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섬세해졌을 때 알게 되는 것들 -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철학 에세이
김범진 지음, 김용철 사진 / 갤리온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섬세해졌을 때 알게되는 것들
(누구나 섬세해질 수 있다)
섬세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외모는 유하지만 외모랑을 정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나는 섬세라는 단어조차 어색하다.
혹자는 나를 "1950년대 이전 출생의 대한민국 표준 아버지 스타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큰 불편함 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저자의 책을 읽다보니 섬세하다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개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의 틀이 깨어졌다고나 할까?
그동안 나는 '섬세'라는 단어를 주로 물리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섬세'라는 의미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그러한 의미를 발견함으로서 나에게 가장 큰 소득은 다름아닌 나도 '섬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저자처럼 남들보다 섬세하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러한 장점은 좋은 통찰력으로 이어져서 이 책과 같이 좋은 책을 집필 할 수도 있고 관련된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룰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나에게도 남들과 다르게 섬세한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반대로 남들보다 너무 섬세하지 못한 분야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랜 사색을 하면서 집필된 책이기 때문인지 읽는동안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잔잔하면서도 기분좋은 책이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세상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
2. 세상에 부는 바람이 말하는 것
3. 섬세하게 산다는 것
4. 깨진 마음은 칼날이 된다는 것
5. 섬세한 사람을 위한 철학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포정이라는 요리사가 문혜군을 위하여 소를 잡았다. 문혜군이 말했다.
"참 훌륭하도다.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포정이 답했다.
"제가 귀히 여기는 것은 도입니다. 기술을 넘어 선 것입니다... 하늘이 낸 결을 따라 큰 틈바귀에 칼을 밀어넣고, 큰 구멍에 칼을 댑니다. 이렇게 정말 본래의 모습을 따를 뿐, 아직 인대나 건을 베어본 일이 없습니다. 큰 뼈야 말할 나위도 없지 않겠습니다?"
훌륭한 요리사는 해마다 칼을 바꿉니다. 상릉 가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요리사는 달마다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요리사는 달마다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19년 동안 이 칼로 소를 수천마리나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칼날은 이제 막 숫돌에 갈려 나온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이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이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칼날이 틈이 있는 뼈마디로 들어가니 텅 빈 것처럼 넓어, 칼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19년이 지났는데도 칼날이 이제 막 숫돌에 갈려 나온 것 같은 것입니다.
자신의 소리가 더 커서 폭포 소리를 제압하는 것을 득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폭포 소리가 들리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소리만 듣는 것이 득음의 경지라고 한다. 자신의 소리만 듣는다는 것은 비로소 자신의 내면의 미세한 소리를 듣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면 자신과 소리가 서로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에 진입한다. 자신이 곧 소리가 되는 것이다. 자기는 온데간데없고 소리만 남는다. 득음을 통해 아상을 털어내게 된다.
사랑의 대산은 역사와 함께 변해왔다. 과걱에는 사랑의 대상이 신이라는 거대한 존재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신 대신 군주가 그 자리를 차지하긴 했지만 군주 역시 거대한 존재였다. 근대로 들어오면서 신에 대한 사랑, 군주에 대한 사람을 대신해 이성에 대한 사랑, 혹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그 대상이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성과 가족 대신 '나'에 대한 사랑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잇따. 사랑의 대상 역시 점차 작아지고 있는 것이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가 김훈은 '꽃은 피었다'로 썼다가 고치고, 또 고치기를 거급했다고 한다. '은'과 '이'라는 작은 차이를 놓고 고민한 것이다. 이어령 교수는 자신의 대표작인 <읅 속에 저 바람 속에>에 대해 만약 '저'가 빠져 '흙 속에 바람 속에'라고 했다면 80점짜기 글이 되어버릴 뻔했다고 말한다. 좋음과 위대함은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물은 100도에서 끊는다. 99도와는 오직 1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연결은 소통이다. 단백질 덩어리인 인간의 뇌에서 철학과 과학, 죵교, 우주로 향하는 로켓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작은 뇌세포가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물, 칼륨, 카드큨등 화학요소로 분해해 가치를 환산하면 '100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강니 위대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단순한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연결된 세상에서는 소통이 곧 생명이며 발전이다. 성숭한 사회, 진화된 조직에서는 끊임없는 연결, 즉 소통을 필요로 한다. 소통과 대화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더욱 필요해 진다. 연괄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것이 창조된다. 창조는 고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 있다. 부드럽던 마음에 덩어리가 생기면 원만한 에너지의 흐름이 막히게 되고 점차 생명력을 잃어 간다. 점차 딱딱해지고 굳어진다. 그래서 마음이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게 된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선입관, 편견, 이데올로기같이 딱딱하고 거친 덩어리들이 머릿속에 자리잡으면 유여한고 섬세한 사고가 힘들어지고, 세상을 왜곡되게 바라보게 된다.
인지치료요법에서는 이렇게 덩어리지고 왜곡된 생각의 뭉치에 대해 '그것이 정말 그런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덩어리진 생각을 펑어헤쳐원래의 부드러운 상태로 돌려놓는다.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말에 깊이 공감해 주어 가슴 깊이 맺힌 감정의 덩어리를 해동시키다. 마음을 따뜻한 손길로 마사지해 준다. 모든 치유 과정에는 이처럼 딱딱해진 것들을 녹이고 풀어서 본래의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상태로 회복시켜 주는 과정이 공통적으로 들어있다.
마음을 깨어나게 하는 또 하나는 '자연'이다. 자연에는 맑고 좋은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 저연의 좋은 에너지와 접촉하면 그동안 민감함을 덮고 있떤 딱지와 찌꺼기가 씻겨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처음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중턱을 지날 때쯤 되면 새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하고 푸른 나뭇핑이 가슴을 탁하며 치고 지나간다. '아 좋다!'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아주 깊은 자연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풍요로운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