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어머니의 역할에 대하여(출처 모신, 가족복지치료연구소)
그저그런 얘기들 2009-07-09 17:02 교보블로그에 실렸던 글
친정어머니는 딸에게 특히 시집간 딸에게 생활의 모델이 된다. 친정어머니가 살림을 잘하며 자식들을 잘 길렀다면 그러한 친정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여 시집을 간 딸 또한 살림을 잘하며 자식들을 잘 기를 것이다. 그러나 친정어머니가 살림을 잘 못살고 자식들을 잘 못길렀다면 그러한 어머니의 딸 또한 살림을 잘 못하고 자식을 잘 못기르는 불행한 어머니로서의 일생을 살게 될 것이다.
어머니가 딸을 낳아 기르면서 딸이였기 때문에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섭섭하게 딸을 길렀다면 그 딸의 성장과정은 섭섭함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다. 섭섭하게 양육을 받았다는 것은 믿음을 받지 못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며 평생을 가지고 살아야 할 성격이 만들어 지는 양육과정을 불행하게 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어머니가 딸을 낳아 기르면서 딸이였기 때문에 섭섭한 마음만을 가지고 딸을 길렀다고 인정하겠는가만은 딸을 낳아 기르는 한국의 어머니들은 대체로 아들을 낳아 기르는 어머니들 보다 무엇인가 모자라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아들보다는 정성을 덜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딸이 자라면서 어머니로부터 간섭과 학대를 받으면서 자란 경험이 있다면 그 딸이 시집을 가서 자식들을 낳아 기를 때 절대로 친정어머니와 같은 양육태도를 가지고 아이들을 기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에 다짐을 했지만 실제로 그 딸이 어머니가 된 다음에 자신의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태도는 그의 친정어머니가 자기에게 보여 주었던 태도와 하나도 다를것 없는 친정어머니의 태도로 자식들을 기른다.
간섭하고 학대하는 것이 자식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어머니들은 자식은 무조건 간섭하고 때리며 기르지 않으면 버릇 없는 자식이 된다는 잘못된 통념을 가지고 자식을 기른다. 이러한 통념 때문에 자기가 자랄 때 간섭하고 학대하는 친정어머니를 얼마나 싫어했던가를 잊어버리고 어머니처럼 자식들을 기르다가 불현듯 자기의 모습에서 자기를 길러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떠한 방식으로 딸을 길렀든 딸이 자라서 시집을 갈 때까지 어머니는 남모르는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어머니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고통스럽게 보낸 인고의 세월은 보상받을 길이 없는 세월이다. 시집을 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잘 살아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어머니의 소망은 그 딸을 기르면서 보낸 인고의 세월과 겹쳐 착찹하기 이를데 없다.
모든 사람이 원하고 모든 사람이 꼭 해야 하는 결혼이지만 결혼은 결혼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행복을 기약하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나는 딸의 뒷 모습이 측은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딸을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이 측은한 것은 딸을 향한 연민의 정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더 이상 딸을 소유하고 딸을 간섭하는 생활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어머니 자신의 입장이 측은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느낌일 수도 있다.
딸을 기르면서 간섭하지 않고 학대하지 않으며 행복하게 세월을 보낸 어머니는 시집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행복하게 살아주기를 바라는 염원을 하지 않는다. 다만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행복하게 살기를 믿을 수 밖에 없도록 잘자란 딸은 시집을 가서 행복하게 사는것 이외의 그 어떠한 방법도 모른다. 그렇기때문에 그 딸은 행복한 삶을 살수 밖에 없다.
딸이 시집을 가면 출가 외인 취급을 받아온지가 오래 되었다. 경제적으로 살기가 어려웠던 시기의 단면을 표출하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져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지고 인간관계를 계속 유지하는데에도 여유가 생겨 출가 외인을 논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격세지감이 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요즘의 친정 어머니들은 시집을 간 딸이나 시집을 가지 않은 딸이나 별다른 차이없이 대하는것 같다.
친정어머니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순수하게 딸을 위한 것에만 국한된다면 그 딸을 위하는 위함이 딸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만 딸을 위한다는 것을 빙자해서 어머니의 정신적인 병리현상이 표출되어 상호간의 밀착관계를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는 딸을 위하는 친정어머니의 태도가 오히려 딸을 해롭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옛날 같지 않게 친정어머니들이 나이와는 상관없이 젊고 활동적이기 때문에 딸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어머니가 딸을 돕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딸을 도울 수 있고 그 도움은 비교적 양질의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도움은 딸의 생활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일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성격이 매달리는 성격이고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오래 만나지 않으면 버림을 받을 것같은 상상적인 유기불안 때문에 딸과의 밀착관계를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해서 딸을 돕는 일에 지나칠정도로 정력을 소비한다든지 자진해서 돕겠다고 강요한다면 이는 딸의 심리에 병리적인 씨앗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 올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도움은 차라리 주지 않는 것이 딸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
친정어머니가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딸의 삶을 걱정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딸의 삶을 걱정하면 걱정하는대로 딸의 삶이 걱정스럽게 될 것이기 때문에 딸의 삶을 걱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진정으로 딸을 사랑하는 친정어머니라면 딸을 믿고 인정하는 것으로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딸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조건없는 도움을 주는 것이다. 딸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주지 않거나 도움을 주는 것을 아까워하며 출가외인 운운하는 친정어머니가 있다면 그러한 어머니는 어머니라고 할 수 없다. 딸이 원하는 도움을 조건없이 준다는 것은 아무리 딸을 사랑하는 친정어머니라 할지라도 어머니다운 마음을 갖지 않은 친정어머니라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꺽어 너의 곁에 두려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서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