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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서평 -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책을 읽으면서 책의 부제에 대한 번역 ‘진보주의자의 양심’이라는 문구가 내내 거슬리더군요. The Conscience of a Liberal에서 liberal이라는 말은 ‘진보주의자’ 보다는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말이라는 것은 책에서 역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바입니다. 확실히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고려할 때 폴 크루그먼의 입장은 진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책 말미에서 크루그먼 교수는 자신의 입장, 그러니까 의료보장을 비롯한 사회보장과 공공지출의 확대를 옹호하는 입장이 오히려 과거의 제대로 된 미국 사회의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제대로 된 보수이고,부시가 대표하고 있는 네오콘(Neocon 또는 Neo-conservative. 여기서는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이니 하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만 그냥 네오콘이라는 말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집단입니다)이 오히려 급진주의자들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상당히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겠죠. 우리는 공화당이 보수당으로 알고 있는데 크루그먼 교수는 이들을 보수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이런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미국의 현대 정치사를 살펴보아야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크루그먼 교수가 하는 작업은 미국의 현대사를, 특히 정치사를 살펴보고 그와 함께 어떻게 미국인들의 경제적 평등이 그리고 사회보장 및 노동권이 유린당했는가를 살펴보는데 있습니다.
아 그런데 여기서 참 이상한 점이 있군요. 크루그먼 교수는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입니다. 그것도 국제무역과 관련된 오랜 경제학적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노벨상을 탄 사람이죠. 그런데 그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정치사에 열을 올린 것일까요? 어쩌면 답은 간단히 나옵니다. 한 사회를 놓고 볼 때 정치와 경제를 놓고 볼 때 어느 쪽이 우선이 될까요?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그러니까 현 대통령을 뽑는 대선에서 경제라는 문제가 다른 어떤 문제에도 우선했던 것 같군요. 그러니까 경제가 우선일까요? 사실은 그 반대가 답입니다.
정치와 경제 양자는 언제나 상호 영향을 주죠. 물론 어느 한쪽에 더 관심이 많이 쏠리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시대에 따라 다른 변화라고 할까요? 그러나 알고 보면 경제는 언제나 정치에 더 큰 영향을 받고, 무엇보다 실질적으로 결정적인 영향은 언제나 정치가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기업가 출신의 대통령을 뽑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죠. 당연히 현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잘 펼쳐서 경제가 살아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물론 경제에 대한 기대라는 영향 때문에 대통령이 뽑힌 것이기는 합니다만 만일 이전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잘해서 다들 불만이 없었다면 경제적인 문제가 그렇게 커질 수나 있었을까요? 언제나 정치가 경제를 결정하게 됩니다.(사실 원래 경제학이 처음 생길 때의 이름은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ics이었죠.) 다시 말해 경제를 생각하면서 정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이겠죠.
크루그먼 교수도 책의 서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자라던 시대에는 미국은 중산층이 두터운 경제적으로 평등한 나라였으나 미국사에서 그 이전에 또는 현재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왜 이런 차이가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크루그먼 교수는 책의 22 페이지에서 ‘정말 정치적 환경이 경제적 불평등을 결정하는데 그처럼 결정적일 수도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한 후, 첫번째로 미국의 중산층이 대압착(The Great Compression)기 이후 루스벨트 정부의 소득분배 정책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것, 두번째로 1980년대의 경제적 불평등의 시작이 우선적으로 정치의 보수화 및 양극화에 뒤따른 결과였다는 것, 세번째로 기술 발전이나 학력에 의한 영향보다는 소득세 문제와 같은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낮추는 보수적 정책으로의 회귀에 기인한다는 점, 네번째로 1980년대 이후 미국 정치 보수화는 미국에서만 일어난 일이었다는 점 등을 들어 경제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질문은 당연해지겠죠. 바로 왜 이런 정치적 보수화 및 양극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크루그먼 교수가 미국의 현대 정치사를 살피게 된 연유입니다.
아주 간략히 미국의 현대 정치사에 대해 언급하자면 우선 19세기 산업화의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던 진보의 시대(Progressive age), 산업화 면에서 유럽을 제치고 미국 자본주의의 전성기를 누렸던 도금시대(The Gilded age),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에 의해 파탄이 난 경제를 살리기 위한 노력과 경제적 분배가 우선이 되었던 뉴딜(New deal) 및 대압착기(The Great Compression), 냉전기를 거쳐 70-80년대 미국 경제가 흔들리기까지 경제적 평등이 지속되는 시기가 있었고, 80년대 이후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90년대 잠시 클린턴 시대를 거쳐(클린턴은 미국의 무역적자 해결에만 성공했을 뿐, 사회보장과 의료 부문에서는 걔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다시 과거의 도금시대와 같은 수준의 불평등으로 돌아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미국 정치사의 흐름에서 우리는 어떤 경향성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경제적 평등의 정도가 높은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공화당(Republicans), 민주당(Democrats) 양당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고, 이들의 성향이 멀어질수록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가 높아져 갔던 것입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70년대 네오콘의 씨앗이 자라면서 서서히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가 진행된 이후, 80년대에 들어 드디어 그 결과가 경제적 평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경제학 역시 70년대의 케인즈 학파를 따른 관리경제의 문제에 대한 반동으로 밀턴 프리드만을 위시한 시카고 학파가 주동하는 미국 경제학의 주류가 되었고 지금까지 그 명맥이 유지되어 왔으나 최근의 위기로 인해 다시 케인즈 학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형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정치적 양극화, 그리고 그에 이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사실상 네오콘이라 부르는 새로운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된 공화당의 성격에 기인합니다. 과거 뉴딜과 대압착기를 거쳐 중산층이 두터웠던 미국의 공화당은 절대 지금과 같은 극우적이고 극도로 종교적인 색채를 띈 광신도들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사실 미국의 지식인층이 좋은 일자리를 얻는 문제와도 직결이 됩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보수 측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나간 사람들은 정치 혹은 정부 및 주요기관의 현직에서 부정부패의 문제로 자리를 일어도 얼마든지 관련 연구단체 같은 곳들에서 일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들 연구단체들은 미국의 수퍼리치(super-rich) 라고 부르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돈을 버는 사람들에 의해 기금이 조성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진보진영 혹은 민주당 계열의 연구소는 찾기도 어렵고 펀딩 역시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어왔습니다.
미국의 보수, 특히 새로운 보수라 불리우는 네오콘들이 미국의 유권자들을 장악했던 논리는 어디까지 부정적인 것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보수의 특징이라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기존가치의 수호와 국방 문제는 이들에게 언제나 강점이었습니다. 이들은 가족적 가치와 개인의 자유(작은 정부, 낮은 세율),외부의 적에서의 국민 및 국토 수호(냉전기에는 소련 또는 러시아, 냉전기 이후에, 특히 9.11 사태 이후에는 테러와의 전쟁)를 내세우며 대부분의 유권자들을(중산층) 사로잡았는데, 사실 이 논리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 논리의 기반은 언제나 유권자 또는 미국민들의 공포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미국 중산층들은 자신들의 공포에 경도되어 자신들이 누려오던 사회보장과 경제적 평등이라는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현재의 미국에는 의료 보험이나 또는 퇴직 후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일에서 완전히 은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물론 90년대 초에 민주당의 클린턴 정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클린턴 정권 역시 예산 적자를 흑자로 전환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었지 의료보험도 사회보장 및 노동권 등 여러 현안에서의 개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특히 의료보장에 대한 힐러리 클린턴의 실책의 문제는 큰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아들 부시(현 대통령)의 정권이 들어서고 테러와의 전쟁 및 이라크전이 터지면서 미국의 보수화는 더더욱 심해져 갔으며 미국 네오콘 출신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및 미국 기업가들의 보수는 더욱 더 늘어갔습니다.
이런 미국 사회내의 갈등 관계가 형성된 현재의 시점에서 미국의, 특히 금융권의 탐욕이 그 바탕이 되는 금융위기가 찾아왔고 이제 이 위기는 실물경기로 번져 세계적인 경지침체의 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를 보며 역시 역사는 반복하는 것이고 경기순환이 단기적 형태에서만 맞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형태에서도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거기에다 다음 대통령 후보로 새롭게 민주당 후보인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었고, 이 사람이 할 역할도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과연 오랜 도금시대 이후에 찾아왔던 대압착의 시대가 다시 찾아올 것인가에 대한 것이 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는 정치야,이 바보야!(It’s Politics, stupid!)’라는 문구가 더더욱 절실해 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 사회내의 경제적 불평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을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1. 의료보장
2. 소득불균형 줄이기
1) 시장영역 밖에서 – 시장 소득은 그대로 두고 가처분 소득에 대한 세금 및 세금 공제 등을 통한 소득불균형 해소, 부유층 세금감면 철폐
2) 시장영역 안에서 – 최저임금, 노조 노동에 대한 정책
물론 이런 항목들을 보고 그럼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냐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경제적 불평등 해소책은 어느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다들 하는 일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교육의 평등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했다고 봅니다. 고등학교까지는 공립으로 해결이 된다고 하지만 현대 사회는 대학 교육이 거의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이에 대해서는 미국적 상황이 따로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 생각에는 그렇군요). 그러나 이 책에서는 대학 교육의 문제는 미국 주립대의 등록금이 비싸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등록금 대출제도 같은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에까지 평등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는군요(물론 가능한 개혁의 현안의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이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기회의 평등을 지지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회의 평등이란 결과적 평등에 의해 평가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대학 교육을 책임질 수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와 고등학교 보내주기도 힘든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에게 기회의 평등이란 없다는 말입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교육 문제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회의 평등은 결과의 평등이 어느 정도 담보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런 현실을 단순히 바다건너 어느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과 11개월 전의 대선에서 우리는 정치를 무시하고 먹고 살기 힘든 형편을 말하며 속칭 경제통이라는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11개월이라면 그 행적을 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물론 위기의 탓을 돌릴 수도 있고, 소고기 파동 탓을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문제를 들먹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경제 위기상황을 통해 시장은 이미 위기상황 타개책에 대한 대통령과 지식경제부 장관의 비일관성과 횡설수설을 목격했습니다. 분명히 이런 상황은 일정 정도 이상의 수준을 보일 것이고, 기간도 앞으로 레임덕 기간 빼고도 3년 이상이 남았습니다. 이 기간 중 제발 국민들이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는 것을, 정치가 항상 경제에 우선한다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현재로서는 미국의 새로운 지도자가 나온 것에 대해 미국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 벌써 햇수로 4년전에 썼던 서평. 지금 다시 대선이 가까운 시점에서 의미가 있을 듯 해서 포스팅해둠. 특히 복지가 키워드가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