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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역사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6월
평점 :

디아스포라 문학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부터 항상 내가 어딘가에 발 붙이지 못하는 느낌 때문에 ‘디아스포라’ 라는 단어를 알고 반가웠다. 나는 외국을 가서 살거나, 부모와 헤어지는 등 그런 경험은 없지만 여러 이유로 나 자신은 누구인가 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이 책 소개를 보고 읽고 싶었고, 서평단으로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서평단이 되어 책을 받고 놀랐다. 겉표지를 감싸서, 책의 제목과 작가, 번역가 이름도 흐리게 보인다. 겉표지를 감싼 앞 면에는 책의 원제 통역사가 덴마크어로 써있고 문장 부호들이 떠다닌다. 잘 들여다보거나 감싼 것을 벗겨야만 보이는 제목과 작가 이름. 책 제목이 흐리게 잘 안 보이는 책이라니. 의문이 들었다. 이유가 뭘까?
책장을 넘기니 내용도 신기하다. 희곡 같다. 대화로만 거의 이루어져있다. 책을 읽으며 그 이유를 알았다. 이 내용이 겉표지로 표현되었구나. 주인공의 말과 생각은 그대로는 보이지 않고 통역을 거쳐야만 연결되기 때문에.
‘나의 통역사’는 생후 2개월 만에 덴마크로 입양된 작가가 친가족을 만났던 6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작가는 덴마크어, 영어, 한국어를 오가며 이야기를 썼다. 이 책은 말하는 사람, 대화, 나의 생각만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공백이 꽤 많이 보인다. 통역하는 중간에 생기는 공백은 책 안에서도 공백으로 표현되어 있다.
2018년 부터 2023년까지 친가족을 만났던 장소가 부제로 나오고 그 곳에서 이뤄지는 이야기로 소설은 진행된다. 처음엔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가 궁금했다. 하지만 책에 몰입하면서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시선을 잡아끌 사건이나 구성이 아님에도 대화만으로도 독자를 기쁘거나 슬프게 만든다.
초반에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이야기 하다 어머니가 죄책감에 우는 장면에서 작가는 긴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그 말할 수 없는 아픔이 느껴진다. 작가가 다른 작품에 빌려 썼다는 표현 ‘ 번역할 수 없는 침묵’에 쓰인 문장들보다 공백에 여운과 느끼며 집중했다. 레즈비언인 주인공의 애인이 통역사 역할을 하지만 가족에게 얘기할 수 없는 상황과 언니들이 남편과 조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 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이야기가 주인공의 처지를 대변하는 점과 동시에 그 모순이 이 책을 문학 작품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 소통에 실패했다고 말하고 그래서 침묵의 언어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 책을 덮으며 그래도 조카와 조금씩 소통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조금 희망이 보였다.
나는 우리 가족의 역사에서 지워진 사람이야. 그래서 내 이야기를 직접 써야 해.
p.269
주인공의 말 대로 작가가 앞으로 쓸 이야기도 궁금하다. 작가의 이야기가 어떤 길로 나아갈지, 언어의 경계를 넘어 침묵과 공백에서 만들어질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