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5. 12. 23 일 썼다.
제목은 "책을 읽는 것으로 사회가 바뀔까요?"인데 그로부터 오늘 나는 외로움으로부터의 빨간약을 찾고 싶은가 보다.
책을 읽는 것으로 사회가 바뀔까요? 전 모두가 좀 더 많은 책을 읽으면 혹시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없다면 아주 소수의 책 읽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2배로 읽어내면 그래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래서 하이데거를 20~30년, 헤겔을 20년 넘게 연구하는 철학자도 종종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난 30년이 걸려서 번역했다는 하이데거의 책 앞에서 조금도 나아가지를 못하고 머리를 콩콩박다가 결국 포기한 경험이 정말 많다. 베르그송, 칸트는 엄두도 못내겠다)
서구 유럽의 경우야 오스트리아에서 살던 벤야민이 프랑스의 문학과 사회분위기, 독일 등 유럽권을 자기 안마당처럼 다니는 것처럼 그 나라 언어를 다루고 또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내지만 아시아의 한 작은 나라의 독자가 그들의 사상적 발자취를 따라가노라면 먼저 번역본에서부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 서평가 이현우의 진가가 나타난다.
누군가를 읽어보고 싶을 때 먼저 읽어낸 성실한 다독가이자 분석가 무엇보다도 책을 가장 사랑하는 자칭 책벌레라고 스스로 말하는 그의 성실함을 길 안내잡이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서평집은 큰 주제별로 묶여있다.
국가란 무엇이며, 폭력과 이데올로기의 문제, 보편적 보편주의, 미국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등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별로 천천히 조금씩 읽어가노라면 그가 의도했을 지점을 향해서 나아갈 수도 있다.
즉 책을 다 읽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우리라면 책을 읽지 않고서도 읽은 척, 그 책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지점은 여러사람들이 책을 다양하게 읽어내면서 그 사상가, 혹은 굵직한 주제에 대한 지도(map)을 그려줄 때 어느 정도 성공하게 되리라.
이현우가 그린 지도는 다분히 이현우의 가치관과 시각, 과거 경험이 묻어있는 지도이다. 그가 아무리 객관성을 지향한다고 해도 말이다.
나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책이다.
& 며칠 전 독서모임에 갔었다.
내가 인간박물관으로 존경하던 한 선생님의 총기가 더 흐려지셨다. 그분의 권유로 3년 전 ‘녹색평론’ 읽기 모임까지 했었는데 시간이 무섭다.
어제는 책을 읽다가 저자의 사망 연도와 그의 저작출판연도를 계속 계산했는데 당연히 규칙은 없었다.
늙음과 질병 이 모든 것들이 한 번도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라 덜컥 절대적 타자로 다가온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준비한다고 대처가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두려움에 웅크리고 앉아서 떨며 처분만 기다리고 싶지는 않은데 왜 오늘 햇살은 이렇게 아침부터 뜨거운가.
조용한 뜨거움, 적막, 얼마 남지 않은 생기마저 수분을 흡수해 말라비틀어지게 할 것 같은 무서움에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안 좋아. 몸살인 것 같애.”
“병원 가서 영양제 주사를 맞고 와. 너를 위해서 새벽에 기도 많이 했으니 이제 괜찮아질 거야.”
엄마의 종교가 늘 기복신앙이라고 삐딱하게 봤는데, 그 엄마의 기도에 뜨겁고 가빴던 숨이 편해졌다. 엄마가 아프시지 않은 게 내게는 최고의 빨간약일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