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발터 벤야민 선집 2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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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예술의 의미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했으며 기술복제시대 예술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사진, 특히 영화를 분석함으로써 영화라는 매체가 인간의 지각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분석한다.

이런한 지각은 당연히 예술의 성격 또한 변모시켰다. 따라서 그의 저작은 문예비평이론을 비롯한 철학, 비평에 전방위적으로 인용된다.

 

예술의 기능에 대해 먼저 말한다.

제의(숭배)의 기능을 하던 예술이 영원성, 작품을 창조하는 자와 예술대상과의 완전성 추구, 종교적 신비적 성격을 가진다면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은 전시(展示)적 기능을 하는 예술로 바뀌었다.

기술복제의 예술, 대표적으로 영화의 경우 무수히 편집되고 고쳐지고 다시 붙여지는 과정을 통해 완성되며 관객은 그 영화를 복제하여 자신의 소유로 옆에 두는 민주적 성격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지금, 여기라는 일회성이 없어지는 대신 모든 곳에, 언제든지라는 반복성, 획일성이 부착되기도 쉽다.

 

무산계급화와 대중의 점진적인 형성은 동일한 사건의 양면이며, 파시즘은 새로이 생겨난 무산계급화한 대중을 이 대중이 폐지하고자 하는 소유관계는 조금도 건드리지 않은 채 조직하려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기계장치를 통해 재현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자기소외가 지극히 생산적으로 활용되게 되었다. …… 낭만주의자들로 하여금 그 앞에 즐겨 머물게 했던-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 앞에서 갖는 낯선 느낌과 동일한 종류의 것이라 점을 두고 가늠해볼 수 있다.”

 

위의 인용은 영화배우가 기계장치 앞에서 그의 인간성을 잠시 숨기고 여러 스텝들 사이에서 연기하는 과정을 통해 테스트를 거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대중은 그의 연기를 컨트롤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영화의 대중성은 역으로 영화를 수단으로 대중을 감화시킴이라는 목적에도 복무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영화 자본에 의해 장려되는 스타 숭배는 이미 오래전부터 상품성의 부패한 마력에 지나지 않았던 그런 개성의 마력을 보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 숭배의 상보물인 관중에 대한 숭배는 그와 동시에 대중의 부패한 상태를-파시즘은 대중의 계급의식을 그러한 부패한 상태로 대체하려고 하는데-촉진하고 있다.”

 

발터 벤야민은 현대 매체미학의 선구자로 말해진다.

나는 그를 너무 늦게 읽었구나.

그의 50페이지 가량의 기념비적인 논문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생각에 붙잡히려는 순간, 내 눈을 비비고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린다.

 

정치의 심미화(審美化)를 위한 모든 노력은 한 점에서 정점을 이루는데,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은 일종의 기술의 반란이다.

기술은 사회가 평소 자연적 재료를 통해 기술에 부여하지 못했던 권리들을 인간재료에서 거두어들이고 있다.

 

제국주의 전쟁은 엄청난 생산수단과 이 생산수단을 생산과정 속에서 충분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 사이의 괴리(바꾸어 말하면 실업과 판매시장의 결핍) 때문에 생겨난다.

 

인류의 자기소외는 인류 스스로의 파괴를 최고의 미적 쾌락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파시즘이 행하는 정치의 심미화의 상황이다.

 

벤야민은 유물론적 낙관주의에 기대어 그의 바람을 머금은 예언자적 진술로 글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으로 인류의 자기소외와 기술에 의해 변화된 지각의 예술적 만족에 대항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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