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 올라온 글이다.
http://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1221132213
베터니 휴즈라는 저자의 <아테네의 변명>(원제: The Hemlock Cup - Socrates, Athens, and the Search for the Good Life )이라는 제목의 책에 대한 서평인데...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그냥 몇 마디 적어본다.
서평자가 옮긴 책의 내용으로 보자면, 이 책은 "번역판 제목에서 시사하듯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아 '독배'를 마셔야 했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룬 책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차용한 것이지만 그것만 다룬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전부터 아테네 역사를 살피면서 그의 사형 배경과 민주주의의 의미 등 묵직한 주제를 흥미롭게 다뤘다."
서평자에 따를 때, 이 BBC 다큐멘터리 제작을 지휘한 역사학자가 저술한 책은 역사 이상의 생생함을 전달하기도 한다. 기원전 399년 5월 소크라테스가 헴록 혹은 독미나리에서 뽑은 독액을 마시기 위해 감옥을 나설 때 보았을 아테네의 풍경, 세세하게 묘사된 매우 공정한 아테네의 배심원 뽑기 과정, 소크라테스의 고발인들의 기소장에 들어있던 불경죄라는 심각한 범죄로 인해 500인이나 되는 배심원들이 나서야 했던 정황 등이 묘사된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재판 과정에서 배심원들을 상대로 보였던 오만한 태도라던가, 애제자 알키비아데스의 시켈리아 원정 실패 및 스파르타에 대한 투항, 당시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한 아테네는 여기저기서 사람들에게 끈덕지게 질문을 해대는 등애 같은 인물이 아니라 영웅을 필요로 했다는 정황 등, 소크라테스에게는 전혀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다는 이야기나, 특히 데몬(daimon)이라는 자기 내부의 목소리에 대한 발언 역시 다신교 사회였던 아테네에서는 넘길 수 없는 범죄로 비춰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론은 "아테네 군중은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들이 고상한 말로 군중의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군중이, 법정이, 전능한 민주주의가 누군가를 제거하고 싶다면 진실이 그들 편이든 아니든, 그들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서평자는 이 결론에 민주정체 혹은 민주주의라는 것의 한계에 대한 성찰을 결부시키고 있다.
그런데 어딘가 석연치 않다. 책의 원제에 달린 부제, '소크라테스, 아테네, 그리고 좋은 삶에 대한 탐색'이라는 문구는 왠지 아테네가 소크라테스를 죽일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하고는 뭔가 거리가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책에 대한 서평 기사를 찾아봤다. 몇 가지 읽어 본 결과 뉴욕 타임즈에 실린 서평 기사가 가장 책 내용을 충실하게 정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http://www.nytimes.com/2011/02/20/books/review/Isaacson-t.html?pagewanted=all
사실 내용 정리만 보자면 별 차이가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딘가 방향이 다르다. 뉴욕 타임즈의 서평은 프레시안 기사를 쓴 서평자의 논조와는 달리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둘러싼 정황에 대한 이야기들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 저자 본인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는 책 자체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가 <변명>의 마지막에서 했던 말의 번역에 대한 지적 등.
그래서 더 책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서평자의 의도가 그런 것이었다면 나름 성공을 거둔 셈이 될지도 모르겠다), 왠지 이 프레시안에 실린 서평은 출판사가 잡은 제목 <아테네의 변명>이라는 문구에 붙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 본인은 정작 소크라테스의 삶 자체 - 플라톤이 그려낸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소위 역사적 소크라테스, 역사적 예수 논쟁에서 말하는 같은 의미에서 - 를 그리고 싶었을 뿐인데(특히 그의 죽음을 중심에 두고), 왠지 프레시안 서평자의 글의 결론이 글자 그대로 <아테네의 변명>, 즉 소크라테스를 죽인 이유에 대한 아테네의 변명처럼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도 민주주의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이라는 그런 방식의 해석 말이다.
책을 전문적으로 읽는 사람 마저 이렇게 당할 수 있다면...(물론 그게 의도한 바였을 수도 있다.) 이거야 말로 심각한 번역 오류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물론 책을 다 읽어 보기 전에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책 제목 하나 이상하게 잡아 놓은 것 때문에 저자의 의도가 완전히 이상한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면 말이다. 물론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는 자유다. 하지만 책의 기획 과정에서 어떤 의도되었던 의도되지 않았던 오류가 있었고, 그로 인한 묵과할 수 없는 오독이 있다면... 글쎄 이것도 그냥 취향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