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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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고 읽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책이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학창시절에 그야말로 푹 빠져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이번 신작인 <기억>은 최면을 통한 전생 여행이라는 소재가 너무나 흥미롭게 느껴져서 더 기대하고 펼쳐보았다.






일단 표지부터도 굉장히 예쁘다.

한정판 표지라고 알고 있는데, 홀로그램으로 된 엽서 같은 그림이 표지에 붙어있다.

홀로그램이 상하지 않게 섬세하게 보호비닐이 붙어 와서 그 점도 좋았다 :)




각도에 따라 홀로그램이 변화하는데, 내용을 모르고 봐도 그림 자체만으로도 예뻐서 소장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전생을 거쳐 온 주인공의 이력에 맞게, 그림 속 남자의 머리 상반부가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세 단계로 나뉘어 있는 모습이고, 그 앞에서 나비가 팔랑대는 모습도 보인다.


111개의 전생을 지닌 주인공 르네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 이 책은,

전생 체험을 다룬 기존의 다른 소설들과는 구분되는 지점이 있었다.


책 초반부에는 사실 조금 뜨악했던 게,  전생이 100개도 넘고 이 책은 두 권이나 되는데 퇴행 최면을 통해 전생을 하나씩 찾아 들어가는 걸 보면서 '설마 111개의 전생을 다 나열하는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점이었다.

물론 100개 넘는 전생을 다 나열한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상상력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럼 서사적인 면에서는 다소 지루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읽다보니 이 책은 그런 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전생의 인물들을 만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정신에 큰 영향을 받아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하고,

또 과거인 그들의 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자신이 필요할 때는 그들을 자신의 생으로 데려와 '마치 다른 사람이 운전대를 잡은 자동차'처럼 몸을 함께 쓰며 문제를 타개해 나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타임머신 없이 적극적인 시간 여행을 하고, 영매 없이 빙의를 수행하는 주인공을 보는 느낌이었다.

일련의 모든 것을 특별한 교육 없이도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주인공 르네의 정신 능력이 놀라웠다.


현실에서 비일상적인 큰 문제가 생길 때면 누구라도 아연해지기 쉬울 것 같은데, 르네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전생의 인물들을 찾아나서고, 그들에게 지혜를 구하거나 그들과 함께 문제를 타개해 나가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내 삶 속에서 르네처럼 최면을 통한 자유자재의 전생 여행은 어렵겠지만,

명상 등의 정신적, 영적 수련이 삶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는 방법일 수 있겠다는 점을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고대 철학자들의 이야기와 고대 신화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작가가 책을 쓰기 위해 비단 고대에만 그치지 않고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고민한 것 같았다.


두 권이지만 마치 영화를 보듯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더운 날씨 속에,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책 속으로 여행을 다녀오기에 제격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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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 개정판 현대 예술의 거장
피에르 아술린 지음, 정재곤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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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송에 대한 책이 새로 나왔다니 너무 기대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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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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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책이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의 책을 읽어본 것은 처음이다.

이 책을 읽으며 놀란 점은 삶에 대해, 특히 부모로서의 역할과 삶에 대해 지극히 솔직하게 돌아보았다는 점이다.

대개 우리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어한다. 어떻게든 아름답게 포장하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지독하게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 인정한다. 그 점이 인상적이었다. '네가 귀청이 떨어져라 울던 바로 그 순간, 난생처음으로 그 사태가 벌어졌다. 다른 누군가 때문에 가슴이 아파졌다. 나는 내게 그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 옆에는 머무를 수가 없었다.' (p34) '모든 부모는 가끔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5분쯤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거다. 그저 숨을 쉬고, 온갖 책임이 기다리고 있는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용기를 그러모으면서.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숨막히는 부담감을 달래며. 모든 부모는 가끔 열쇠를 들고 열쇠 구멍에 넣지 않은 채 계단에 10초쯤 서 있을 거다. 나는 솔직했기에 딱 한순간 머뭇거리다가 도망쳤다. 나는 네 어린 시절 내내 출장을 다녔다.' (p34-35)

인간은 완벽할 수 없고, 부모로서의 우리는 더더욱 그러하기에 뼈아픈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이 그런 후회를 하며 내린 결단에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어우러져 더욱 그 느낌이 강해졌다. 아이를 갖게 될 때, 다시 한번 펼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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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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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에 휙휙 잘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인상깊게 잘 표현했다고 느낀 부분은 고복희와 장영수의 러브라인이나, 자신들만이 옳다는 생각에 빠져 여러 방식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고복희 대학시절 운동권 사람들과, 프놈펜의 김인석 사장 등)을 그린 부분이었다.

박지우의 입을 통해 표현되는 요즘 20대의 답답한 마음에는 공감이 되었고, BL을 읽는 학생의 심리를 쓴 부분도 이해하기 쉬워서 좋았다.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는데, 일단은 인물들에게 특정한 성격을 부여한 후 그들 각각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짧은 분량 속에서 긴 시대를 망라하며 여러 인물을 다 그려내려고 했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주인공 고복희와 박지우만 보아도 그 성격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이 있다. 장영수도 비운의 왕자처럼 그려지고, 린, 안대용, 김인석, 이영식이 갖는 역할도 하이틴 로맨스 영화에 나오는 각종 조연들의 그것과 같아서 아쉬웠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이영식처럼 유능한 캐릭터를 만든 후에 그를 갈등해소 과정에서 아무런 계기도 없이 그저 도구적으로 소모해버렸다는 게 안타까웠다. 능력이 강조되던 모습의 캐릭터였는데 소설을 빨리 마무리짓기 위해 그저 목사라는 직업의 도덕성을 끌어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긴 시대의 많은 사건들을 한번에 집약해보려고 하는 데에서 오는 어색함도 있었다. 고복희의 모친인 강금자가 겪었던 산업화 시대 여공들의 설움과, 그러한 강금자 세대의 한을 대신 풀고자 대학에 갔지만 운동권의 폭력성에 부딪힌 고복희의 상처, 새만금 간척 반대 운동을 하다 죽은 정의로운 장영수의 아픔,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보고자 했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 자살하고만 최사장 등... 사실 전체적으로 소설을 읽고 나서 드는 느낌은 하이틴 로맨스 영화를 활자화한 것 같다는 느낌인데, 이렇게 시대적인 내용을 다 넣으려고 하다보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영화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합친 것 같아 보인다.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소설의 방향성을 어느 쪽으로든 하나 정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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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이향규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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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은 길지 않은 책이었지만, 책 속에 나오는 이들과 6·25 전쟁 및 그 이후의 긴 시간을 함께 거쳐온 것만 같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며 종전선언, 평화에 대한 기대로 온 나라가 부풀어올랐던 작년 봄, 머나먼 영국에서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의미를 찾고 싶었던 저자는, 6·25 전쟁에 참전한 영국 참전용사들의 흔적을 찾아나선다.

자녀가 다니게 된 학교의 참전용사를 찾던 중 전사한 졸업생 마이클을 알게 되고, 이제는 90대가 된 마이클의 친구들이 말하는 그에 대한 기억도 듣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참전용사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 마이클의 모습에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하길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의 모습 그대로 기억해주는 것이 맞다는 깨달음이 인상적이었다.


제목에서는 마이클이 나왔지만 내게는 전장에서 사체수습팀으로 일한 짐 그룬디 씨와, 저자의 아버지가 강렬하게 남았다.

짐 그룬디 씨는 전투가 아닌 시신수습이라는, 참담하고 힘든 일이기에 대부분 꺼려하고 인정받지도 못하는 업무를 최선을 다해 묵묵히 수행하고, 지금도 전우들을 기억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자신의 역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브룬디 씨가 한 이 말은 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전장에 나간 병사들이 전투에서 승리하면 기쁜 것처럼, 우리에겐 시신을 수습하는게 빅토리였습니다. 그건 전쟁터에 시신을 버려둔 북한군에 대한 우리의 빅토리였고,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머니를 위한 빅토리였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완수한 것에 대한 빅토리였습니다."

짐 그룬디씨가 부산에서 시신을 수습하던 스무살 경, 북한에서 온 피난민이었던 저자의 아버지는 열다섯살 소년으로 부산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책 전반이 저자가 최근 돌아가신 아버지께 해드리지 못한 것들을 뒤늦게 깨닫고 참회해가는 기록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나 또한 개인적으로 부친상을 겪은 이후 느끼는 감정의 결들 하나하나가 너무나 공감이 되어서 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저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포장하지 않고 정확한 묘사로 그려내고 참회한다.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하는 '잔치'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대학생들을 보며 느낀 자신의 삐딱한 마음도, 숨기거나 포장할 수 있을텐데 결코 그렇게 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자신의 부족한 면모를 인정하고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용감한 사람이라고, 그래서 이 저자는 이 책에서 정말 용감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기억과 참회에 대한 이야기도 깊다. "당신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오늘을 바쳤습니다"라고 하는 참전용사들에게 가장 참혹했던 것은 전장에서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이 전쟁이 '잊혀진 전쟁'이라는 것, 아니 애초에 기억되지도 않은 전쟁이라는 점이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돌아왔지만 영국에서는 한국전쟁에 대해서는커녕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환영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국가가 파병한 전쟁이었지만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았고, 심지어 참전기념비조차도 최근에야 세워졌을 뿐이었다.

명분 없는 전쟁이었더라도, 아직까지 그 의미에 논쟁이 있는 전쟁일지라도 기억해야만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억되지 않는 것은 사라지고 마니까. 그것이 역사든, 인물이든 말이다.

이런 '기억'에 대해서는 앞서 마이클 이야기에서 보았듯 있는 그대로를 기억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영미 등 호주에서는 1차 대전 종전일을 추모일로 삼아 각자 가슴에 양귀비꽃을 달고 전쟁에서 스러진 사람들을 기린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형태의 추모든 정치적인 것과 연관되고, 기억되어야 할 모습의 정답을 정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죽어간 이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할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억과 참회의 과정의 절정은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와 뒤늦게나마 마음으로 화해하고, 아버지의 일생을 있는 그대로 담은 팸플릿을 제작하는 모습이었다. 정치적 의견 차이를 시작으로 아버지 생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음을 후회하고,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으며 그의 인생을 학술적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모습이, 내 마음을 돌아봄으로써 변화하는 '참회'의 실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기억과 참회'의 의미를 묻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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