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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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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호쾌한여자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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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정말 잘쓰고 싶었다. 그 마음이 너무 커 글을 시작도 못하게 만들다니. 책이 너무 좋으면 너무 좋아. 꼭 읽어봐. 이렇게만 말하고 싶지만 글이란 그렇게 쓰면 안되는 것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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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인 김혼비가 축구 보는 것을 좋아하다가 축구를 하게 되면서 약 1년 동안 겪게 되는 이야기다. 이보다 완벽한 시나리오가 있을까 싶을정도로.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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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 “이번 게임은 혼비 씨도 뛰어요.”
“네?”
“은경씨한테 시합용 조끼 받아서 은경 씨 위치로 가시면 돼요.”
네? 시합이요? 이제 입단한 지 1시간 10분 지났는데? 인사이드킥 빼고는 배운 것도 없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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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동안 웃다가 울다가 꼭 이상한 사람처럼 푹 빠져 있었다. 이건 참 신기한 일이다. 난 축구를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다. 다만 신랑이 축구 보는 것과 게임인 피파를 좋아한다는 것 뿐. 그래서 옆에서 주워들은 유명한 선수 이름 몇 개가 전부이다. 그런데 너무 재밌었다. 저자가 글도 잘 썼지만 꼭 이웃에 있을 거 같은 친숙한 인물들이 축구에 빠져 운동장에서 땀흘리고 때로는 부딪치는 모습에 나도 같이 웃고 울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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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5 안도할 새도 없이 공을 보는 순간 마음이 다시 급해졌다. 아직 골라인 근처에 공이 있다는 게 소름끼치도록 불안하고 싫어서 황급히 다가갔다. 한시라도 빨리 저 밖으로 걷어 내려고 공을 툭 쳤는데, 쳤는데! ( 이 다음은 꼭 직접 읽어봐야.. 읽다가 숨 넘어가도록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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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3 무심코 대화를 듣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서 당황했다. 아무도 울지 않는데 이중에서 가장 이방인인 내가 대체 왜, 대화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저 묵직한 간절함이 말의 마디마디에 배어 나오기까지 그들이 겪었을, 그들만이 알고 있을 시간들 속에서 그들이 우는 것을 본 것만 같았다. 저기 쓰러져 있는 저 선수는 언젠가의 누군가였을 것이고, 언제나 모두의 공포 속 바로 자신이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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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난 깍두기였다. 고무줄 놀이도, 피구도 깍두기. 요즘엔 줄넘기도 배우는 학원이 있다던데, 난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잘하는 운동이 하나도 없었고, 그땐 그래도 그래 넌 이걸 잘하지 라고 인정해주는 분위기라 깍두기가 되어 팀에 피해만 주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이 생각났고 후회했다. 그래도 그때 농구 보는 걸 좋아했는데 좀 더 해볼 걸 그랬나. 체력장하는 날, 실기시험 보는날 아프다고 하고싶을만큼 싫어했으면서 나도 그 넓은 운동장을 못 뛰어본 게 아쉬웠다. 그래서 김혼비씨와 그 선수들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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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의 골로 이 책을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난 지금 마무리가 너무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에필로그에 이어지는 이야기까지. 나도 이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축구를 취미로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몰랐을 것이므로. 그들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에 흐뭇하고 기쁘고 나도 뛰고 싶다 생각하면서 왜 이제야, 또는 아직도 왜 뛰지 못하나 생각하면 답답하다. 그래서 이 문장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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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0
일 나가고 아이 돌보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어떻게든 일상에 축구를 밀어 넣는 이 여정 자체가어떻게든 골대 안으로 골을 밀어 넣어야 하는 하나의 축구 경기다. 기울어진 축구장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걸 잘 알기에 모두들 최대한 모두의 일상에 축구가 들어갈 수 있도록 패스를 몰아주고 공간을 터 주고 리듬을 맞춰 준다. 여기서 우리는 한 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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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통해 꽤 오랜시간 저자를 알고 지냈다. 직접 뵌 건 아니지만 참 좋아하고 흠모했다. 힘들 때 위로 받고 언젠가 책을 내시면 좋겠다 혼자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너무 기뻤다. 그 분 같은 책이고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책이라서. 난 아직 축구의 매력은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재밌으니까. 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