 좋은 어머니였을 때 그 어머니의 마음과 더불어 성장하는 아이의 마음이 잘 자랄 수 밖에 달리 자랄 수 있는 그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모든 어머니는 당신의 자녀가 아름답기를 바란다. 그리고 당신이 낳은 당신의 자녀라 할지라도 어머니는 아름다운 아이를 좋아하고 당신의 자녀가 아름답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좋은 어머니를 좋아한다. 아름다운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는 아이인 것과 같이, 좋은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는 좋은 세상에서 사는 좋은 아이이다.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든 어머니는 아름다운 아이를 좋아하고 좋은 아이를 좋아한다. 모든 어머니와 모든 아이는 좋은 어머니, 좋은 아이를 좋아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좋아하고 아이가 어머니를 좋아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아마도 이러한 세상을 가리켜 무릉도원 혹은 지상낙원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자기-대상표상(어머니 마음속의 어머니) - 장모는 아이의 미래의 모습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어머니가 살고 계신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살고 계시는 또 한 분의 어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이시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어머니의 어머니인 외할머니가 살고 계신다는 뜻이다. 필자가 이러한 이론을 펼치는 이유는 어머니의 마음속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의 어머니인 외할머니가 어머니의 정서를 관리하는 중요한 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어머니의 정서를 관리하고 계시는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믿어 주시고 인정해 주신다면 어머니의 삶은 편안하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속에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명령하시고 간섭하시고, 비난만 하신다면 어머니의 삶은 결코 편안한 삶이 될 수 없다.
모든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외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어머니의 무의식 속에 각인(刻印)된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외할머니에 대한 이미지가 살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 외할머니를 대상표상이라고 한다. 대상관계이론가들 특히 Kernberg 학파의 이론가들은 어머니의 마음속에 이미지로 살아 계신 외할머니를 대상표상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살아 숨쉬시는 외할머니는 실제로 살아 계시는 외할머니처럼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어머니의 느낌과 행동을 지시하고 감독하신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기억으로서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는 좋은 외할머니일 수도 있고 나쁜 외할머니일 수도 있다. 마음속에 외할머니가 좋은 분이시라면 어머니의 마음은 밝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시다면 어머니의 마음은 어두울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는 중요한 분이시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가 왜 중요한 분이신가?' 묻고 싶은 의아함이 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외할머니는 물리적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고 계시지 않다.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는 언제나 어머니와 함께 살고 계시면서 어머니의 무의식이라고 하는 마음을 통제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중요한 분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는 실제의 외할머니처럼 어머니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지시하신다. 하는 일을 감독하시고 일이 끝나면 그 일의 결과를 비평하시는 일을 하신다. 마치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다스렸던 것과 같은 힘을 발휘하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속에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는 함부로 대해서는 아니 될 중요한 분이시다.
만일 어머니의 마음속에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의 정서(마음)를 잘 관리해 드리지 않으면 외할머니가 마구 화를 내신다. 화를 많이 내시는 외할머니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사시는 어머니는 화를 많이 낸다. 화를 많이 내는 어머니의 일상은 행복하지 못하고 이러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우리들 또한 행복하지 못하다. 그래서 어머니의 무의식 속에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외할머니를 잘 모시는 방법은 무의식 속의 느낌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달래드리고 이해해 드리며 때로는 사정도 해 가면서 어머니 자신의 느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곧 외할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는 것이다. 느낌 속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드려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들어드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철저하게 들어드려야 하고 타협해야 할 것은 철저하게 타협해야 하고 들어드려서는 아니 될 것은 철저하게 들어드리지 않는 것으로서 어머니의 마음속에 느낌으로 살아 계시는 외할머니가 불행하시지 않도록 해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무의식 속의 외할머니가 어머니의 말을 부인하시거나 거절하시지 않으시고 잘 들어주셨을 때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좋은 역할을 하는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좋은 어머니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이다. 이러한 어머니와 함께 자라는 아이들은 행복할 것이고 행복한 아이들은 어머니의 말을 잘 듣고 어머니가 원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어머니가 기르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두려워하고 화를 잘 내며 무기력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 내일 그 어머니는 어머니가 길러 낸 아이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며 허망되고 후회스러운 노후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어머니의 마음속에 분명 어머니의 모든 오늘을 괴롭게 만드시고 두렵게 하시고 짜증스럽게 느끼게 하시는 외할머니가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어머니의 마음이 즐겁고 만족스럽다면 이것 또한 어머니의 마음속에 어머니의 마음을 즐겁고 만족스럽게 만들어 주시는 외할머니가 살고 계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외할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가가 지금 어머니가 기르고 있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 가지게 된 정서는 참으로 중요하다. 어머니의 삶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어머니가 기르는 아이에게 먹여 줄 정서(마음)를 위해서는 더욱 중요하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면 그 어머니가 기르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불행할 것이고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 행복했다면 그 어머니의 아이들 또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정서를 결정해 준 어머니의 어린 시절의 외할머니와의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모든 어머니는 아이들을 잘 기르고 싶다. 그리고 자라나는 어린이들 또한 모두 잘 자라고 싶다. 그러나 혹시라도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마음이 생각하는 것처럼 다정하지 못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머니가 원하는 것처럼 곧고 바르게 자라지 못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무슨 이유가 있다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아이들 때문에 힘이 들어요"라고 대답할 것이고 같은 말을 아이들에게 물으면 "어머니 때문에 힘이 들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어떤 사람이 필자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어머니의 마음속에 살고 계시는 불행한 외할머니의 마음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속에서 느끼는 정서이고 그 정서는 그 정서를 길러 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행복과 불행은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어머니에게서 어머니의 아이들에게로 대를 이어 전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어머니가 느끼는 어머니의 정서는 이렇듯 대를 이어 후손들에게 전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행복한 오늘을 사는 것은 후세의 행복을 위해서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정서가 지니고 있는 이상한 마력은 어머니들에게 행복보다는 불행을 더 많이 느끼면서 살게 하고 아이들에게도 어머니가 느끼는 불행한 정서를 전해 주기를 좋아하는 타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아이들까지도 어머니처럼 어머니 마음속의 불행한 마력을 전수받아 불행한 인생을 살게 한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들이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었을 때 그들이 기르는 아이들 또한 그들의 할머니들께서 가지고 사셨던 불행한 정서를 가지고 불행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한 많은 운명의 주인이 된다.
어머니의 오늘이 불행하다면 어머니의 오늘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내 마음속 깊은 그 어느 곳, 무의식의 어느 구석에 박혀 어머니가 된 나를 괴롭히는 어린시절의 불행했던 나와 어머니와의 관계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어머니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어머니가 기르고 있는 자녀를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어머니가 어머니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 어머니는 바로 불행하게 살겠다는 것을 강하게 원하는 어머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어머니의 불행을 보았을 때 어머니의 불행은 어머니 자신이 만들어낸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가 경험하는 불행은 어머니 이외의 그 어떤 사람도 그 불행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다만 그 불행을 느끼며 사는 어머니 자신이 만들뿐이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행복을 만들어 가져야 할 것이다. 어머니 자신을 위한 행복을 만들어 가져야 할 것이다. 어머니의 행복은 외할머니와의 불행한 관계를 끊고 아이들과의 불행한 관계도 끊고 오직 어머니 자신만의 관계 속에서 어머니를 위한 행복을 만들어 가져야 할 것이다.
외할머니를 위해서 행복을 만들고 아이들을 위해서 행복을 만들려고 한다면 어머니 자신을 위한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행복은 만들기가 싫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어린 시절의 냉정했던 외할머니 때문에 오늘이 불행한 것이 싫고 어머니가 잘못 기른 아이들 때문에 걱정을 해야 하는 어머니 자신이 싫기 때문에 행복을 만드는 것이 싫다. 결과적으로 남을 위한 행복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절실하게 외할머니와 아이들을 위해서 행복을 만들어 주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외할머니가 행복해 지는 것이 싫고 아이가 행복해 지는 것이 싫은 어머니라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어머니 자신이 행복해 지는 것이 싫은 것은 어머니의 어머니가 어머니를 불행하게 길렀기 때문인데 그 어머니를 나무라고 원망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원망하려거든 어머니의 어머니인 외할머니를 원망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어머니의 원망의 대상이 되는 외할머니도 그 외할머니의 어머니에 의해서 그렇게 길러졌는데 그 외할머니를 또 어떻게 원망할 수 있겠는가? 원망하려거든 외할머니의 어머니인 증조외할머니를 원망할 수밖에... 그러나 사실은 그분도 원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거슬러 위로 가다 보면 끝이 없다. 조상 모두를 원망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는가? 이렇게 되면 누가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원망해도 소용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자신을 위해 행복을 만들어 갖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상대가 누구든 남을 위해 행복을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을 위한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 어머니가 만든 행복 속에서 어머니가 행복할 때 외할머니가 행복할 수 있고 아이들 또한 덩달아 행복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자신을 위한 삶이 자신과 가까이 있는 남을 위한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든 어머니는 철저하게 어머니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외할머니와 아이들을 위해서 사는 최선의 삶이 됨은 물론 어머니 대(代)에서 후손으로 이어지는 불행의 밧줄을 끊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혹시 어머니인 내가 잘못 되었거나 아니면 내가 양육한 아이가 잘못 되었다면 그것은 분명 양육과정상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내가 새로운 양육 방법으로 내가 양육하고 있는 자식들을 새롭게 관리한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나에 의해서 만들어진 내 자식들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문제에 해결해 주는 사람이 나 외에 또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상담을 하는 전문가이다. 문제가 있다고 인식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즉시 상담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을 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