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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나라
강준만 / 개마고원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란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뜻한다. 이는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말하며 특권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고 고귀한 신분일수록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서구 사회에서는 지도층의 자제가 군대에 들어가게 되면 무조건 최전방으로 보낸다. 이를 '지도층'으로서 그 사회에 져야 하는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군대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다 잡았던 대통령 자리가 날아가 버리는 우리나라, 'IMF 경제위기' 속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기는커녕 더욱 더 커져가는 부를 누리기에 정신없었던 우리나라에선,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아직은 멀고 먼 이야기이다.
왜 우리에게는 지도층은 있는데 지도층 문화가 없는 것일까? 그 문제의 핵심은 서울대에 있고, 강준만 교수는 이 문제를 이 책을 통해 잘 지적하고 있다. 엘리트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항상 사회는 창조적 소수에 의해 이끌어지고 발전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엘리트로서의 특권만 누릴 뿐 엘리트가 가져야 할 책임은 방기하는 엘리트, 배타적인 학맥과 학연의 형성을 통해 형성된 머리만 있는 엘리트, 입신출세만 추구하는 엘리트로 가득차 있다. 또한 개발독재시대에는 획일화된 엘리트가 국가를 이끌고 나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이것이 더 효율적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획일화된 인재보다 다양한 능력과 개성을 지닌 인재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간 국제경쟁에서 획일 문화로 잘 버텨왔다. 지금까지 우리의 경쟁력은 창조적인 두뇌에 의존했다기보다는 팔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에 더 의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다양성을 혐오하는 문화로는 대처할 수 없는 새로운 글로벌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가지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의 핵심에 서있는 서울대가 변해야 한다. “서울대 망국론”이나 “서울대 폐교론”이나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