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언어 - 흐르는 시간에서 음표를 건져 올리는 법
송은혜 지음 / 시간의흐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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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책은 나의 생각과 감상을 넘어서 작가의 언어와 숨결을 훔치고 싶다는 맘을 먹게 한다. 읽고 다시 읽어도 느껴지는 새로움, 뻔한 말의 연결이 아니라 다음 문장에서 앞문장을 넘어서는 변조, 그리고 유연한 리듬감.

부럽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블랑쇼는 지하 세계에서 에우리디케를 데려오다가 놓쳐버린 오르페우스의 절망, 그 어두운 밤의 시간에 주목한다. 오르페우스는 아름다운 연주로 죽음의 신이자 지하 세계의 신 하데스를 설득했지만, 진정한 예술은 그의 연주가 아니라 자신의 실수로 사랑하는 연인을 다시 잃은 그 컴컴한 절망의 밤에 피어났다고 블랑쇼는 해석한다.

음악 작품은 연주되어야만 그 안에 담긴 작곡가의 생각과 내면이 드러난다. 같은 작품을 연주한 수많은 음반이있는데도 오늘 내가 다시 그것을 연주하는 이유는 '지금의 나'라는 독특한 시공간 속에서 새롭게 해석될 작곡가의 숨겨진 내면이 작품 안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불안정한 '나'를 대면하는 경험 없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소리로는 작품 속 인물의 내면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왜 그렇게 노래했어?"라는 연출가의 질문은 '너만이 표현할 수 있는 너의 세계, 너의 마음을 들려주렴'이라는 간곡한 부탁이다.


루이 안드리센

하프시코드를 위한 <오르페우스를 향한 서곡>"


  이렇게 멋지게 얘기하는데 이 곡을 안들을 수 없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음표을 달고 날아오르듯 부드럽고 경쾌하다.

문체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 한국에서 오르간, 하프시코드, 음악학을 공부하며 프랑스 렌느 음악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송은혜님의 기억하고 싶다.

 바람상자의 작동인 바람의 양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오르간, 일상의 소음 속에서는 너무나 미약하게 들리는 하프시코드, 기포가 터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주위가 조용해진 뒤에야 들리는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음악가가 사용하는 언어는 이렇게나 세밀하고 응축적이다.


내 안의 메트로놈이 한 없이 늘어질 때, 스타카토의 경쾌함이 흐릿해질 때 읽으면 좋을 책으로 강추한다.

앙상블은 타인을 통해 음악 세계를 확장한ㄷ나.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부딪쳐 깨질 때 마음을 열면 무한히 확장하는 세계를 맛볼 수 있다. 타인은 지옥이라 했던가?
앙상블에서 타인은 내가 보지 못하는 저 너머의 세계를 가져다주는 선물 같은 존재다. 타인은 또 다른 음악이다.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2번 , 2악장 안단체 콘 모토, D 929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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