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명랑한 은둔자가 그랬다.

축축하게 그늘져버린 감정은 그 무엇으로도 뽀송뽀송하게 말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답답하게 막연하게 불편하게 했던 감정의 정체가 뭔지 이 글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보여준다.

 

표현될 수 있는 슬픔과 고통은 견딜 힘도 가지고 있는 법.

 

 

처음에는 정신분석가인 아버지와 전시회를 몇 차례나 연 화가인 어머니 밑에서 게다가 7분 먼저 태어난 쌍둥이 언니까지 둔 그녀의 가정환경을 샘냈다.

브라운대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20년 넘게 저널리스트로 몇 권의 저자로 탄탄대로를 걸은 그녀는 왜 20대 초반부터 알코올중독과 신경성 섭식장애, 그리고 고립과 고독의 경계에서 그녀만의 전쟁을 치러야 했을까.

 

중독이란 들이닥치는 감정을 외면하려는 행위다.

 

헛헛한 외로움과 공허감이 몰아칠 때 음식을 배 터지도록 몰아 넣어본 경험이 있다면, 자신을 벌주고 싶어서 한참 동안 굶기기를 해봤다면,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수줍고 불편해서 그냥 나무나 바위로 태어날 걸 하는 소망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글을 읽고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응원하게 될 것이다.

살아낸다는 것의 무게와 슬픔과 불안과 그 모든 것들 속에 햇살처럼 비치는 기쁨과 우정과 고마움에 대해서.

 

그녀는 마흔두 살에 폐암으로 죽었다.

책을 읽다가 저자가 죽었다는 사실에 이렇게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또 처음이라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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