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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양장)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혼마 야스코 지음, 이훈 옮김 / 역사공간 / 2008년 5월
평점 :
======= 위의 '리뷰상품'의 사진이 다른것이 들어갔군요, 그책을 읽고 싶었었는데 그 마음에 그냥 잘못 눌렀나봅니다.=========
얼마전 법정스님이 타개하신 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무소유에 관한 책을 이야기 했다...
한번 읽어 봐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절판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주변을 열씸히 탐문했지만 선뜻보이는 책이 아니었다.
4월 중순 쌍계사 벗꽃놀이를 동네 사람들과 가던 중 앞에 앉은이가 졸다가 책을 떨어 뜨리는데 바로 그리 오메불망 찾던 '무소유'였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두눈 부릅뜨로 읽기 시작 했다.
뭔가 잔잔한 느낌이 들기 시작 하는 때, 도착지에 다달아 돌려 줄 수 밖에 없는 그 아쉬움 ...
5월 초 전철 환승역을 가다 어느 서점을 지날때 조그마한 문고판책이지만 눈에 가득차게 들어오는 책 바로 '무소유'였다. 아무 생각 하지 않고 바로 샀다.
그리고 바로 읽기 시작 했다.
그 책에는 35가지의 짧은 글들이 1970년대의 젊었던 법정을 보는듯 했다.
본인의 생각을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겨 놓은 글들, 그중에는 한자와 친숙한 스님이 아닌, 어린 왕자와도 가까운, 게오르규의 25시 영화를 보고 나와서 요한모리츠를 외치며 영화를 본 모르는 사람의 손을 덥석 잡고 싶은 감성적인 비해탈의 스님, 1973년의 당시 부자들 만이 다닐 수 있는 골프장에 대한 잔잔한 반대 글.
이 중에 '무소유' 보다 더 좋은 글들이 있지만 '무소유'를 책 표지에 내세운것이 아마 불교적이면서 시대를 아우러 읽더라도 독자들이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요.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이는 마하트마 간디가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처 보이며 말한 내용이라 한다. 그 당시의 그는 승려로써 일반인들의 소유 보다 훨씬 적은 소유물들을 갖음에도 불구 하고 법정은 이 글을 보고 많이 부끄러워 했다.
그리고 그는 난초 화분을 가지므로서 어떤 소유물에 대한 책임과 그의 마음 씀 때문에 중으로의 본분과 세속인의 경계를 허물어 진다고 생각 하여 친구에 소유권을 넘기고 다시 본연의 위치로 돌아 올 수 있었다고 한다.
과연 소유란 무었인가를 생각 하게 하는 글이기는 한데, 세속인으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것과 내가 소유 하고자 하는것의 본질은 무었인가? 나를 위한것인가? 아니면 내 주변을, 내 가족을 위한일인가?
나와 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소유라면 그 한계와 정도는 어디 까지인가?
물론 스님들 정도의 무소유가 무소유인가? 내가 쓰고 내 주변사람들이 쓸 수있을 정도가 적절한가?
그 쓸 수 있을 정도는 어느정도인가?
그져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쑥맥과 같은 양보의 천사가 되면 되는가? (결국 내 주변 사람들이 쑥맥인 나로 하여금 어려워 질 수 도있는데)
결국 적절히라는 인생 철학을 배우는 것이 무소유보다 속세인으로서 세상살이에 더 현명한것이 아닌가?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것' 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심하는 커다란 화두일것이다.
여기서 법정 스님도 난초화분을 자신의 소유에서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홀가분해 졌다는 것이 법정스스로 이기적인 마음이 표출된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