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의 역사 - 마음과 심장의 문화사
올레 회스타 지음, 안기순 옮김 / 도솔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하트의 역사라는 제목을 대하며 이 책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마치 어떤 미지의 세계를 여는 것과 같이 새로운 책을 열때면 언제나 그러듯이 말이다. 마음과 심장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무엇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지는 않을까. 책 속에서 아마도 어떤 비교문화사다시 말해 각 문화의 심장에 대한 이해를그리고 시간을 거쳐 내려오는 심장에 대한 이미지와 그에 대해 생각을 살펴볼 기회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를 들자면, 처음에 '하트'라는 말을 보고 하트의 단순화된 이미지를 떠올리리게 된다. 우리가 흔히 트럼프라고 부르는 서양의 카드에 속한 스페이드클럽다이아몬드하트의 모양들 중의 하나로서의 하트 말이다. 그로부터 이어지는 상상. 하트의 모양이 카드에 그려진 하트 모양을 하게 된 이유나 역사, 어쩌면 그런 약간은 가볍다고도 할만한 미시사적 의미에서의 접근을 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사뭇 기대와는 다르게 이 책에는 그런 도식화된 하트의 이미지에 관한 설명은 없었다물론 전혀 시시콜콜한 미시사와도 관련이 없었다음, 괜한 헛다리를 짚지 않았나약간은 머쓱해지기는 하지만, 여하튼 아직까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간다.

 

사실 약간의 의학 혹은 생물학적 지식만 가지고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몸 전체가특히 뇌가심장에 의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과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뇌는 많은 산소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곳이고, 이것은 다시 말해 뇌가 얼마나 많은 양의 혈액 공급을 요구하는가를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심장 역시 인간의 뇌를, 다른 몸의 부분들을 유지하기에 적정한 양의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뇌로부터 전기 신호를 받아야만 하며, 그런 의미에서라도 뇌와 심장은 생존을 위해서는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관계에 있다.

 

현대인에게는 생각과 같이 인간의 이성을 구성하는 요소나, 혹은 열정동정심자비사랑과 같은 마음과 관련한 요소들 역시, 인간의 뇌와 결정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상식적인 사실이지만, 현재와 같은 의학 및 생물학의 발전이 없었던 오래 전에 지나간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심장이 오히려 인간의 이성과 감성의 근원이 된다고 생각했다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인간의 육체에서 뇌라는 부분이 매우 썩기 쉬운 부분인 이유로 어떤 상징성을 지니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을 것이며, 인간의 중심에 있는 장기들 중에서도 가슴의 한가운데 있는 심장은 일종의 상징으로서 인간성의 중심으로 인식되었던 것은 아닌가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저자의 말대로 머리는 사실일 뿐이지만 심장은 사실인 동시에 이미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현재와 같은 방식의 심장 혹은 마음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해부학적 혹은 생리학적 지식은 서양의 근대와 근세를 지나면서 발전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아주 고대에는 또는 중세에는 그리고 다른 문명과 우리가 살고 있는 동양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이해했던 것일까?

 

저자는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 서사시에서이집트의 미이라 제조법과 신화들에서그리고 히브리인들의 구약성서에서 먼저 고대 근동 사람들의 심장 혹은 마음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이들의 인식에서 심장은 인간의 고귀함과 이성의 근원으로 그려지며, 따라서 마음 혹은 심장은 신에게 바치거나 (메소포타미아), 부활의 날에 일어날 죽은 자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고 (이집트), 그 능력을 다하여 신을 사랑해야 하는 (히브리인들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그런 맥락을 고려하면, 그들이 남겼던 심장을 따르라혀의 말과 일치하도록…’심장(마음)의 소리를 들어라마음을 다하여 네 신을 사랑하라와 같은 교훈적 문구는 바로 그러한 인식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의 심장 인식은 근동의 이해와는 달랐다이들은 인간의 마음을 이성에서 분리하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첫걸음을 떼었다디오니소스의 열정과 아폴론의 이성이 분리되었고, 이후 플로티노스와 그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적 신앙에서 디오니소스의 열정, 다시 말해 심장으로부터 나오는 혹은 육체적인 열정은 무시되기에 이른다그리고 이런 흐름은 결론적으로 바울이나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슬람권의 심장(마음) 이해 역시 초기 기독교의 그것과는 달랐다이슬람교의 초기부터 이미 신비주의적 종파인 수피즘이 시작되었고, 이들은 마음과 육체의 수행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교리를 바탕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이런 전통으로부터의 영향력은 아베로에즈와 아비센나와 같은 아랍사상가들의 저술들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가 중국과 인도 등 동양인들의 마음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런 논의는 이 책의 전체의 구성에 있어 사족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사실 아즈텍인들의 심장을 신들에게 바쳐 태양이 계속 떠오르도록 한다는 아즈텍을 비롯한 메소아메리카인들의 심장 인식에 대한 짧은 고찰 역시 같은 인상을 남긴다왜냐하면 이 책이 결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순환적이고 물과 같이 정적인 아시아의 마음 혹은 심장의 이미지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서구 사상사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입부에 잠시 이야기했던 해부학적생리학적 심장 인식은 중세와 르네상스기, 근대를 거치는 동안 이성과 육체의 분리라는 사상의 흐름을 통해 가능해졌던 것이다중세 이후, 형이상학적 흐름에서 인식론으로 사상가들의 관심이 옮겨가는 동안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실체res cogitans와 연장된 실체res extansa의 구분은 중세로부터 내려오던 복잡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던 인체 인식으로부터 의사들과 학자들을 해방시켰고 (영혼이 존재하는 곳은 뇌이므로 영혼이 없는 몸은[시체해부해도 좋다동물 역시 마찬가지결론적으로 근대의 기계론적 세계인식의 맥락에서 해부학의 길이 열렸으며, 현재와 같은 인체, 심장 및 뇌에 대한 인식이 도래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라도, 이 책은 단순한 심장에 대한 비교문화사 연구라기 보다는 사실상 서양 철학사의 흐름 내에서 드러나는 마음에 대한 인식의 변천사를 다루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2부에서는 서양 사상사 공부를 하며 한번쯤은 대해 봤을 법한 이름의 인물들을 대할 수 있다루소헤르더괴테니체비트겐슈타인푸코 등 쟁쟁한 인사들의 사상과 이들의 심장(또는 마음)에 대한 인식이 시대 순으로 인간의 심장 인식의 변천사라는 맥락 가운데 서술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서양 사상사의 맥락에서 인간의 마음 그리고 심장이라는 장기에 관해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는 한 권의 사상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솔직히 개인적으로 바라던 보다 시시콜콜하고 소소한 동서양 그리고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마음 혹은 심장에 대한 코드나, 이를 보여주는 형상화된 이미지 및 상징에 대한 서술이 없었다는 것은 약간 실망스럽기도 하다그 외에도 아무리 현대가 결국 서양 문명의 세계화가 진행된 시대라고는 하지만 서양 사상가들의 사조에 맞추어 합리주의인식론공리주의계몽주의대륙 관념론낭만주의실존주의이후 해체론 순으로, 심장 또는 마음에 대한 단편적인 인식의 천이를 꿰어 맞추듯 배치하는 구조는 약간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책은 어디까지나 서양사를 중심으로 쓰여졌으며, 동양과 메소아메리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인식은 책의 전체적 맥락에서 곁다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쓴 저자의 노력을 가벼이 볼 수는 없을 것이다서문에서도 밝히듯, 이런 책을 최대한 주석을 줄여가며 일반인들이 읽을만한 책으로 만든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대학시절 탐닉했던 철학사 책에서나 대하던 고대로부터 중세근세근대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저명한 철학자들과 그들의 심장 혹은 마음에 대한 사유를 전해 들게 된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파스칼이 말했듯이 마음(심장)에는 이성(머리)이 알지 못하는 논리가 있다. 특히, 예를 들어, 현대와 같이 일반인들의 생활사에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시대에는 이성의 논리 보다는 마음의 논리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정치는 이성 보다는 감정과 도덕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저자의 바램처럼 앞으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인식에 진실로 발전이 있게 될지 알 수는 없다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의 진보는 우리가 이성의 논리를 이해할 때 보다는 이와는 확연히 다른 마음과 감정그리고 도덕성의 논리를 이해할 때 이루어 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기 이전에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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